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로 배우는 브랜딩
여자가 유일하게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운동이 뭔지 알고 계신가요?
바로, 주짓수입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제압하는 무술이기 때문에 다른 무술에 비해 체격 조건을 타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킥복싱 체육관 회원권 재등록이 일주일 남은 틈을 타, 주짓수 일일 체험을 다녀왔습니다.
도장에서 도복까지 빌려주셔서 흰 도복에 흰 띠를 매고 수업에 참여했는데요. 몸풀기 후 기술 습득 시간을 가졌고, 스파링은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은 암바를 배웠는데요. 호신술에 기반한 스타일의 주짓수라 상대가 마운트에서 저를 공격할 때 반격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어요. 찍먹해 본 유도를 관둔 후 처음 하는 그래플링이라 너무 헷갈렸지만, 생각보다 몸이 잘 따라줘서 다행이었네요. 다시 한 번 그래플링의 매력을 느끼게 됐고, 진지하게 등록할까 고민 중입니다. (텅장 눈감아)
주짓수에 대해 거의 백지 수준으로 모르지만, 일일 체험 이후 흥미가 생겨서 대충 알아본 바로 정말 매력적인 운동이더라구요. 심지어 브랜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주짓수에서 배운 브랜딩 인사이트를 5개 소개드립니다.
1. ‘포지션이 기술보다 중요하다’
‘Position before submission.’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나의 포지션 선점이 중요합니다. 포지션이란 상대의 위에서 시작하는 마운트(탑) 자세에서 시작할지, 상대의 움직임을 방어하는 가드 자세에서 시작할지 등을 말하는데요. 나의 강점 인지 및 상황 분석에 따른 최적의 포지션 선점이 승리를 만듭니다. 이는 제품 기획/브랜딩 구축에도 적용되는 개념인데요. 기획 단계를 예로 들면 제품/브랜드의 장단점 분석을 바탕으로한 STP 프로세스(Segmentation(시장 세분화)->Targeting(표적시장 선점)->Positioning(포지셔닝))가 명확히 이뤄져야 시장에서 유의미한 인지도 확보 및 시장 점유율 확장을 노릴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기술/성능이 뛰어나도 잘못된 포지션에서 출발한다면 브랜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2.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주짓수는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힘의 흐름을 읽고 방향을 바꾸는 무도입니다. 밀면 당기고, 당기면 밀어서 균형을 무너뜨리는 싸움이죠. 물흐르듯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요. 브랜딩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의 트렌드와 고객 니즈를 제대로 읽는 것이 먼저입니다. 각종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산업, 시장, 기술의 흐름을 관찰하고 이해한 후 고객 니즈를 부드럽게 이끌어야 하죠. 너무 시대를 앞서간 억지 니즈를 창출하는 것도,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도 안됩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고객이 수용가능할 정도로 약간 앞선’ 새로움 또는 가치를 선보이는 겁니다. 언제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항복(Tap)도 기술의 일부다’
서브미션 기술에 제대로 걸리면 아프기 전에 탭을 쳐야 합니다. 뭔가 이상하다, 제대로 걸렸다 싶을 때 괜히 버티지 말고 바로 탭을 쳐야 소중한 관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주짓수에서 탭을 치고 항복한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레슨을 하나 얻어가고 성장하는 과정이죠.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제곱의 병법’에서 ‘30% 이상 잃을 것 같으면 아무리 투자를 많이 했어도 과감히 털고 나온다’고 했던 부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아니라고 판단될 땐 빠르게 퇴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벨트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다’
유도를 배울 때 띠 색깔 관련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승급할수록 흰색->노란색->초록색 등으로 띠 색깔이 짙어지는 이유는 사실 때가 타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라고요. 그래서 원래는 띠를 빨면 안되고, 띠가 더러울수록 구력이 오래됐다는 걸 나타내기 때문에 실력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거라고 합니다. 검은띠 이후 실전 경력을 쌓으며 피를 묻히고 다니라는 뜻에서 명예급인 빨간띠가 있는거라고 장난스럽게 말씀하셨죠. 해서 유도는 사실상 검은띠에서부터 시작입니다. 주짓수도 흑벨트부터가 진짜입니다. 사실 색띠까지는 기술을 연마하는 단계고, 검은띠부터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는 단계라고 하는데요. 띠가 높아질수록 수련자들은 겸손해집니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수련하며 매순간 깨닫기 때문이죠. 벨트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브랜드도 비슷합니다. 브랜드파워는 규모, 인지도, 마켓쉐어와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거대할수록 초심자의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5. ‘한계를 넘는 게 아니라, 한계를 이용한다’
몸이 작고 가벼우면 그라운드에서 클로즈 가드로 시작하고, 팔이 짧으면 스피디하게 대응하는 식으로 본인의 한계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짓수에서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체형이란 없습니다. 한계를 똑똑하게 이용하면 되죠. 모든 브랜드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성격도 그렇듯 브랜드의 장단점도 종이 한 장 차이죠. 상황에 따라 어떤 요소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규모가 너무 작다, 수작업이라 빠른 대응에 한계가 있다, 로컬에만 한정되어 있다 등 단점으로 보이는 요소도 설계만 잘하면 차별적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무술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타격과 그래플링의 매력이 또 달라서 두 분야 모두 다 마스터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깁니다. 저는 특히 도복을 입는 무술을 좋아하는데요. 태권도, 검도, 유도, 합기도처럼 ‘도’가 들어간 운동, 그리고 유도에서 파생된 기 주짓수와 같이 도복을 입는 운동입니다. 이들은 동양에서 시작되어, 단순 운동을 넘어 정신까지 단련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복싱, 킥복싱, 레슬링처럼 서양에서 시작된 운동들이야말로 물론 실전 끝판왕이라지만, 뭔가 너무 와일드하고 체계가 없는 느낌이에요. 약간 꼰대끼 있고 융통성 없는 제겐 무’도’가 더 맞는 느낌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시작할 걸, 후회는 되지만 그래도 MMA선수들의 전성기 나이(에이징 커브)까지는 아직 좀 남았으니 그 전까지만이라도 모든 무도를 1년씩 해보는 게 목표입니다. 체력과 근력 뿐 아니라 정신력까지 단련되는 무술의 세계를, 모든 사람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