프롤로그의 프롤로그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5년 여름방학. 종로를 휘적휘적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어느 어학원 로비에 “유학 상담"카운터가 보였다. 그냥 앉아 보았다. 안녕하세요. 상담 한 번 해보려고요.
애시당초 유학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 날 상담 직원의 설명에 설득되어버린 나는 당장에 유학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께 다짜고짜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대답은 No. 장학금을 받거나 국비 어학연수가 아니라면 자금을 대 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듣자 하니, 일본은 아르바이트 시급이 꽤 센 편이고(당시 기준 한국의 약 2배 수준)유학생이라 해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하던데? 밤새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계산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한번 부모님 앞에 앉았다. 대학 한 학기 등록금만큼의 돈을 주시면,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럼 보내주실 건가요?
이번에는 Yes. 당장에 유학 지원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에게는 6개월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사천리로 유학 수속이 진행되었고, 2006년 1월에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에 했던 계산은 후에 많이 뒤틀리는 바람에 부모님께 몇 번 손을 벌리긴 했지만, 아무튼 나는 1년간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왔다. 처음엔 6개월 계획이었지만 6개월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듯하여 6개월을 연장하였는데, 그것이 간접적 원인이 되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여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나중에 따로 하기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오기 직전에는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었으나, 그렇다 해서 일본에 다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복학했지만, 나는 다른 학교에 다시 시험을 보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정처 없이 살았다. 어학연수에서 돌아와 보니 가세가 기울어 있었다. 내가 걱정할까 봐 이야기하지 않았다 했다. 오히려 말해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거기에 보탬이 못 될 망정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아 경제적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이 친구 저 친구 집에 얹혀살았다. 내 주변에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 많아서, 다들 나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이런 상황이 부끄럽고 미안하여 고개를 못 드는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는 친구들 뿐이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많이 미안해하셨고, 이후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게 되셨다. 다만, 학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 줄 테니, 학교는 졸업했으면 좋겠다 하셨지만, 그 역시도 결국엔 어려운 상황이 되어 나는 복학하자마자 다시 휴학을 해야 했고,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소주를 마시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뭐, 삶이 좀 힘들기는 했으나 세상을 원망할 뿐, 딱히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더 이상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랐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몇 년이 흘러 2009년.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도 꿈도 미래도 없는 내 인생에 어떻게든 변화를 주고자, 괴로운 한국 서울에서의 삶에서 도망가고자 하여 다시 한 번 시작된 일본생활. 짧게 치고 빠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많이 길어져버렸다.
이제 겨우 이야기의 원점에 왔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