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한 방을 위한 기본기의 중요성
어제, 첫 복싱 스파링을 했습니다.
스파링을 했다고 하기도 민망한 개싸움(...)이었는데요. 복싱을 배운 지 3개월 차, 비슷한 체급의 친구와 첫 스파링을 했어요. 섀도 복싱이나 샌드백을 치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하고 링에서 내려오자 오히려 불타올랐달까요. 관장님한테 매번 혼나고, ‘아니 이게 왜 안되지?’로 시작하는 꾸지람을 들어도! 복싱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요.
성질 급한 저는 어서 멋진 기술을 해내고 싶은 마음에 로우킥, 훅 기반 콤비네이션, 화려한 위빙(피하기 기술)을 연습합니다. 복싱을 배우면 누구나 화려한 펀치 한 방으로 상대를 KO 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잖아요? 그런데 관장님은 지나가며 말씀하시죠. ‘스텝이 안 되는데 훅을 치네…쯧'
복싱이든 킥복싱이든 무에타이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단연 스텝입니다. 줄넘기만 3개월 시켰다는 그 시절 체육관들은 다 계획이 있는 거였습니다. 강한 펀치는 바른 스텝에서 나옵니다. 기본기가 안 되어 있다면 화려한 공격을 남발하다 언젠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복싱은 본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웃복서인지 인파이터인지, 스스로 그에 어울리는 장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 아니라면 어떻게 보완 및 디벨롭할 것인지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지, 어떤 스텝을 집중적으로 체화할지 결정합니다.
스텝을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본인에게 맞는 무게중심을 찾아야 하는데요. 무게중심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펀치나 킥을 날린 후 중심을 잃어버려 휘청거리게 됩니다. 브랜딩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의 지향점(존재 이유)이 무엇인지 확립합니다. 철저한 자기 분석을 통해 본인만의 무게중심, 즉 브랜드의 코어(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잡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브랜딩/마케팅/광고가 브랜드의 코어를 벗어나 행해지는 순간 브랜드는 휘청거리며 무너지고 맙니다.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브랜딩을 원하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그 브랜드에 맞는 톤은 그런 게 아닌데도요. 정말 가끔은 ‘사실 다른 브랜드와 특별히 다른 것도 없고 강점도 명확히 없지만 그래도 일단 비싸보이게 포장해달라’는 말도 듣습니다. 기업이나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 비전, 존재 이유가 내부적으로도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는 브랜딩 프로젝트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모든 브랜드는 존재 자체로 고유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자산을 ‘발굴’하는 것, 또는 없는 자산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탐색’하는 것이 브랜드 컨설턴트의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죠.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지 정했다면, 본격적으로 스텝을 익힙니다. 여기서 스텝 익히기란 크게 두 가지, 브랜드 포지셔닝과 브랜드 톤앤매너 정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브랜드 포지셔닝은 브랜드가 고객의 마음 속에 어떤 브랜드로 자리잡을 것인지 매핑하는 전략입니다. 브랜드 핵심 소구 가치 확립, 타겟 고객 분석, 시장/경쟁 현황 분석 등을 통해 어떤 고객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무기로,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죠. 톤앤매너 정립은 큰 맥락에서 브랜드 네임, 슬로건, 메시지, 디자인 및 실질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포지션, 톤앤매너가 정립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체화되면, 그제서야 브랜드는 광고, 캠페인, 팝업 이벤트 같은 가시적 결정타를 날릴 수 있게 됩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라는 말이 있죠. 스텝은 언제나 가볍고 유연해야 합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춤추듯 리드미컬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기술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의 움직임보다 먼저, 또는 그와 동시에, 아니면 그에 맞춰서 반응해야 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의 무게중심은 계속 잡고 가되, 때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며 다양한 브랜딩을 선보여야 합니다. 강조되고 반복되는 움직임은 고객을 질리게 만들 테니까요.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프로 복서 마이크 타이슨이 한 유명한 말입니다. 국내에선 이렇게 번역되었죠.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네, 사실 저도 스파링을 하기 전까지 그럴싸한 플랜을 여러 개 갖고 있었어요. 문제는 실전 스파링에서 상대에게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신나게 두들겨 맞았죠. :(
과점 시장이거나 레드오션일수록 그럴듯하게 세워놓은 당신의 브랜딩 전략이 하나도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단단하게 지켜온 브랜드 고유의 무게중심을 잃지 마세요. 차곡차곡 걸어온 스텝을 잊지 마세요. 내실 있게 기본기를 잘 쌓아왔다면, 브랜드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언젠가 나비처럼 날아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