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와 러닝메이트 같은 부부의 팀워크

Take Turn 차례대로 뛴다

by 요부마



joe-yates-wNOymf_yTUA-unsplash.jpg?type=w1

"여보! 오늘 S 대학에서 함께 일하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S 대학은 남편의 모교다.

9년 전, 남편의 목표는 S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나와 만나기 전, 남편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포스트 닥터를 3년 동안 하고, 2년째 강사로 일을 했다. 일 년 후에는 연구 교수로 승진이 확정되었다. 그 사이 S 대학교에 두 번 지원을 했지만, 임용되지 않았다.


결혼 후, 반 년 정도가 지났을 때, Y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남편은 고심했다.

"언젠가 한국에 갈 거라면, 지금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물었다.

"그 제안이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거예요?"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만, 나중에 가려고 하면 나이도 있고 해서 더 어려워질지도 몰라요."

나는 다시 물었다.

"여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데, 좋은 여건이에요?"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요. 연구에 집중하기에는 여기 있는 게 더 좋죠."

"그럼 왜 가려고 해요? 여보가 원하는 자리도 아니고, 연구도 더 잘 할 수 없는데요?"

"Y 대학교에서 일하다가 S 대학교로 옮길 수도 있고..."

"그럼 S대에서 오라고 할 때 가면 되죠."

단호한 나의 반응에 남편은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그렇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S 대학교에서 먼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온 거다.

분명 10년 전, S 대학교 교수는 그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목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만들고 싶은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을 상용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미국 대학교에서는 그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

정부 지원금도 받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5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는 남편 얼굴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어요?"

"음... 오늘 학장님과 미팅이 있었어요.

3년째인데, 아직 논문도 못 쓰고, 연구비도 따지 못해서... 아마도 4년 재계약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네요...일단 2년만 연장하고,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고 하네요..."

우리는 평소에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남편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웬만한 일에는 감정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그는 가족을 보살피지 못할까 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평소 나였다면, "그럼 우리 어떻게 되는 거예요...?"라고 물었을거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괜찮아요. 어떻게든 되겠죠.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요."라는 말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꼭 대학교 교수가 아니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집이야 팔고 작은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는 거고. 둘이서 작정하고 나서면 어떻게든 먹고는 살수 있을 거다.

그러자 굳었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날 이후,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해서 일했다.

연휴에도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새해를 제외하고는 연구에 전념했다.

남편은 일에 온 힘을 쏟으면서도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매일 6시에 퇴근해서 후다닥 외투만 벗어놓고, 나단이와 놀아주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 항상 자정이 넘어서야 잤다.


일 년 후,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2개의 연구 지원금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지원금을 받았다.

그동안 나는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을 했다.

집을 고치고 관리하는 일, 사람을 고용하는 일, 아이를 돌보는 일,

아이에게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새로운 곳에 데리고 가는 일.


남편이 마음에 약간의 여유를 찾았을 즈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책을 쓰고 싶어요. 이제 여보가 날 좀 도와줘요."

나는 토요일을 온전히 집중하며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자비로 <미니멀 쿡>을 출판할 수 있었다.

남편이 S 대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흥분해서 말했을 때, 나는 웃으면 대답했다.

"여보, Y 대학교에 갈까 고민할 때, 내가 잡아주길 잘했죠?"

남편은 멋쩍게 웃었다. 9년 전에 눈앞에 기회를 잡을 것인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던 일이 떠오른 듯 걸까.


나는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9년 동안 나는 남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남편을 돕는 게 결국은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너무 힘드니, 한국에 돌아갈까?'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내 나름대로 역할에 충실했다.


Take turn.

교대하다. 차례를 바꾸다.

내가 남편의 꿈을 지지했듯이, 이제는 남편이 내 꿈을 지지해 줄 차례다.


quino-al-c5SEmsjqq5o-unsplash.jpg


팀워크.

부부는 서로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팀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내가 더.'라는 경쟁적인 마음가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준비가 된 사람이 먼저 출발하는 건 논리적이고 전략적이다.

만약 두 사람이 똑같은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동시에 달려나갈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아이가 있거나, 보살펴야 하는 가족이 있거나, 금전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원해야 하는 경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부는 마라톤 팀과 같다.

한 사람이 먼저 뛰고, 다음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뛴다. 그렇게 뛰다 보면, 함께 뛰는 날이 온다.


지금 내가 뛸 순서가 아니라고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선수가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해서는 러닝메이트가 필요하다. 러닝메이트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러너가 자신의 역량을 다할 수 있도록 돕자.

동시에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훈련하고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마침내 내가 뛸 차례가 왔을 때,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자신 있게 뛰어나가면 된다.


내 옆에 러닝메이트가 함께 뛰어줄 테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단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