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표현 방식만 고집할 때 우리 모두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 날따라 패밀리 파크에서 공을 선물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8살 아이는 그 공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키즈 모델 신청을 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즉석에서 사진 한 장을 찍고 드디어 원하던 공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사건은 터졌다.
동욱 : 전 그냥 공이 갖고 싶어서 사진 찍은 건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오디션장에 들어선 동욱이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7000:1의 경쟁률을 뚫고 어린이 모델 콘테스트 본선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동욱이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한다.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이라니... 아이는 한동안 오디션 보는 당일날 태권도장에 가겠다고 했다. 결국 어른들의 판단으로 아이가 불행해져서는 안된다며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따르르릉~!
동욱 : 여보세요!
은영 : 안녕하세요. 고객님! SK텔레콤입니다. 이동욱 고객님 맞으시죠?
동욱 : 네! 제가 이동욱인데요. 왜 그러세요?
은영 : 고객님 저희 통신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핸드폰 새로 사신 거 축하드려요!
동욱 : 네! 고맙습니다.
은영 : 고객님. 그런데요 이번에 어린이 모델 본선 진출에 합격되셨다고 소문이 났어요. 토요일 어떻게 할 계획이신가요?
동욱 : 아... 네...
뚜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아니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엔 엄마가 통화를 시도했다.
동욱 : 여보세요?
미녀 : 동욱아. 잘 있었어. 할머니야.
동욱 : 할머니. 안녕하세요!
미녀 : 그래. 동욱이 안녕! 그리고 방금 고모가 전화한 거였어.
동욱 : 알아요.
미녀 : 그런데 왜 끊었어?
동욱 : 고모가 자꾸 헛소리 하잖아요.
수화기 너머로 동욱이의 신경은 매우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동욱이에게 전화가 왔다.
동욱 : 고모 안녕하세요?
은영 : 어 그래! 동욱아 안녕!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동욱 : 엄마가 고모한테 전화하래요.
은영 : ㅋㅋㅋㅋ 동욱아. 전화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동욱이는 어린이 전용폰 배터리 충전하는 게 오래 걸리고 귀찮다며 통화하는걸 싫어한다) 그런데 너 토요일 오디션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면서?
동욱 : 아... 네...
은영 : 고모가 그날 구경 갈까?
동욱 : 고모 마음대로 하세요~!
은영 : 그래! 그럼 내일 오디션장에서 보자!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용기 : 동욱이가 나보고 행사장에 오지 말래.
은영 : 왜? 어제 나한테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용기 : 몰라! 동욱이 이 녀석이 할아버지는 오지 말래. 그래서 안 갈 거야.
미녀 : 아니. 그런다고 애랑 똑같이 하면 되겠어요. 이상한 소리 말고 빨리 갔다 와요.
용기 : 초대받지 않은 곳에 왜가? 할아비 오는걸 그렇게 싫어하는데.
아버지는 안 갈 기세로 누워서 TV를 시청하고 계셨다. 그리고 행사 시작 1시간 전.
용기 : 너 빨리 준비해.
은영 : 왜 안 간다며? 나도 아빠 안 가면 안가.
용기 : 난 안 가고 싶은데 네 오빠한테 오라고 아까부터 계속 문자 오잖아. 어쩔 수 없이 가야지.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사람 치고 나의 준비시간을 너무 재촉하셨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동욱이는 할아버지를 본체만 체 한다. 아버지는 그런 동욱이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이들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년 겨울 할머니에게 장난감 선물을 받은 동욱이가 이런 말을 했다.
동욱 : 오늘이 기분 최고 좋아요. 매일 크레인 킹을 갖고 싶어서 유튜브를 찾아봤어요. 어릴 때 꿈속에서도 크레인 킹을 잘 맞추는 꿈을 꿨어요.
고모. 이 장난감을 갖고는 서울에 갈 수 없어요. 분명히 할아버지는 또 날 괴롭힐 거예요. 나는 보물 찾기 싫어하는데 자꾸 서울 할아버지는 내 장난감을 숨겨놓고 찾으라고 하셔서 싫어요. 서울 할아버지는 장난감 안 사주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버지는 첫 손주인 동욱이가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장난을 치셨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가장 큰 사랑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빠와 나는 그런 아버지의 장난을 좋아한다. 그러나 조카 동욱이는 겁도 많고 마음이 여리고 섬세해서 그런 장난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대로 동생 5살 진욱이는 누구보다 장난기가 심하다. 자신이 먼저 어른들에게 장난을 치고 약 올리며 즐거워한다. 이렇게 한 가족, 한 핏줄인데도 저마다의 성향은 너무나 다르다. 그 순간 또다시 내 안의 따뜻한 음성이 들린다.
