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고(小考) 01

기타를 산 이유

by 요빈

1.

작년 가을에 싸구려 기타를 한 대 구입했다. 심하게 센티멘탈한 상태에서 페이스북 내 담벼락에 장렬한(장황한) 출사표를 하나 던지고 나는 기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보름정도 치다가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그만두었다. 물론 다시 시작할 용의는 있으나 지금은 아닌 것 같다.

그 장렬 장황한 출사표의 내용 중에 포인트는, 옛 연인이 내게 들려주었던 그 노래를 내가 다시 한번 재현해보고자 한다는 점이었다. 햇살이 따갑게 들어오는 그의 방에서, 그가 내게 들려주었던 그 노래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된 그 노래를 내가 다시 기타를 치며 불러보겠노라고. 누가 보면 미련에 푹푹 절어 있는 줄 알겠다.


2.

그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은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부고가 스마트폰 문자로 전해져 오는 시대. 카톡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미 오래전에 그와의 인연을 정리하고 머릿속에서 모든 감정을 북북 지워버린 나를, 굳이 신경 써준 착한 사람들의 손을 통해.

‘아 뭐 그러든지 말든지’ 하고, 다시 자 보려고 애를 썼는데 이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니. 자세를 고쳐 앉아서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또 메시지가 온다. 알고 있는다. 뭐를, 대체 뭐를.

'참 내.’

하고, 혀를 찼다. 다들 그래도 내 생각이 났는가 보네. 연락해 주는 걸 보니. 그나저나,

'왜 죽었대?’

하고 허공에 대고 묻는데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아, 불쌍한 사람아. 아아아아. 하고, 침대에 다시 엎어져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울었다. 오열이란 게 이런 건가, 처음으로 실행해 보았다.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과연 울 자격이 있는가. 슬퍼할 자격이 있는가.


3.

눈물을 쓱 쓱 닦고 그날 일정을 소화하려고, 나가기 위해서는 씻어야지, 하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또 억억 울다가 옷 갈아입다가 또 눈물 펑펑 쏟다가, 결국 그냥 그날은 부은 눈을 하고 하루를 보냈다.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룸메이트에게는 아주 간결하게 이야기해 두었다. 아주 시큰둥하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새벽 무렵 일어나서 흑흑 대며 우는 소리를 룸메이트가 들었을까 못 들었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내 생일이었다. 하마터면 그 해 생일을 잊을 뻔했다. 그리고 나는 내 생일을 잊지 않는 한, 평생 그의 기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4.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들었던 노래가 있다.

그가 그날, 기타를 치며 내게 불러주었던 그 노래.

Rainbow의 rainbow eyes

다양한 버전으로 들었다. 나에게 있어 이 노래는 그를 추모하는 노래가 될 것이다.


5.

헤어지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 온 그의 메시지에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이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연인으로서 함께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우리의 과거로서 평생 존재할 것이라고.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상처투성이라서, 과연 나 같은 것을 사랑해 줄 사람이 있기는 할까 하는 자괴감만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가, 우리가 사랑했었음을 기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라 말해줌으로 나의 존재에 의미를 더해 주었다. 그를 다시 사랑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에게 감사했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6.

자살이라 했다.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죽기 전에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정황만으로 모두 그의 죽음의 이유를 추측할 뿐이었다.


7.

그가 죽기 두 달 전에 메신저를 통해 연락한 일이 있었다. 사실 그와 내가 헤어진 이후에 연락을 취한 것은 헤어진 직후에 메일로 한 번, 위에서 말한 것 한 번, 그리고 그 두 달 전. 이렇게 세 번이 전부다.

헤어지고 9년이 되었으니, 연락을 많이 한 것이 절대 아니다. 심지어 마지막 연락의 목적은 그가 나에게 무슨 책을 사서 보내라는 것에 있었으니 서로 미련을 못 버렸다거나 그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그런 소릴 하는 뻔뻔함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연락을 매정하게 잘라버렸다.

그런데 그전에, 그는 나에게, 유학생활 힘내라고, 사는 게 누구나 어렵겠지만 잘 이겨내 보자고 그랬다.

너나 잘하지 그랬니.


8.

이십 대 초반의 나를 악몽같이 괴롭혔던 사랑이 삼십 대 초반에 상실감을 가득 안겨주고,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게 되었다.


9.

그래서,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기타를 배워서 그의 애창곡을 완벽히 쳐 보는 것으로 그를 추모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를 완전히 내 머릿속에서부터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2014년의 글. 이후, 기타는 장식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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