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통과의례’ 시대의 브랜딩
복싱을 배운 지 벌써 반년이 되어갑니다. 며칠 전부터 양 손에 복싱 핸드랩을 감기 시작했어요!
복싱 핸드랩은 주먹에 감는 천입니다. 샌드백을 치다 보면 아무리 글러브를 꼈어도 정권이 아파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목 꺾임을 방지하고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핸드랩을 감는데요. 타격이 제대로 들어가야만 손이 아프기 때문에, 핸드랩을 감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레벨업 되었다는 뜻이죠. 태권도를 배울 때는 숙련도에 따라 흰 띠, 노란 띠, 초록 띠 등을 거쳐 최종 검은 띠를 맸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명확히 나의 레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반해 복싱은 겉으로 보기엔 잘 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게 또 다른 매력인 것 같아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은 특별합니다. 승진했을 때, 결혼했을 때, 아이를 낳았을 때 등 인생의 다양한 순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통과의례가 아니더라도, 각자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마이크로 통과의례’의 순간들을 맞이하는 시대죠. 저로 치면 태권도 검은 띠를 맸을 때, 기타 F코드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계란말이를 완벽하게 말 수 있게 되었을 때입니다. 변화의 폭이 크든 작든, 자아가 바뀌는 순간이기에 새로운 자아에 걸맞는 새로운 ‘무언가’의 필요성이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자아가 바뀌는 마이크로 통과의례의 순간을 포착해, 고객의 마음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어떤 브랜딩이 필요할까요?
우선 통과의례와 그것을 기념하는 세레모니가 필요한 순간을 나눠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죠. 인생이 그렇듯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모여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전통적으로 시작의 세레모니가 필요한 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입학, 취업, 성인식, 취업, 독립, 창업, 결혼. 무언가 생애주기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이죠. 이 때의 통과의례는 사회가 공인한 변화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위한 브랜딩은 그래서 ‘권위적 상징’을 내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작고 귀여운 것보다 명확히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권위감 있는 브랜딩이죠. 또, 직장인 첫 시계, 결혼 반지, 입사 키트처럼 손에 잡히는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상징물이 필요합니다. 이 순간의 브랜드는 ‘공인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시작의 순간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더욱 다변화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첫 러닝, 새해 다짐, 첫 혼자 여행, 다이어리 개시 등이 있습니다. 훨씬 개인적이죠. 이 때의 브랜딩은 권위감보다는 가볍고 캐주얼한 무드의 트리거로 기능합니다. 거창한 것보다는 일상 속에서 반복가능한 리추얼로 접어들게 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남의 시선, 공식적 인정이 아니라 나의 관점, 스스로를 위해 기록하는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나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새해 캘린더, 마일리지를 쌓아가는 러닝 앱, 다이어리 등 좀 더 내밀한 상징물이 등장하죠. 이 순간 브랜드는 축하라기보다 ‘동반의 응원’을 건네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끝의 세레모니가 필요한 순간은 졸업, 퇴사, 이별 등입니다. 이때의 통과의례는 ‘단절’을 위함입니다. 기존의 자아와 명확하고 깔끔하게 단절하고 다음 단계의 새로운 자아로 나아가기 위함이죠. 졸업사진, 마지막 카드, 이별 플레이리스트 등 브랜드는 ‘그 동안 고생했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요즘 들어 끝의 통과의례는 더욱 사소한 순간들에 발생합니다. 나 홀로 여행이 끝난 순간, 프로젝트 하나의 종료, 일상 챌린지의 마지막 날. ‘공식적’인 세레모니가 필요치 않다보니 끝났다는 감각이나 잘 해냈다는 감정이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럴 때가 브랜드가 파고들어야 할 틈입니다. 명확한 마침표 또는 느낌표를 찍어줘야 하죠. 이때 브랜드는 ‘회고 및 성장’을 위함입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경험의 끝에서 내가 어떤 것을 겪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회고 템플릿, 각종 요약 리포트 등 과거를 엮어주는 서비스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시작과 끝의 반복입니다. 하나가 시작하면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고,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무언가 시작되기 마련이죠. 우리 모두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시작하고 무엇을 끝낼지, 어떤 것으로 이 소중한 순간을 채울지 매번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절대적으로 잘못된 선택은 없어요. 내가 이 선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러니 오늘의 모든 선택들이 후회로 남지 않게 일단 최선을 다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