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나잇 3파 공식에서 배우는 브랜드 전략
연말연초를 맞아 회사 동료들과 함께 걸스나잇을 가졌습니다. 걸스나잇이란 여자들끼리 모여서 밤새 먹고 마시고 놀고 수다 떠는 모임입니다. 저 포함 넷이 당일 저녁 먹은 메뉴만 해도 대왕 뼈구이, 뼈찜, 크루찌(크루아상+모찌), 티코 아이스크림, 과자 3봉지, 아몬트 초콜릿, 위스키...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소에 먹기 부담스러운 메뉴들도 이 때만큼은 모두 용서됩니다. 개인적으로 걸스나잇에서 가장 자주 먹는 메뉴는 아무래도 떡볶이, 치킨, 마라탕, 피자, 치즈케이크, 아이스크림(여기까진 정말 국룰), 스페셜 오퍼로 겨울에 빠질 수 없는 붕어빵 등입니다. 걸스나잇의 메인 이벤트는 역시 먹방이죠.
걸스나잇은 ‘3파 공식’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3가지 파티, 즉 돼지파티, 파자마파티, 수다파티인데요. 이 3파 공식은 브랜딩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브랜드 전략 기획 시 도움이 될 만한 인사이트를 걸스나잇 3파 공식에서 뽑아보았습니다.
1. 돼지파티
#Go small #경량문명 #찍먹 #샘플경제 #제너럴리스트 #관계의 가벼움 #취미 기반 모임
돼지파티의 핵심은 ‘분담’에 있습니다. 한 끼 배달이 흔치 않은 배달음식 특성 상, 최소 2인분의 음식을 시켜야 할 때가 많은데요. 여러 명이니 2인 분 음식을 여러 개 시켜도 아무런 부담이 없죠. 해치워야 하는 음식의 양을 분담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나 말고 다른 사람과 음식을 분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갖춰지면, 나의 디쉬 하나가 아니라 먹고 싶었던 음식 3~4개를 조금씩 나눠 먹을 수 있게 됩니다. ‘1인용’의 개념이 확장되는 순간이죠. 또한 쩝쩝박사들은 다양한 음식을 ‘조합’해서 먹으며 천상의 조합을 발명하기에 이릅니다. 예를 들어 붕어빵+말차 티코 조합, 엽떡 오리지널+교촌 허니콤보 조합, 마라샹궈+계란초밥 조합 등이 있죠.
돼지파티의 분담 효과와 조합 놀이는 송길영 작가의 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합니다. 주체의 영향력과 규모감, 그리고 관계맺음이 점점 유연해지고 가벼워진다는 점이죠. 단 하나의 배타적 특별함보다는 레고처럼 이리저리 조합할 수 있는 포용적 특별함이 더 힘을 얻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또, 단 하나의 브랜드에 충성하거나 하나의 경험에 올인하기 보다는 멀티 페르소나를 가지고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상품이든 취미든 가볍게 찍먹하며 이것저것 취향을 탐구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모임에서 관계를 맺으며 짧고 굵은 인연을 만들어나갑니다. 독점보다 협업이 필연적인 시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2. 파자마파티
#솔직함 #Out of persona #유대감 #동질감 #신뢰감 #니치 마케팅 #파고들기
걸스나잇의 드레스코드 하면 역시 파자마입니다. 물론 호캉스, 라운지바 등에서 즐기는 걸스나잇은 꾸밈 단계 5/5 정도의 엄청난 화려함을 요구하겠지만, 집이나 파티룸 등의 편한 공간이라면 말이 달라지죠. 화장을 지우고 파자마를 입는 순간 사회적 자아를 내려놓고 ‘진정한 나’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많은 가면을 버리고 맨 얼굴의 나를 보여줄 시간이죠.
파자마파티의 핵심은 유대감입니다. 악수를 하며 손에 아무런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던 옛 사람들처럼, 쌩얼에 가장 내밀한 옷인 파자마를 입은 여자들 사이에 공유되는 무언의 유대감과 신뢰감은 어마어마합니다. 여기서는 각종 비밀 이야기, 욕설, 비난, 가십, 가끔은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까지 암묵적으로 허용됩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적 친밀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죠. 브랜드 역시 이렇게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1번의 돼지파티에서 살펴본 ‘부담 없는 관계 맺음’과 상반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명확한 타겟 고객에게 장기적으로 꾸준히 선택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타겟 분석을 통해 파자마파티처럼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솔직하고 개성있는 커뮤니케이션, 곁가지 없이 깔끔하게 핵심에만 집중한 디자인 등이 전략이 될 수 있겠죠.
3. 수다파티
#커뮤니티 #소재 제공 #컨텐츠 #꼬꼬무 #떡밥 무한제공 #판을 깔아주다
걸스나잇의 피날레는 아무래도 수다파티죠. 끊임없이 먹느라 입을 움직였다면, 이제 끊임없는 이야기로 입을 털어줄 차례입니다. 가끔 보드게임도 곁들이면 정말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서야 잠들기 마련입니다. 걸스나잇에서는 주제가 1분에 한 번씩 바뀌어도 그러려니 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합니다. 브랜드가 해야할 것은 고객이 알아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입니다.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각종 광고/홍보/콘텐츠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지금, 브랜드가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사람들은 듣고 싶지 않아합니다.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메시지가 생겨나고 공유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죠. 수많은 브랜드들이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새롭고 재밌는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이유입니다. 제품/서비스만 단편적으로 경험하는 ‘매장’에서는 ‘브랜드 이야기’가 생겨날 여지가 없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러한 경험들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장면을 만들어야 하고, 거기서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성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성원들은 브랜드에 대한 저마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키울 것이고, 이는 곧 브랜드 충성도로 연결됩니다.
걸스나잇도, 브랜딩도, 어쨌든 모든 답은 사람 안에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