얘야. 누구든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시행착오를 겪는단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가장 큰 실수는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상대를 사랑해 주려고 할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언젠가 실제 있었던 이야기란다. 길 고양이를 불쌍하게 여긴 한 아주머니가 먹을 것을 주었단다. 길 고양이는 계속해서 아주머니를 찾아왔지. 그때마다 그녀는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 고양이가 죽은 쥐를 물어와 그녀의 집 앞에 놓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징그럽다며 길 고양이에게 소리쳤다. 그 다음날 그 집 앞엔 목장갑이 놓여 있었다. 언젠가 길 고양이는 집 앞에서 목장갑을 끼고 밭일하는 아주머니를 본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죽은 쥐가 아닌 목장갑임을 깨닫고 선물한 것이다. 그렇게 길 고양이가 물어온 목장갑은 날마다 아주머니의 집 앞에 쌓여갔다.
얘야. 사랑하는 법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길 고양이도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란다. 신의 사랑은 처음부터 모든 생명체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비로소 사랑이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한 행동들이 상대방에게는 죽을 것 같이 괴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의 자녀들은 자신의 고집대로 서로를 대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헤아려 보듬어 준단다.
너희는 이 모든 상황을 기억하거라.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표현 방식은
사랑이 아닌 무관심과 자기 고집에서
나오는 이기심일 뿐이란다.
길 고양이처럼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여 서로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감정을 구분하는 분별력은 마음속 신성神性에 귀 기울일 때만 가능하단다.
현민 : 아버지. 오늘은 동욱이한테 절대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저도 지금까지 동욱이가 하는 말이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았더라고요. 오늘은 새로 산 핸드폰도 놓고 왔어요. 그래서 "너 왜 핸드폰 안 갖고 가?"하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전화할까 봐." 그러더라고요. 동욱이는 우리들 클 때랑 많이 달라요.
그 순간 저 멀리 겁 많고 부끄러움 많은 8살 아이가 무대 위에 오른다. 오빠의 부탁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맙소사! 웃음기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열심히 심사위원과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선보인 후 장렬히 전사한다.
동욱 : 에휴... 나 일등은 안 될 거 같아요. 상금이 100만 원인데...
저축왕 동욱이는 상금이 갖고 싶었나 보다. 드디어 결과 발표가 났다. 탈락이다. 아이는 내심 서운한 기색을 내비친다.
가족들 : 동욱아! 수고했어! 어른들도 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떨리는 일인 줄 알아? 그런데 동욱이는 부끄러워서 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냈잖아.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인데! 우리 동욱이 정말 잘했어! 최고!
그때 아버지가 다가와 동욱이를 끌어안으며 볼에 뽀뽀를 하신다.
용기 : 할아버지 눈에는 우리 동욱이가 제일 잘 하더라! 진짜 멋있었어. 동욱이 최고야!
8살 동욱이는 가족들의 말에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하이파이브를 하며 말한다.
동욱 : 처음에는 진짜 떨렸어요. 그런데 무대 위에 올라가니깐 생각보다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활짝 웃으며 5살 진욱이랑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내 곁에서 혼잣말 비슷하게 말한다.
동욱 : 할아버지가 전화로 오겠다고 했을 때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그때 오라고 말할걸 그랬어요.
은영 : 어머! 우리 동욱이가 그런 기특한 생각도 했어? 동욱이 마음이 진짜 예쁘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오셔서 축하해 줬잖아. 동욱아. 고마워! 덕분에 온 가족이 이런 좋은 구경도 하러 올 수 있어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 뭐 먹으러 갈까~? 동욱이 뭐 먹고 싶어?
동욱 : 회!
델델,, 오빠와 나는 아이의 대답에 순간 당황하며 서로를 쳐다본다. ‘하...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회야...’ 우리 집안에서 아버지만 회를 즐겨 드시지 않는다. 오빠가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전환시킨다.
현민 : 동욱아. 아빠가 어제 회사에서 회를 엄청 많이 먹고 왔더니 회 생각이 별로 없네. 회는 내일 꼭 사줄게 우리 다른 거 먹으러 갈까?
동욱 : 그럼 볶음밥!
다행이다. 볶음밥 네가 있어서.
은영 : 그럼 볶음밥 파는 중국집으로 가자!
아버지는 근처 맛있는 중국 요릿집을 검색하셨다. 그러나 도착하자 본인이 원했던 중국집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다시 어디로 갈지 코스를 재정비하며 횟집을 거론하신다.
동욱 : 아빠가 어제 회 많이 먹었다고 했는데...
동욱이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차 안에서 손주들을 주려고 유치원에서 챙겨 온 장난감을 슬그머니 내놓으셨다. 아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신기한 듯 요리조리 만지며 꺄르륵 웃는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제철인 숭어 한 마리를 잡으러 수산시장을 향해 운전대를 틀었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요한 1서 3,18)
*"보라, 내가 도둑처럼 간다. 깨어 있으면서 제 옷을 갖추어 놓아, 알몸으로 돌아다니며 부끄러운 곳을 보일 필요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묵시록 16,15)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믿음을 저버린 자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쁩니다. (티모테오 1서 5,8)
*지혜는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보물, 지혜를 얻은 이들은 그 가르침이 주는 선물들의 추천으로 하느님의 벗이 된다. (지혜서 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