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브제] 밤샘축제, 야외도서관, 불교박람회에서 배우다

브랜드가 말하는 단절의 시간, 축적의 시간, 숙성의 시간

by yobjet



양양에 와있습니다.


설악산의 단풍을 즐기기 위해 친구들과 2박 3일 여행을 왔어요.

지금은 그 첫 날. 조용하고 드넓은 미술관 컨셉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역대급으로 정신없는 날이었어요.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운동도 하다 보니, 평균 4~5시간을 자고 출근하기 일쑤였죠. 어젯밤도 뒤늦게 귀가해 급히 짐만 싸고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도착한 양양. 지금도 양양에 있는 게 꿈같아요. 그래서인지 광활한 호수와 색색의 단풍을 배경으로 지저귀는 새소리가 눈물 날 만큼 벅차오를 정도입니다. 지금 이곳은 사람도 거의 없고, 약간 서늘한 공기와 부드러운 햇빛이 감나무를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시간이에요. 이런 시간이, 저에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피로의 시대입니다. 정보는 넘치고, 선택은 어렵고, 유행은 너무 빨리 바뀌고, 사건사고는 매일 터지고. 요즘,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피로의 원인으로부터 단절되는 시간. 스스로에게 충실하며 축적하는 시간. 그럼으로써 자아가 더욱 깊이 숙성하는 시간. 마침 페스티벌의 계절 가을인 만큼, 각종 축제/페스티벌/박람회 브랜딩이 어떻게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알아볼까요?






출처: 디 에어하우스 공식홈페이지



단절의 시간: 디 에어하우스 – 편리함으로부터의 단절

디 에어하우스는 자연 속에서의 쉼을 컨셉으로 한 무박(무려 48시간) 하우스&테크노 뮤직 페스티벌입니다. 저도 몇 년 전 한 번 참가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느꼈던 경험은 한 마디로 ‘자연 속 강렬한 불편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3월의 가평, 아직 너무 추운 그 날씨에 서늘한 숲 속에서 딱딱한 돌들이 굴러다니는 바닥을 그대로 느끼며 텐트에서 잤었죠. 빵빵 터지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둠칫대는 노래 장르도 취향이 아니었던지라, 클럽 처음 온 대학생처럼 어색하게 몸을 흔들며 즐기는 척 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집에 돌아오니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거에요. 무대와 유명 헤드라이너들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다른 페스티벌들과 달리, 디 에어하우스에서 노래는 BGM으로 거들 뿐이었습니다. 셀카도 찍고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냥 앉아서 갑자기 게임을 하던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 좋았어요. 사람 사는 마을과 아예 동 떨어져 단절된 숲에 갇혀 고민이라고는 내일 아침 뭐 먹지 정도만 할 수 있던 단절의 시간.


축제 기획자는 불편하고 피곤했던 기억이 오래 간다며, 그 불편함이 의도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힘든 기억도 미화하려는 본성이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고민에서, 투두리스트가 가득 쌓인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음악을 즐기며, 머리가 아닌 온 몸의 감각이 열리는 시간. 디 에어하우스가 선사한 단절의 시간은 리셋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축적의 시간: 서울 야외 도서관 – 독서라는 행위의 색다른 축적

서울 야외 도서관은 시청 광장, 청계천, 광화문 등 야외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빈백, 텐트, 의자 등과 조명을 설치해 공간을 구성한 공간입니다. 각 장소 별 구성원을 고려해 가족 구성원 등 가장 대중적 니즈에 집중한 서울 광장 도서관, 몰입할 수 있는 청계천 물멍 도서관 등 컨셉을 조금씩 다르게 기획했습니다. 공간의 기획자는 책을 사랑하지만, 애초에 방문자들이 모두 독서에 몰입하길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 책 읽는 사람이야’라는 부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책 읽는 모습을 찍어 인생샷을 남겨주는 포토그래퍼를 적극 홍보하기도 했어요. 시작은 전시 또는 과시더라도, 점점 진짜로 독서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본 거죠.


우리나라 성인 연 평균 독서율은 작년 기준 5권이라고 합니다.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치죠. 서울 야외 도서관은 독서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완전히 정착되기 전, ‘전시’라는 사람들의 욕구를 건드림으로써 독서를 유도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습니다. ‘독서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독서라는 행위를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했죠. 즉,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축적의 시간을 선물한 것입니다.



포스터만 봐서는 절대 종교박람회처럼 보이지 않는 힙한 2025불교박람회 포스터



숙성의 시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 종교의 넥스트 레벨을 보여준 축제

‘극락도 락이다’ 슬로건, ‘뉴진스님’의 DJ공연, 소비욕을 자극하는 굿즈 등으로 SNS를 휩쓸었던 불교박람회가 무려 13회째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13년부터 체계라고는 없이 시장통이던 불교박람회를 리뉴얼했다고 해요. 매년 새로운 테마를 부여하고, 대중성과 불교계를 동시에 잡기 위한 인테리어와 상품 구성에 애를 썼다고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지도는 서서히 높아졌고, 퀄리티도 상응하여 올라갔죠. 그리고 마침 2022년, 템플스테이의 유행과 더불어 젊은 층이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틈을 타, 몇몇 ‘힙’한 굿즈와 이벤트가 입소문을 타며 불교박람회가 대박난 것입니다.


밈 하나로 대박났다, 인기도 한때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박람회는 사실 오랜 기간 진심을 다해왔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결을 잡아가는 시간이 축적의 시간이라면, 깊이가 점점 더해짐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시간이 숙성의 시간입니다. 불교 페스티벌이 대박난 이유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르던 불교의 매력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 동안 쌓여온 불교의 진리가 21세기 한국 MZ 세대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시대가 흘러도 고유한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깊어질 뿐이죠.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시침은 자꾸 기울기만 합니다. 시간은 수동적으로 채워지기만 하죠. 우리 모두에게는 의도적으로라도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계적으로 채우기보다 색다르게 채우는 시간도 필요해요. 채운 시간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워내고 축적되고 숙성된다면, 그 갈고 닦인 존재감은 더욱 빛나게 될 거에요.






※작성 시 하기 롱블랙 아티클을 참고했습니다.

<디 에어하우스 : 48시간 논스톱 페스티벌, 양양 숲에 2만명을 모으다>

<서울야외도서관 : “독서를 과시하면 어때?” 700만 명 모은 기획자의 질문>

<마인드디자인: 불교박람회 기획사, 장인정신으로 만든 '힙한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