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왜 필요한데?에 대한 답
“브랜딩 근데 솔직히…그냥 말장난 아니에요?”
얼마 전 취미 모임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는데요. 자기소개가 끝나고 제 앞에 앉아 있던 어떤 분이 저렇게 말하더라구요. 장난스럽게 말하고 바로 장난이었다고, 사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모임이 끝날 때까지 저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혀있었습니다.(소심한 소문자 e에요.)
저는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근무 중인 7년차 브랜드 컨설턴트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가끔 브랜딩 자체에 회의적인 고객들을 만나는데요. ‘제품만 잘 만들면 되지, 브랜딩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경영이나 잘 하면 되지, 브랜딩인지 뭔지 그냥 말 장난 아니냐.’ 특히 B2B 기업에 종사하시거나, 자수성가 하신 높은 분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죠. 바로 며칠 전에도 고객사와의 워크샵 도중, ‘우리가 하는 일을 말만 예쁘게 꾸민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실은 신입 시절,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브랜딩? 그냥 아무것도 없는 브랜드를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일 아니야?’ 심지어 브랜딩 업계 종사자였는데도요.
브랜딩은 단순 포장이나 사기가 아닙니다.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심리학, 경영학, 경제학, 언어학, 디자인, 기술, 모든 분야의 전문 지식을 적용하고 융합하다보니 명백하게 증명되어 딱 떨어지는 한 가지 모델이나 법칙이 없을 뿐. 브랜딩도 명백히 비즈니스의 한 종류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술이라고도, 한 편으로는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죠. 수많은 영역에 걸쳐 있는 이 문어발스러운 확장성이 브랜딩을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로 만드는 요인같기도 하지만요.
브랜딩은 왜 필요한가요? 브랜드와 고객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합니다. 브랜드가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인지는 하고 있지만 고객에게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는 경우, 고객에게 커뮤니케이션은 하고 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경우 등. 브랜드가 처한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브랜드의 이점, 장점, 매력을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모든 브랜드는 고유의 매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브랜딩은 아무런 알맹이 없는 브랜드의 겉만 번지르르하게 닦아주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 스스로도 몰랐던 가치를 발굴하고 갈고 닦아 손에 쥐여주는 일입니다. 전문가들의 시각과 능력을 통해 브랜드의 ‘가장 나은 버전의 나’를 찾아주고, 세상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객의 눈에 띄고, 선택을 받게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돈을 벌고, 그럼으로써 계속해서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브랜딩의 존재 이유입니다.
브랜딩 업무의 영역은 딱 잘라 분류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브랜드 전략/브랜드 네이밍/브랜드 디자인/브랜드 커뮤니케이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업무는 앞 단계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순차 진행되는 형태입니다.
브랜드 전략 수립 단계에서는 브랜드의 내부 자산을 정립하는 일을 하는데요. 브랜드 분석, 진단, 가치 도출, 브랜딩 방향성 수립,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 브랜드 네임 체계 정립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산업과 브랜드가 처한 문제에 따라 구체적 과업은 달라지며, 세부 업무 역시 고객사 니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략 단계에서 확정된 브랜드 방향성을 바탕으로 브랜드 네임, 슬로건, 스토리를 개발합니다. 이러한 버벌(verbal) 콘텐츠들은 내부적으로 정립된 브랜드 자산을 고객과 세상에 전달하는 최초의 연결고리입니다. 특히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의 정체성 그 자체를 규정하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처럼요. 다음으로는 시각적 자산입니다. 가장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인데요. 디자이너의 손에서 브랜드의 얼굴이 천차만별,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렇게 세 가지 영역을 거치며 기본적인 브랜딩이 완료되면, 액티베이션 영역에서 광고/마케팅 등 세부적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됩니다.
저는 브랜드 컨설턴트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브랜드를 해석하고 고객에게 해설해주는 사람.
전략 컨설턴트는 전략으로, 네이미스트는 네임으로, 디자이너는 디자인이라는 도구로 브랜드를 해석하고 해설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컨설턴트는 ‘브랜드 번역가’, 또는 ‘브랜드 큐레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직업의 공통점은 ‘작품과 작품을 소개할 대상 양 쪽 모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번역가는 작품(책이든 영화든) 및 작품에 쓰인 언어, 그리고 그 작품을 번역할 언어 양 쪽 모두에서 전문가여야 합니다. 큐레이터 역시 작품은 물론 작품이 소개될 환경과 관람객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야 더욱 풍부한 설명이 가능하죠. 브랜딩은 언제나 기업과 고객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입니다.
‘브랜딩이 뭐냐’, ‘마케팅이랑 똑같은 거 아니냐’, ‘광고랑 뭐가 다르냐’, ‘야근 많겠네(이건 사실임)’ 등등. 브랜딩을 한다고 하면 정말 많이 듣는 말인데요. 평소엔 설명하기도 귀찮고 사실 너무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다 보니 그냥 대충 다 맞다며 쓰루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요즘은 브랜딩이 너무 서운해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큰 맘 먹고 글로 한 번 브랜딩을 방어해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쉴드가 브랜딩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