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인, 윤아씨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 있다.
자기가 만든 음식은 다 자기 레시피라고 주장하던 요리 선생 A 씨와 헤어지고, 봄에 L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첫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때 메뉴는 에스프레소 컵케이크, 마들렌, 초콜릿 케이크, 딸기 벚꽃 쿠키 등이었다.
반응이 좋아서 여름 강좌도 맡게 되었다. 뭘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계절에 맞게 허브 쿠키, 바나나 푸딩, 노오븐 체리 케이크 등으로 커리큘럼을 짰다. 백화점 강좌 팸플릿이 나왔고, 나도 블로그에 수업 공지를 올렸다.
얼마 후, 문화센터 실장님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불렀다. A 씨가 전화를 해서 내가 자기 레시피를 훔쳐 갔으니 내가 수업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강하게 항의를 했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미국, 영국 등. 가정에서 베이킹을 하는 나라에서 평범한 메뉴들이 자기 거라니.
실장님은 A가 경력도 많고, 인지도도 있으니 사과를 하고 화해를 하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 A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레시피를 다 들고 오라고 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에게 사죄하거나 빌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A는 거의 매일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함께 일할 때 내가 털어놓았던 개인적인 고민이나 문제까지 들추어내며 나를 깎아내렸다. 결국 수업은 폐강되었다.
이제 막 업계에 발을 디딘 초보 강사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첫 강의 수강생 중에 내가 하는 다른 수업에 오겠다며 연락처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보다 어려 보였지만 실제로 열 살이나 많은 재현 씨는 밥과 커피까지 사주며 응원해 주었다. 친구와 함께 왔던 중년의 학생은 나를 보며 미국에서 지냈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준 사람은 윤아 씨였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많았다.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이십 분 정도 일찍 강의실에 왔다.
“선생님, 점심은 드셨어요? 이거 좀 드셔보세요.”라며 매번 떡이며 김밥을 챙겨주었다. 폐강이 결정되고 은아 씨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따로 식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내 수업을 듣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일 년 전, 윤아 씨는 목사를 꿈꾸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했다. 청첩장도 찍었다. 결혼 전에 의례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그때 의사로부터 은아 씨 간에 심각한 이상이 있으며, 남은 시간은 3년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윤아 씨의 애인은 그 말을 듣고 파혼을 요구했다. 윤아 씨는 함께 헤쳐나가자며 매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떠났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도 모자라, 평생을 같이 하자고 했던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 슬픔과 배신감에 빠진 은아 씨는 몇 달 동안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은아 씨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신기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남은 시간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에 쓰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베이킹을 배우는 거였다.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에 가서 마음에 드는 수업을 찾았다. 그게 내 강의였다.
항상 밝게만 보였던 윤아 씨의 사정을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가 몇 년 후에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니. 윤아 씨가 겪고 있는 고통과 상실에 비하면, 내가 겪는 일들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건강과 사랑을 잃은 은아 씨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가슴 깊은 곳에서 불타올랐다.
때마침 이전에 함께 일했던 지인이 N 문화센터 담당자를 소개해 주었다. 다른 백화점에서 강의한 경험을 인정받아, 가을 학기부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은아 씨는 내가 뉴코아에서 수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평촌에 살면서 강남까지 왔다. 낯선 학생들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윤아 씨의 눈빛이 다정했다. 나에게는 윤아 씨의 존재가 학생 백 명과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걸.
윤아 씨는 나한테 배운 레시피로 쿠키와 케이크를 만들어, 교회 카페에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는다. 윤아 씨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 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지금은 함께 목회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A보다 성공한 요리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은아 씨를 통해 내가 요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타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만나는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때부터 엉켰던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더 많은 강의 기회가 생겼다. 플리마켓도 하고 팝업 스토어에도 참여했다. 혼자 케이터링 사업을 하던 동생을 알게 되어, 부업으로 케이터링도 했다.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어졌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그가 살고 있는 보스턴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출연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멋진 기회였지만, 미국에 들어가는 시기와 겹쳐 정중하게 거절했다.
윤아 씨를 만난 덕분에 삶을 대하는 내 관점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변했다.
때론 사람 때문에 힘들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선한 사람으로 인해 그 상처를 치유받는다.
독이 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해독제가 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살면서 누구와 연을 맺는가, 가까이 지내는지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윤아 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