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01

우선 흑역사 고해성사부터

by 요빈

첫 운을 떼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몇 번인가 서두를 썼다 지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어디까지 솔직하게 쓸 것인지 많이 망설였다.


내가 일본에 도착한 날부터, 약 일 년 반 정도, 내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당시의 내 모습과 내 생활에 대해 보거나 들은 나의 친구들 역시 그때의 내 모습에 대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며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곤 한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충고에 반발심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의미 없는, 엉망인 삶을 살지 않겠다 다짐할 뿐이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 덕분에 내 일본어가 많이 성장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그때의 나는 술에 취한 채 사는 인간.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두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므로 그때의 기억 몇 가지만 꺼내 보려 한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아르바이트. 끝나고 나면 집에 와서 샤워를 한 후 잠시 잠을 청한다. 10시 즈음 눈을 떠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어느 바로 발길을 옮긴다.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텐더.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매일 밤 그곳에 갔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그와 함께 또 다른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그곳은 시간을 모르는 곳이다. 아침이 밝고, 점심이 찾아와도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언젠가는, 가게에서 나와보니 다시 저녁이 되어 있었던 적도 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을 놓고 술을 마시다가 아르바이트를 못 간 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잘린 것이 신기하다.


그 사람과 잘 될 리가 없었다. 나 같은 호구 손님을 진지하게 연애상대로 바라봐 줬을 리도 없으며, 나 같은 사람이 그 사람 주변에 나 하나뿐인 것도 아니니, 그는 그냥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즐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왜 나는 안되냐고 발악을 하기도 했고, 그의 팔에 매달려 나를 왜 데려가주지 않느냐고 울기도 했다. 길 한복판에서 술에 취한 그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사람 때문에 내 입으로 들어가는 술의 양은 점점 늘었다. 자주 놀러 가곤 했던 다른 바에서는, 친구들을 붙잡고 많이 울곤 했다. 제정신 아닌 날도 더불어 늘어만 갔다.


그냥 지갑에 돈이 없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돈이 다 떨어지면 편의점에 가서 돈을 뽑아서라도 마셨다. 그때 이후로 나는 통장에 돈을 넣어두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전화요금이나 카드대금은 인출일 전날이나 당일에 입금해 두고, 웬만한 현금은 집에다 둔다. 지금도 술 마실 계획이 있는 날에는 예산을 잡아 딱 그만큼만 돈을 가지고 나가곤 한다. (다행히도 일본의 작은 술집들은 카드를 안 받는다.) 그랬으니 돈이 모일 리가 만무하다. 알바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모든 돈이 다 술값으로 날아갔다. 방을 구해서 나가긴커녕 빚만 늘어갔다. 호주? 캐나다? 산산조각 난 꿈. 아니, 나 스스로 놓아 없애버린 미래. 나는 그때 미래가 없이 살았다.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일 년. 시커먼, 그릇된,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연애감정에 빠져 내 삶을 어딘가에 놓아버렸다. 아마 도랑물 같은 곳에 빠트려버린 것이겠지. 그 감정에서 겨우 헤어 나온 이후에도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술독에 들어가 살았다. 딱히 이유 없는, 습관적 음주가 아니었나 싶다. 음주가 주는 그 쾌감에, 쾌락에 빠져 지냈다.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시기였다. 일본에 도착하고 약 일 년 반. 혹은 그 이상. 소위 말하는 '흑역사'를 썼다.



흑역사도 역사이니, 한 번쯤은 돌이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유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나의 일본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만난 친구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 긴 시간 일본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사실 대학원의 '연구생'으로 재적 중이었다.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을 응원해 준 것도, 더 나아갈 용기를 북돋아준 것도, 일본에 더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 것도 이 시기의 친구들이다. 아마 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고맙다는 말을 여기에나마 살며시 적어 둔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때 일본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래도 뭐, 하나는 건졌으니 다행이다 싶다.


갑자기 왜 대학원에 다니게 됐는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게 나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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