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브제] 브랜드, 뇌절 금지

우리 선은 지키자구요

by yobjet


빵친놈.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종종 저를 이렇게 부르는데요. 짐작하셨겠지만 빵에 미친 놈이라는 뜻입니다. 1일 1베이글을 실천한 지 1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매주 주말엔 나를 위한 선물로 유명 베이글집을 찾아다니구요. 저는 사실 베이글 뿐 아니라 소금빵을 비롯한 빵 자체에 미쳐있습니다. 5살 때부터 ‘밥이란 것은 도대체 세상에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밥 말고 빵을 달라’고 주장함으로써 어머니를 한숨 짓게 만들었던 전적이 있죠. 빵에 환장한 사람답게 지난 주, 핫한 동네 소금빵 맛집에 오픈런 했습니다. 30분 기다려 포장해온 트러플 크림이 들어간 소금빵을 씹다보니, 놀랍게도 문득 아쉬움이 느껴지더군요.


소금빵은 소금빵다워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베이글은 물론, 베이글다워야죠. ‘답다’는 것의 정의는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그것을 먹음으로써 충족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본적인 맛이나 식감은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소금빵은 쫄깃하고 담백한 속, 알맞게 버터리하고 짭잘한 맛, 적당히 건조하게 찢어지는 빵의 겉 결 등을 갖춰야 소금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번 주 먹었던 소금빵은 달콤한 시럽을 바른(!) 바삭한 겉 빵,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모두 덮어버린 트러플 크림의 압도적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맛있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소금빵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오리지널이 아닌 트러플 소금빵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큰 배리에이션이 이루어진 소금빵을 여전히 소금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잠깐 존재론적 사유(…)를 하게 된 오전이었습니다.



성수 한 카페의 호두 크림치즈 베이글 (좌) / 서울 최애 소금빵 자연도 소금빵(우)







치약으로 유명한 콜게이트에서 미국에 소고기 라쟈냐를 판매한 적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한국으로 치면 페리오에서 냉동 김치만두를 출시한 거죠. 당시 미국 사람들은 ‘저 라쟈냐를 먹으면 입 안이 참으로 시원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그것을 애써 못 본 척 했고, 콜게이트는 수 억 원의 손해를 보고 몇 달 만에 라쟈냐 사업을 전면 철수하기에 이릅니다.


진짜냐고요? 아뇨, 가짜입니다. ;) 스웨덴에는 세계 각국의 각종 실패작(구글 글래스 등)을 전시해 놓은 실패박물관이라는 이색 컨셉의 박물관이 있는데요. 여기서 콜게이트의 라쟈냐 제품 패키지가 전시되며 관람객들을 혼돈에 빠뜨렸더랬습니다. 실제 콜게이트는 1964년 미국 일부 지역에서만 치킨, 게살로 만든 냉동식품 제품을 시험판매 후, 반응이 좋지 않자 1년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철회했다고 하는데요. 실패박물관은 콜게이트의 실제 실패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 가상의 라쟈냐 제품을 제작, 전시한 것이죠. 콜게이트 라쟈냐 출시 사건은 해프닝이었지만,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와 어떠한 연관도 없고, 심지어 기본적 근간을 뒤흔드는 브랜드의 괴상한 행보가 고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반추해볼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실패 박물관에 전시된 가짜 콜게이트 라쟈냐




이종 산업 진출이나 콜라보 등 브랜드 확장을 고려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브랜드 핵심 자산,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브랜드의 근간은 흔들리면 안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붐따를 받은 실패한 브랜드 콜라보 사례가 있습니다. H&M X 발망 콜라보인데요. 명품 브랜드와 스트릿 브랜드의 신선한 시너지는, 각자의 아이덴티티가 뾰족하며 각자의 특장점을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게 살릴 때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아이덴티티 없이 회전율 높이는 게 최우선인 SPA브랜드 H&M과 독창적 헤리티지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 발망은 서로에게서 어떤 이익을 기대한 걸까요?


최근 정말 센스 있다고 생각했던 콜라보 사례도 있습니다. 지니뮤직X각종 전시회 콜라보, 그리고 유명 캐릭터 망곰이X두산베어스 콜라보입니다. 각종 전시회를 갈 때마다 벽에 ‘이 전시회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라’는 문구와 함께 작은 큐알코드가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요. 큐알코드를 찍으면 지니뮤직이 큐레이션한 해당 전시회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로 연결되는 것 같더라구요. 지니뮤직 인지도 제고 및 어플 설치 유도는 물론, 음악과 미술 각각의 정체성을 살린 콜라보로 고객에게 더욱 감성적인 경험을 선사하며 시너지를 낸 좋은 사례였습니다. 또, 곰을 상징으로 하는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가 최근 아주 핫한 망곰이와 콜라보해 각종 굿즈를 출시했는데요. 제 주변에 전혀 야구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망곰이 때문에 귀여워 미치겠다며 굿즈를 사고 두산 경기를 보러 가더라구요. 두산 팬들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야구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영업 성공한, 어쨌든 두산베어스에 플러스가 된 콜라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곰 DNA를 공유하는 두산베어스와 초깜찍 망곰이






문득 이색 콜라보 열풍을 타고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던 콜라보 사례들이 생각납니다. 딱붙캔디, 팔도BB크림면…시도는 좋았으나 지금 생각해도 선 넘었네 싶었던 그 제품들은 역시나 많은 사람들의 경악과 비난을 불러왔었죠. 어쨌든, 결론적으로 브랜드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한 센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