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조카, 미국에 사는 아들

전투적인 육아

by 요부마



서른두 살. 도쿄와 뉴욕을 떠돌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부모님은 나이 찬 딸을 보기가 불편한 건지, 걱정이 된 건지. 얼굴만 마주치면,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해라."라며 나를 압박했다. '깔때기 이론'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밥을 먹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결국은 '결혼 타령'이었다.

나로서는 최대한 부모님과 마주하는 순간을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래서 결혼한 한 살 터울 언니네 집으로 자주 피신을 했다. 언니는 나만 보면 바쁜 일이 생겼다면서, 두 돌 된 조카를 맡기고 서둘러 나갔다.

당시에는 어린 딸을 키우는 전업 주부가 도대체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자주 생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아들을 낳고 키워보니 알았다. 언니가 말한 '급한 일'이란 '살기 위해 내 숨통을 트이는 일'이었다는 걸. "뭐 했는데?" 집에 돌아온 언니에게 물어보면, 백화점에 아이 옷을 반품하러 갔다, 아이 간식을 사러 갔다 왔다, 문화 센터 강좌를 등록하고 왔다, 세탁소에 다녀왔다, 반찬거리를 사 왔다 등. 주부가 아닌 사람이 들으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잡다한 일들 뿐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첫 조카 챔이가 두 살 때부터 네 살이 되기까지, 그러니까 내가 결혼해서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육아 예행연습'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언니가 형부와 둘이 1박 2일로 경주 여행을 다녀올 테니, 챔이를 맡아달라고 했다.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싱글 동생에게 하나밖에 없는 딸을 맡길 정도로 둘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걸까? 아니면, 그동안 내가 챔이와 놀아주는 것을 보니, 이틀 정도는 맡겨도 괜찮겠다는 신뢰가 생긴 걸까? 아무튼 나는 주말에 피신을 갔다가, 그대로 붙잡혀, 언니 집에 아이와 둘이 있게 되었다.

아침 7시쯤 일어나 토스터에 식빵을 굽고, 인스턴트 커피를 끓여서 먹었다. 언니네 식구는 주말마다 작정을 하고 늦잠을 잔다. 챔이도 그런 생활 패턴에 익숙했다. 거의 오전 열 시가 되어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시간이 애매하다. 아이에게 아침을 주자니, 나는 한 시간 후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우리 김 선생 가서 김밥 먹을까?"

"응!"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김밥 체인점으로 향했다.

언니는 잠실에 있는 신축 아파트에 살았다. 단지 안에 학교, 상가, 놀이터, 주민 센터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집 값도 꽤 비싸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한다. 주로 한창 학교 다니는 자녀를 키우는 30-40대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집에서 김밥집이 있는 상가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 그 사이에 신호등이 없는 짧은 횡단보도를 세 번 정도 건너야 한다.

챔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차가 멈추길 기다린다.

한 대, 두 대, 세 대. 분명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일 텐데, 스스로 멈추는 차가 없다.

나는 결국 몸을 차도에 들이댔다. '네가 나를 칠 거야? 쳐볼 테면 쳐봐.' 1미터 앞까지 다가오는 운전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멈춰. 거기서 멈추라고.' 운전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속도를 낮추고 방지턱 앞에서 멈춰섰다. 챔이 손을 꽉 잡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devi-puspita-amartha-yahya-0SMrPL058eU-unsplash.jpg

김가네에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2인용 테이블이 딱 네 개가 있다. 이곳의 주문 시스템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입구 앞에 있는 카운터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결제를 한다.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는다. 선 주문, 후 착석.

주문을 하고 있는데,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엄마가 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을 데리고 들어온다. 먹이를 발견한 늑대와 같은 눈빛으로 식당 구석에 빈 테이블 하나를 포착한다. "저기 가서 앉아있어!" 아이 등을 떠밀며 말했다.

'응? 이 사람은 여기 처음 온 건가? 주문 먼저, 그다음에 테이블에 앉는 건데...?' 나는 하나 남은 테이블과 그 엄마를 번갈아 보며 잠시 망설인다.

그때, 내 마음을 읽었는지, 직원이 말했다. "주문부터 하시고 앉으세요."

나는 계산을 하고, 챔이와 테이블에 앉았다.

그 엄마는 우리를 보더니 딸아이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앉아있으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이는 흠칫 놀라며 테이블을 향해 뛰어갔다. 이미 남은 테이블은 없었음에도.

그때, 맞은편에서 뜨거운 국물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던 어린 아르바이트 생과 부딪혔다.

