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흘러가길 기다리기


저는 밝은 사람이에요. 아니, 밝게 살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가끔 젖은 솜처럼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오늘 그랬어요. 아마 호르몬 때문일 거예요. 

생리통 약을 먹고,  아이 데리러 갔다가, 저녁 준비하고, 집에 우유가 다 떨어져서 운전하고 7분 거리에 있는 슈퍼로 향했어요. 문득, '이런 날 편하게 쉬지도 못하는구나'하며 스스로가 불쌍하게 여겨졌어요. 돈이 넘치게 많았으면 좋겠다. 며칠 동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싶다. 집도 좀 컸으면 좋겠다.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트에 도착했어요.


시원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한적한 진열대 사이를 천천히 걷는 사이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어요. 

이전에도 그랬어요. 울적한 기분이 왔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요. 

감정은 흘러가는 거예요.  우울함도, 화남도, 슬픔도, 기쁨도, 감격도.  그걸 알기 때문에 안 좋은 감정이 찾아올 때는 지나가기를 기다려요. 


슈퍼마켓 안을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건조기에서 방금 꺼내 아직 따뜻한 빨래를 개고, 재미있는 드라마를 봐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던 눅눅한 기분이 사라져있어요.

밝은 감정도 어두운 감정도 자연스러운 삶에 일부예요. 사람이 어떻게 마냥 좋을 수 있겠어요. 그럴 때는 내가 여러 감정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거예요. 축 처진 기분이 지나가기를. 

굳이 억지로 밝아지려 노력하지 않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러다 보면 흘러가요. 내일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매번 그랬거든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이 좋다며 행복해하고, 꺄르르 웃고. 

그냥 그런 거예요. 산다는 건. 











작가의 이전글 이치고 이치에 一期一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