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09년 봄 즈음에, 나는 도망가기로 결심하였다. 이름을 굳이 대지 않아도 “큰 서점"하면 다들 첫 번째 두 번째로 생각해 내 줄, 그런 곳에서 일했다. 본사 사무실 구석에서 일본어로 된 서류를 읽거나 번역하거나 하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라서, 돈은 많이 받지 못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는 대학로 극장에서 음향 오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연극 일은 월요일이 휴일이고 주말은 바쁘다. 서점 일은 주말에만 쉰다. 그렇게 육 개월을 살았더니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복개천 밑 시커먼 도랑에서 고였다 조금 흘렀다를 반복하며,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나오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워킹 홀리데이, 젊음을 담보 삼아 떠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제도가 있었다. 호주? 캐나다? 미국은 싫고, 어디로 갈까? 어차피 여러 나라에 갈 수 있다면 다 가볼까? 고민은 오래 하지 않았다. 그 첫 나라로 일본을 택했다. 이유는 달리 없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친구가 살고 있었다. 방을 마련할 돈이 모일 때까지 두어 달 정도만 친구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방을 구해 나가 살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호주나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비자는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2009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어학연수 때문에 한 번 휴학했었고, 등록금이 없어서 한 번, 하고 싶었던 일을 놓칠 수 없어서 한 번. 이렇게 세 번을 휴학했더니 졸업식장에는 여자 동기들은 없고, 군대 다녀온 동기들만 있더라. 졸업 가운은 빌리지 않았고, 오전 중에 잠시 가서 졸업장만 받아왔다. 졸업장 수령했다고 사인하는데 조교님이 묻더라. 너는 어떻게 할 거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다. 고개를 쓱 저었다. 언니, 그래도 대학원은 안 갈 거예요. 하고 씁쓸하게 웃고, 그래도 가끔 과사무실에 놀러 가겠다 빈말을 던진 후 학교를 떠났다.
그로부터 반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일본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비행기 티켓값은 중고나라에 니콘 D60을 판 돈으로 해결했다. 은행에서 환전한 돈은 총 70만 원이었다.
회사 사무실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 합격 여부를 확인하는 순간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말했다. 과장님, 저 그만둬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처음부터 별로 없었다. 일본에서 일 년, 호주에서 일 년, 캐나다에서 일 년. 다른 나라에서도 일 년.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보고, 있을 만한 나라가 있으면 그냥 눌러살고. 그럴 작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009년 7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약 10년간 오사카에 살았다. "대학원은 안 갈 거"라던 나는 결국 7년이나 대학원에 다녔고, 수료 후 3년 뒤에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내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한다. 내가 배운 것은 학문이 아니라 인생이다. 인생의 일부를 배웠고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의 "유학"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