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노래하는 이유
올 상반기를 강타한 ‘삐끼삐끼 아웃송’ 댄스를 아시나요? 관련 숏츠를 몇 번 봤더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직까지도 이주은 치어리더와 킹받는 한화 아웃송 숏츠를 띄워주네요.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 야구장을 다녀왔습니다. 두산베어스의 잠실 홈경기, 상대는 NC다이노스. 저는 야알못이고 어느 구단의 팬도 아니지만, 지인 찬스로 두산베어스 응원석에 앉게 되었는데요. 야구 직관이란... 하나의 종합 예술이자, 종합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야구장에서는 서너 시간 동안 경기 관람은 물론 다양한 경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음주가무(치맥 최고), 공연 관람(치어리더 분들 더운데 고생 많으십니다), 랜덤 만남(옆자리에서 룰 알려주신 여성 분 감사합니다), 영화 관람(근데 이제 키스신만 모아 놓은), 각종 기념품 증정 이벤트(저는 다 떨어졌네여)를 즐길 수 있고요. 희로애락을 버무린 엄청난 도파민을 끊임없이 느낄 수 있죠.
오감을 강타하는 수많은 자극 중에서 특히 저를 사로잡았던 건 ‘노래’였는데요. 열 개가 넘는 팀 응원가는 물론 각 선수 별 응원가도 모두 따로 있었고, 아웃카운트송에 견제송에 홈런송에 안타송에 거진 20~30곡은 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박수만 치다가 1시간 정도 지나자 모든 곡에 익숙해져 바로 안무도 따고 열심히 따라 불렀네요. 아직도 머릿속에서 ‘두산의~ 승리를~위하여…’가 떠나질 않습니다.
CM송(Commercial Message song)은 브랜드/제품을 광고/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짧은 노래입니다. 수능금지곡으로 뽑힐 정도로 중독성 강한 에듀윌의 ‘공인중개사 합격도 에듀윌~’과 야놀자의 ‘야야야 야놀자’ 등이 대표적입니다. 요즘, CM송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뉴진스 <Zero>가 코카콜라 제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캠페인 송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여름 띵곡으로 뽑히는 르세라핌의 <Perfect Night>가 오버워치2와 콜라보로 제작된 노래라는 사실은요? 보통 알고 있는 ‘CM송’의 범주에서 벗어난 느낌이지 않나요? 눈에 띄는 변화를 기준으로 CM송을 3세대로 나누어보았습니다.
1세대 CM송은 보통 30초를 넘지 않습니다. TVCF용으로 제작되었으니, 30초 안에 노래가 끝나야 했죠. 새우깡(“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올레(“빠름 빠름 빠름 엘티이 워크~올레!”) CM송이 대표적입니다. 몇 년 전 CM송인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중독성이 알 만하죠. 길이가 짧으니 제작 인풋도 덜 들고, 기억하기 쉬우며 누구나 따라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 제품의 특장점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전달하기는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2세대 CM송은 일단 길이가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를 파생시켰죠. 유튜브의 대중화로 TVCF의 ‘30초 시간 제한’에서 벗어났고, 더욱 자유로운 콘텐츠 생성이 가능해진 겁니다. 현대카드가 국내최초 ‘애니멀래퍼’ 컨셉으로 데뷔시킨 ‘MC옆길로새’의 <Make Break Make>는 2분 26초입니다. 무려 2007년, 인기 아티스트들을 모아 밴드를 제작하고 블록버스터급 뮤비까지 찍었던 삼성전사 애니콜의 ‘애니밴드’ 프로젝트는 지금 봐도 혁신적인 브랜딩이 아닐 수 없습니다(<TPL> 아직도 듣는 사람, 접니다). 기존 브랜드 특장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던 1세대 CM송과 달리 새로운 요소/인물 활용(앵무새, 유명 아티스트 등)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더욱 다양한 접점에서의 동시 노출을 통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3세대 CM송은 감히 CM송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일단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CM송인 줄 모르고 들으면 영원히 모를 정도로 그냥 완성도 높은 노래 한 곡입니다. 이러한 CM송의 특징은 아티스트와 브랜드가 가진 각자의 특장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콜라보죠. 청량미소녀의 대표 주자 뉴진스는 <Zero>에서 제로슈가, 제로칼로리 코카콜라의 건강한 청량감을 전달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주체적인 소녀를 노래해 온 아이브는 <I WANT>에서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고 삶을 즐기는 펩시의 자유로운 추구미를 강조했습니다. 3세대 CM송은 1,2 세대 CM송에 비해 직접적/단기적 광고 효과는 오히려 미미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자본이 풍부한 대규모 브랜드에 의해 제작되는 이러한 유형의 CM송은, 글로벌 영향력 확장과 장기적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 측면에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 옛날 서동이 서동요를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기억하기 쉽고, 자연스럽게 구전되니까요. 그냥 말보다는 노랫말이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구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통한 메시지 각인, 자연스러운 메시지 확산, 감정적 공감 유발을 통한 선호도 제고. 서동요에서 배울 수 있는 CM송의 효과입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서동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순도 100% 희망사항(허구)만 노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실시간 팩트체크가 습관화된 똑똑한 소비자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기 싫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