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왜 필요한데?에 대한 답②
“너는 멜로디 파야, 가사 파야?”
제 경험 상,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두 번째로 나오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어떤 장르 or 어떤 가수를 좋아하냐’구요. 멜로디와 가사, 어느 쪽에 중점을 둔 리스너냐를 묻는 질문에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난 박자 파…”
어렸을 때부터 노래 속 멜로디도 가사도 목소리도 모두 좋아했지만, 노래를 가장 즐기게 만든 가장 큰 요소는 ‘드럼 박자’였습니다. 장르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고, 곡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드럼 사운드가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작년,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가장 먼저 드럼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영상이 바로 제가 드럼을 시작한 가장 직접적 계기가 된 영상입니다. 한 10년 배우면...이렇게 칠 수 있겠죠?
https://www.youtube.com/watch?v=BrM97Fk3SR0&list=RDBrM97Fk3SR0&start_radio=1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개인 연습을 게을리 하다보니 실력은 3개월 차 만도 못한 수준이지만요. 어쨌든 치는 순간 즐거우면 된 거 아니겠어요?
얼마 전, 악기를 배우는 친구들을 긁어모아 밴드를 만들었습니다. 합주 한 번 해보자며 드럼, 키보드, 기타, 보컬이 모였어요. 밴드 이름까지 야무지게 지었죠. 첫 합주를 통해 새롭게 배운 사실이 있는데요. 악기 데시벨은 무조건 드럼에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드럼은 다른 악기와 다르게 데시벨을 조절할 수가 없는 악기이기 때문이죠. ‘좀 살살 치거나 세게 치면 되지 않아?’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살살 친다’는 개념이 또 애매합니다. 드럼을 칠 때는 애초에 힘을 빼고 위에서 아래로 툭, 던지는 느낌으로 치는데요. 이때 나는 소리의 데시벨을 조절하려면 떨어지는 단차를 최대한 낮추는 방법이 있긴 하겠지만, 그럼 데시벨뿐 아니라 소리의 톤도 달라져버립니다. 한 곡 내에서도 탭, 다운, 업, 풀이 번갈아 나오고, 곡 내에서도 분위기에 따라 다이나믹스를 조절해야 하기에 연주 내내 최대한 낮은 높이에서 툭툭 탭만 치기도 어려워요. 그냥 제가 초보자여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요.
아무튼 다소 넓었던 그 합주실에서 둥둥 퍼져나가는 드럼 데시벨에 맞추느라 낑낑거리는 멤버들을 보며, 드럼 앞에 가만히 앉아있던 저는 괜히 머쓱함을 느끼기도 했었죠.
밴드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작품이 ‘곡’이라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면, 브랜딩을 통해 만들어내는 작품은 ‘브랜드’라는 형태로 시장에 공개됩니다. 보컬,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 모든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완성도 높은 곡이 탄생하죠. 브랜딩에서도 비즈니스 전략, 포지셔닝, 브랜드 아이덴티티, 브랜드 네임,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너지가 극대화될 때 성공적인 브랜딩이 가능합니다.
브랜딩/광고/마케팅을 한 가지 개념으로 퉁치고 ‘티도 안 나는 브랜딩보다 광고마케팅에 돈 태워서 일단 광고 크게 한 번 해보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랜딩이 광고/마케팅보다 티가 안 난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합니다. 광고/마케팅에 앞서 가장 선행되는 작업이며, 가장 근본적이고 내밀한 개념을 다루기에, 분기 별로 몇 억씩 태워 런칭되는 우주 스케일급 광고보다 눈에 띄지는 않죠. 그런데 블록버스터급 광고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브랜드 네임, 브랜드 디자인 없이는 기획조차 불가능합니다.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아이덴티티를 규정함으로써, 브랜드의 전반적 방향성과 컨셉을 잡아주는 브랜딩이 어떤 광고/마케팅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부적으로 확실한 브랜드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다급히 인지도/파이를 늘리기 위해 태우는 돈은 운이 정말 좋아야만 그 값을 합니다.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생각이 모두 다릅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위해 모였지만 각자 생각하고 인지하는 브랜드의 모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모두 같은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며 이 브랜드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며 뿌듯해하시는 고위 임원 분의 생각은 착각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모두가 공유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는 그 브랜드의 ‘목표와 비전’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비현실적이라거나, 업역과 맞지 않다거나, 필요 없다거나. 각자의 나침반이 향하는 곳이 다르다면 목표지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브랜딩은 내부적 측면에서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필요합니다.
드러머 영혼에 빙의해 사심 99%의 마음을 담아 말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합주에서 드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곡 전체의 템포를 결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곡을 끌어가야 하며, 바탕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컬 없는 세션에서는 드러머가 리더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합주도 항상 드러머의 카운트 인으로 시작하죠.
드럼은 브랜딩에 비유하자면 브랜드 아이덴티티입니다. 브랜드 전체의 톤앤매너를 결정하고, 브랜드의 처음(존재 이유)과 목표(비전)를 규정하며, 모든 브랜딩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죠. 베이스는 드럼과 페어를 이뤄 브랜딩의 기반을 담당하는 네임, 보컬은 밴드의 얼굴이니 디자인, 기타와 키보드는 다채로운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악기가 드럼 데시벨에 맞추는 것처럼 브랜드의 다른 요소들은 모두 브랜드 아이덴티티라는 타협할 수 없는 기준에 맞춰야 합니다. 그만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죠.
수많은 소음과 노래와 소리와 말로 가득한 시대. 당신이 연주하는 곡이 노이즈가 될지, 천상의 하모니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일단 다 같이 사운드체크부터 하고 출발합시다. 모두의 마음이 맞아야, 삐걱대는 합주를 피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