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파편화 시대,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길은?
하루 만에 러닝, 요가, 격투기, 스트레칭, 댄스, 필라테스, 에어로빅 모든 운동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 ‘시티포레스티벌’. 줄여서 ‘시포레’를 알고 계신가요?
‘시포레’는 제가 재작년부터 꾸준히 참여해온 운동 페스티벌입니다. 요가인들의 축제인 ‘원더러스트’의 한국 버전 운동 페스티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한 운동 클래스로 구성되어 있어서, 원하는 클래스를 선택해서 참여할 수 있는데요. 작년 저는 무려 5개의 클래스를 연속으로(스트레칭-댄스-타바타-필라테스-크로스 트레이닝) 들었답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체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스케줄이었고, 뽕을 뽑았단 생각에 지금도 뿌듯합니다. 물론, 올해도 참여했답니다. 바로 25일 토요일 그저께요! 이번엔 격투기 같은 새로운 클래스가 있어서 더 재밌게 참여했어요.
저는 취미 부자입니다. 특히 운동 취미 부자인데요. 등산, 러닝, 웨이트, 킥복싱, 서핑, 스노보드, 요가, 클라이밍, 필라테스, 배드민턴. 취미로 하는 운동이 이렇게나 많은 이유는, 호기심이 많고 쉽게 질리는 성격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 않나 싶은데요. 바로 ‘회피형’이라는 속성입니다. 하나에만 올인하기는 위험 부담이 있으니 회피하려는 마음이죠. 어떤 운동에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초보자 수준에서 넘기 힘든 ‘1차 통곡의 벽’이 존재하는데요. 예를 들어 러닝에서는 ‘여자 기준 10K 50분 언더’, 요가에서는 ‘깔끔한 머리 서기’ 등의 벽이 있습니다. 이 벽을 슬쩍 피하려는 본능이 발동된 것이죠. 상위 1%가 될 수는 없지만 상위 20%까지는 적당히 즐기면서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저같이 승부욕이 강하고 성취욕 있는 사람은 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시포레에 매년 참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1. 다양한 운동을 한꺼번에 체험해 볼 수 있다. 2. 대혜자 기프트 패키지를 받을 수 있다. 인데요. 시포레는 2030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많은 브랜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브랜드 체험의 장입니다. 마라톤 대회처럼 다양한 브랜드 부스에서 가벼운 게임 참여 후 얻을 수 있는 상품 외에, 입장만 해도 주는 웰컴 키트에는 수많은 브랜드 제품의 샘플들이 들어 있습니다.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 발굴의 장이자,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제품을 발 빠르게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는 올해 프리메라 부스에서 출시 전 리프팅 크림 제품을 가장 먼저 체험해볼 수 있었고, 구달의 신상 세럼을 받기도 했답니다.
‘샘플 경제’란 중국 뷰티 업계에서 코로나 이후 떠오른 마케팅 전략입니다. 비매품으로 인식되던 화장품 샘플을 유료로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브랜드들이 생겨났는데요. 항상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있지만 동시에 합리성과 효율성도 중시하는 Gen Z 고객이 주 타겟이 되었습니다. 다품종의 화장품 샘플들만 전문적으로 판매함으로써 큰 이익을 올린 대표 브랜드로 ‘하메이(Harmay, 话梅’가 있습니다. 중국판 올리브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정품이 아닌 샘플을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창고형 뷰티 매장인 하메이에서는 전세계 화장품 브랜드 제품 2만 5천 종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샘플만 팔아서 어떻게 돈을 벌어?’ 하겠지만 가장 큰 오프라인 매장이 무려 227평에 이른다는 하메이는 2023년 기준 기업 가치 약 70억 위안으로 측정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중국 여행 시 필수로 방문해야 할 명소가 되었구요.
이제 사람들은 한 가지 제품, 한 가지 브랜드에 올인하기 전에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나의 취향을 찾고 싶어합니다. 세상은 넓고, 브랜드는 많고, 제품은 다양하니까요. 비싼 돈 주고 250ml 정품 사고 후회하느니 30ml 샘플 써보고 나에게 맞으면 정착하는 것이 대 브랜드의 시대에 합리적인 사고방식 아닐까요?
취향이 파편화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깨진 파편들이 공존하는 시대죠. 이른 아침 모닝 커피 레이브 클럽에서 커피를 마시며 춤추다가 개발자로 출근해 하루종일 코딩 후, 퇴근 후 인생 2막을 위해 도예를 배우다가 주말엔 락 페스티벌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느지막히 일어나 공복 요가 후, 레몬 올리브 오일을 챙겨먹고 프리랜서로 인테리어 일을 하다가, 오후에 비건 레스토랑에서 미팅을 가진 후 프랑스어를 배우러 강남 어학원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은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개성 넘치게 세분화되고 있고, 멀티 페르소나라는 이름 아래 영역 별로 무한히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에서 사람의 마음을 캐낸다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작가는 <시대예보: 경량 문명의 탄생>에서 ‘이제는 대마불사(규모를 키우면 절대 죽지 않는다)가 아닌 대마필사(규모가 크면 죽는다)의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 변하고 개성 넘치는 시대, 사람도 기업도 브랜드도 세계도 가치관도 무거워지면 죽습니다. AI를 필두로 한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이기에 유연하고 재빠른 선택과 집중, 관계 맺음만이 솔루션일 수도 있습니다.
취향이 파편화되고 찍먹이 일상화되는 시대, 브랜딩이 나아가야 할 길은 험난해 보이기만 합니다. 그냥 빠르게 유행만 따라가면 되는 걸까요?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갈대 같은 마음은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제품만 빠르게 뽑아내면 되나요?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될 가치란 정말 없는 걸까요?
송길영 작가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요. 인간이기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려 하고, 아름다움을 좇으며, 감정을 만끽하고, 오감의 만족을 추구합니다. 앞으로의 브랜드들은 결국 인간의 그러한 욕망을 실현해주어야 하며, 그럴 때에만 지속가능하게 존재하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결국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브랜딩의 본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늘은 딱딱한 비즈니스 이야기 대신, 제가 좋아하는 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산산조각>-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