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고(小考) 02

영화 <원스> 감상문

by 요빈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쓴 영화'원스'감상문 그리고 내 이야기.



[결국엔, 예술에 필요한 것은 보편성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는 예술이란, 개인의 감성표현에 그쳐버릴 뿐이고, 묻혀버리고, 혹은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은 예술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고 공감하려 애쓴다. 그 습성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예술가를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2007년 가을.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극장 '이다' 상영 시작시간 오분을 넘겨 들어간 탓에, 나는 어두운 통로를 필사적으로 더듬어 들어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어디가 비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컴컴했다. 인기가 없는 영화라 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던가, 지인이 보고 와서 '참 좋더라'고 나에게 권유했기에 그저 궁금한 마음을 안고, 다행히도 서울시내 단 하나뿐인 상영관이 마침 대학로에 있기에. 우연이라면 우연히 볼 마음을 먹은 영화였다. 상영관에 들어선 순간 화면에는 촌스럽고 예쁜 여자가 청소기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장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로 추정할 수 있는 관객 수는 열명이 넘을까 말까. 사람이 없어서 안 보였던 건지 객석이 어두워서 안 보였던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으로 치닫을수록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덮쳤다. 심장이 아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며 나는 엔딩크레딧이 끝까지 다 올라갈 때까지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이것은 행복한 결론일까 슬픈 결론일까. 판단조차 잘 서지 않았지만 그들의 짧은 인연, 짧은 사랑. 그리고 앞으로 마음 한구석에 품어야만 할 그 슬픔.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질 슬픔. 그 모든 것을 삶의 한 과정으로써 이해하고 견뎌낼 것임이 분명한 두 사람. 누가 그들에게 그것을 견뎌내라 했는가. 어둡고 조용한 극장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얼마 후 그 영화는 전국의 극장에서 재상영되었고 사운드트랙 시디는 해당분야 판매량 당시 1위의 기록을 냈다.


보편적 슬픔, 나를 비롯한 대중들이 그 영화에서 찾아내고 공감한 것은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슬픔. 그래서 영화 <원스>는 명작이 되었다.



2013년, 1월. 오사카 신사이바시 소극장 '윙필드'. 아직 새해 인사가 한창이던 그때에, 나는 그와 첫인사와 새해 인사를 동시에 나누었다. 만난 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인연은 아닐까요, 저에겐 인연을 보는 '촉'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고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참 재미있구나, 나는 오늘 머리가 아파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촉은 무슨 촉. 우린 몇 시간 후에는 안녕히,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인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는 무언가의 인연이었던 것인지. 새벽이 가까워 오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했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아쉬워 또 만나기로 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갈수록 깨달아갔다. 어쩌면 이런 인연이 다 있지? 나보다 연극을 더 사랑하는 인간이 여기 있네. 대체 넌 어디에 있다가 이제 나타났니.


네 번의 만남. 그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이야기 중 가장 길고 농도가 짙었던 것은 그 첫날이, 첫날이었고 마지막 날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은 없을 수도 있었다. 세 번째 만남도 네 번째 만남도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연'이었기에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의 대화 중에 나는 심한 열등감을 느껴 한동안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의 재능 없음에, 나의 열정부족에,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우울해하던 나를 건져내 준 것은 그였다. 그 순간에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 이외에 없었다. 원인이며 결과였기에.


나는 그래서 희망을 찾았다. 그의 충고를 계기로 연극에 대한 나의 짝사랑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언젠가는 대답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현실로 돌아왔다. 계속해나가리라고, 내 안의 추상적인 꿈들을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했고, 하루하루가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


신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했는가. 없을 수도 있었던 인연을, 없을 수 있었던 아픔을, 없을 수 있었던 그리움을, 없을 수 있었던 감사함을.. 잠시 눈을 감고 그를 알지 못했던 지난 해로 날짜를 되돌려본다. 내가 그의 연락을 무시했더라면, 내가 그날 두통이 더 심해져서 그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 연극을 보지 않았라면, 그날의 대화가 없었더라면. 영화 원스를 다시 꺼내 보지 않았을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없어도 좋았을 것이 인연이고, 있어서 나쁘지 않을 것이 인연이다. 그 어떤 인연도, 피할 수 없고 일부러 만들 수도 없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불가항력이란 것이 정말로 있어서, 그것이 인연을 만들고 인연을 지운다.


그의 죽음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인연의 의미. 그리고 주어진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교훈이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이별을 경험한다. <원스>의 그들은 아마도,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 여자에게는 남편이 돌아왔고, 남자는 오랜 꿈을 찾아 옛 연인을 찾아 먼 도시로 떠난다. 그것이 마지막 장면이며, 이어지는 장면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엔딩크레디트. 아픔을 가슴에 묻고, 꾹꾹 눌러버리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그 삶에 충실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2013년 6월. 나는 그 영원한 이별에 대한 첫 경험을 하였다. 이제 겨우 한 움큼,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품을 삼켰다. 처음이란 것이 늘 그러하듯, 쉽지는 않았다. 어렵게 삼킨 탓일까. 조그맣게 상처가 났다. 아프다. 상처는 낫기 마련. 사라져 간다. 흔적이 남는다.


그러나 사라져 간다.

아파한다.

사라져 간다.

아파한다.

사라져 간다.

아파한다.

사라져 간다.



-안녕. 짧은 인연아. 당신이 견딜 수 없었던 그 모든 아픔 다, 그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기를. 부디, 편안히 쉬기를.




앞으로도 끊임없이 찾아올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준비,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모든 인연과 이별할 준비를 한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보편적 감정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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