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을 태워 배운 인생 레슨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컨셉의 매거진이 있습니다. 이름은 <컨셉진>. 주제는 매번 바뀌어서, 절약하는 사람, 이벤트하는 사람, 등산하는 사람 등 다양한 페르소나에 관한 알찬 콘텐츠가 가득한 매거진입니다. 예를 들어 주제가 명상하는 사람이라면, 명상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들, 명상 전문가 인터뷰, 명상하기 좋은 아이템 큐레이션, 명상 관련 에세이, 관련 예술 작품 소개 등 흥미로운 콘텐츠로 가득하죠. 저는 친구 소개로 이 매거진을 구독한 지 1년 정도가 되었는데요. 마케팅/브랜딩/기획 일을 하는 제 주변인들도 꽤나 많이들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더이상 이 매거진을 받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컨셉진>을 발행하는 미션캠프라는 스타트업이 파산했기 때문이죠.
저는 <컨셉진> 구독 외에도 미션캠프에서 진행하던 <창업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요. 6개월 간 매 달 경영/브랜딩/비즈니스 관련 책 1권씩을 보내주면, 인사이트 리뷰를 간단하게 노션에 작성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참여 시 3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리뷰를 모두 작성하면 프로그램 종료 후 30만원을 환급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실 진행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파이프라인이 있길래 이 수많은 참가자들의 도서비를 감당할 수 있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하는 의문이 있긴 했었는데요. 환급금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 잘 운영되고 있는 다른 프로그램들도 많아서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미션캠프의 파산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책은 남긴 했네요.
<컨셉진>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구독 콘텐츠 중 하나였기에, 미션캠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총 3가지의 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보증급 환급형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한계, 오프라인 구독의 생산적 한계, 솔직하고 투명한 운영과 소통의 부재입니다.
첫 번째로 비즈니스 모델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보증금 환급형 모델의 본질적 문제는 돈의 출처가 불분명하며 ‘쌓이는’ 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환급을 약속하는 순간, 이 비즈니스는 ‘수익 모델’이 아니라 ‘현금 흐름 모델’이 되는 것이죠. 고객이 보증금으로 지불한 돈이 매출인지, 부채인지 애매해집니다. 신규 유입이 잠시라도 멈추는 순간 현금 흐름이 멈추고, 이 환급 구조는 붕괴됩니다. 재무제표 내 고정된 수익원이 없고 안정적으로 확보한 자산이 없는 상황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죠.
** 브랜딩 언어: “미션을 완수하면 돌려드립니다”
** 회계 언어: “이건 부채입니다”
두 번째로 오프라인 구독 형태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미션캠프는 스스로를 구독 모델 기반 ‘콘텐츠 기업’으로 포지셔닝 했지만, 실은 ‘제조업’처럼 돈이 나갔습니다. 이는 온라인 콘텐츠 구독이 아닌 오프라인 콘텐츠 구독이기에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인데요. 둘을 표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이익이 아니라 책을 인쇄, 출판, 유통하는 비용이 선형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죠. 인쇄 부수가 확대될수록 생산비가 극대화된 것입니다. 미션캠프는 메타인지가 필요했습니다. 온라인 콘텐츠 구독처럼 포지셔닝할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현실을 보고 반품·재고·물류를 고려했어야 했죠.
** 브랜딩 언어: “지식을 구독하세요”
** 회계 언어: “원가율이 너무 높음”
마지막으로 솔직하고 투명한 운영과 소통의 부재입니다. 이것은 파산 단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한계인데요. 처음부터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급이 늦어지고 있고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겠다고 했다면 이 정도로 피해자들이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미션캠프는 자기계발, 청년, 다양성, 성장, 선한 의도, 꿈, 미션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외부적으로 ‘돈’에 대한 직접적 이야기를 꺼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땐 숫자를 묻는 사람이 냉정한 방해꾼이 되어버리죠.
** 브랜딩 언어: “꿈을 팝니다”
** 회계 언어: “돈은 나중에”
창업캠프에서 받은 마지막 책은 개인적으로 최애 책이었던 박소령 작가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었습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파산 위기에 몰렸던 퍼블리를 성공적으로 회생시킨 후 엑싯한 박소령 전 퍼블리 CEO의 스타트업 사업 노트입니다. 스타트업의 끝을 다룬 책을 창업캠프 마지막 책으로 큐레이션한 스타트업이 파산하다니, 좀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브랜드는 결국 비즈니스입니다. 아무리 세상을 바꿀 비전과 신박한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재무/회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생존하지 못합니다. <제품 개발과 브랜드 구축>에서 브랜딩은 ‘지속적으로 팔리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박소령 작가 역시 <실패를 통과하는 일>에서 반복적으로 투자, 재무/회계 관리, 현금흐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브랜딩에서 회계/재무적 사고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30만원 손해는 봤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긴다면 마냥 손해는 아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