"악!" 국물이 쏟아지며, 스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아르바이트 생이 비명을 질렀다.

늑대 엄마는 아이를 확 끌어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게가 작아서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앳된 소녀의 얼굴이 잘 보였다. 눈동자에 놀람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점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국물이 쏟아진 하얀 손등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로 찬물에 열기를 식히지 않으면 가벼운 화상을 입게 될 거다. 그럼에도 그 엄마와 딸을 보느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늑대 엄마는 자기 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재킷도 뒤집어 보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국물이 전혀 튀지 않았다. 놀랐을지는 몰라도 몸은 멀쩡했다.

"저기... 얼른 화장실 가서 찬물에 손 좀 데고 있어요." 나는 보다 못해 말했다.

내 목소리에 정신이 든 아르바이트 생이 "아...." 하며 자리를 뜨려고 하자, 그 엄마가 막아섰다.

"어딜 가? 제대로 사과하고 가야지!"

그 순간 내 속에서 열이 올랐다. 뉴스와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 장면을 내가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린 소녀의 손등에 입은 화상보다, 멀쩡한 자기 딸과 보호자인 자신이 사과를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어느새 중년의 여자 직원이 다가와있었다.

"아이고, 죄송해요. 아이가 놀랐겠어요."

그러더니, 아르바이트 생에게 말한다.

"얼른 사과드려."

나는 이 사람들이 단체로 미친 건가 싶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사람에게 뭘 하고 있는 거지. 뭐가 어찌 되었든, 다친 사람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닌지.

"저기요, 학생 손에 화상 입었어요. 차가운 손수건이라도 갖다 주시 던지요. 아님, 화장실에 가서 식히고 약이라도 바르게 해 주세요."

나는 하도 답답해서 다시 말했다.

아르바이트 생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아니, 나는 내가 챙길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듯이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가게를 나가는 그녀의 등을 보며, 그 엄마는 화가 식히지 않은 듯이 씩씩거리며 뭐라고 계속 내뱉었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내가 주문한 김밥과 고기만두가 나왔다. 네 살이 된 챔이는 조용히 그 상황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와서 귓속말을 했다.

"이모, 왜 그래?"

"챔아, 이모라고 부르지 마...."

그러자 챔이가 재미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왜 이모라고 부르지 마?"

하아....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그 엄마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일행인 다른 엄마가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앉아있었다.

"이모래. 지 딸이 그랬어봐."

아니나 다를까, 그 엄마는 챔이가 나를 '이모'라고 한 말을 듣자마자 일행에게 말하며 나를 흘낏거렸다.

자신이 한 행동이 딸을 위해 정당하고 옳은 행동이었다는 듯. 내가 아르바이트생을 두둔했던 것은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여자의 건방진 행동이라고. 만약 내 자식이 누군가와 부딪쳤다면, 상대가 다쳤더라도 자기처럼 불같이 화를 내며, 다친 사람을 붙잡고 사과를 요구했을 거라고.

나라면 어린 내 자식에게 식당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맡아놓고 윽박질렀을까?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다면,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대신 사과를 하라고 말했을까?

소녀의 하얀 손등에 빨갛게 부어오른 걸 보며, 혹여 내 딸도 나중에 어디 가서 이런 취급을 당할까 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지 않을까?

"저기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세요."

내가 그 엄마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을 때, 그녀는 당황했다. 혼잣말을 한 두 마디 주절거리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김밥을 다 먹은 이후에 우리(나와 챔이)는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갔다. 그곳에서 회전목마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가 말에 오르려고 할 때, 자기 일행이 옆 말에 탔으니 자기가 이 말을 타야 한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지하철에서는 아이를 제치고 들어가 가방으로 일행의 자리를 맡는 사람을 보았다.

늦은 오후 집에 돌아온 나는 녹초가 되었다. 하루종일 챔 이를 지키기 위해 전투태세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leo-rivas-wtxcaDIdOCM-unsplash.jpg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으로 외로운 싸움이다라는 것을 2년 뒤, 미국에서 내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마도 언니는 그래서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양은냄비를 거칠게 내려치고, 한숨을 쉬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를 아이로 대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기가 지쳤던걸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김 선생에서 만난 그 엄마도, 내 아이는 내가 지키겠다는 마음이 단단해져서 내 자식 말고는 다른 집 자식은 보이지 않게 된 건지도. 그러다 내가 낳은 내 새끼에게도 짜증 내고, 윽박지르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을 수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빈손으로 와서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