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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_큰 상처도 큰 위로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준다

우리는 신의 모상과 가깝게 닮아 갈 수 있는 환경에 보내어진다.

by 이은영


우리 집안은 총 11명의 사촌 형제들이 상계동이란 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랐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학교도 함께 다니고 사고도 함께 치고 다녔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우리들은 어른이 되었다. 그중 4명은 짝꿍을 찾아 결혼했고 7명은 짝꿍을 찾고 있다. 기혼자 중 2명만이 아이들을 낳았다. 그렇게 올해로 8살, 7살, 5살 사랑스러운 남자 조카들이 모두에게 생겼다. 그 옛날 어른들이 만들어준 가족의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7월경. 외사촌 형제, 자매들끼리 가족 여행을 떠났다.


사회자 : 자! 지금부터 어린이 장기 자랑 시간이 있겠습니다. 나와서 장기를 뽐내는 친구에게 과자 선물을 주겠습니다. 누가 먼저 할까요?


당시 6살 우진이가 손을 들며 가운데로 나온다. 조금의 쑥스러움도 없이 오늘이 인생 마지막인 것처럼 유치원에서 배운 춤과 노래에 빠져들었다. 참고로 이 아이는 자신의 엄마와 이모가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사회자 : 박수! 짝짝짝. 와! 우진이 참 잘했어요. 그럼 이번엔 또 누가 할까요~? 동욱이 나와서 해봐.


순간 7살 동욱이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숨는다. 그러자 4살 진욱이가 약간의 부끄러움을 타며 일어난다. 그리고는 너무나 심오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춤을 추다 엄마 무릎 위에서 좌절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모두가 아빠, 엄마 미소를 짓는 찰나 6살 우진이가 또다시 일어서 춤과 노래를 뽐낸다. 어른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지면서 다음 타자인 동욱이를 자연스럽게 부른다.


어른들 : 동욱아 너도 나와서 해봐~! 어린 동생들도 이렇게 잘하는데 제일 큰 형이 돼서 왜 이런 것도 못해~?


그 소리에 7살 동욱이는 방문 사이로 빼꼼히 쳐다보던 얼굴마저 문을 닫고 감춰 버린다. 그 순간 또다시 6살 우진이가 일어나 처음 했던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아이의 엄마는 이제 그만하라며 흥에 취한 아이를 진정시킨다. 그렇게 한 바탕 웃고 떠들면서 쉬고 있었다.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중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던 승부욕 강한 여자아이 었다. 승부욕이 강한 만큼 패배하면 한 없는 열등의식에 사로 잡혔다. 열등의식을 뛰어넘기 위해 재도전하고 실패하고 깨닫는 과정을 아무도 모르게 무한 반복했다.


우리 형제들이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때다. 대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이날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사회자 : 자~! 누가 먼저 할래?


그때 언니, 오빠, 동생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춤과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댄 아이는 내성적인 나였다. 텐트 바닥이 밀릴 때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부르며 춤을 췄다. (흑역사의 촬영 영상은 여전히 비디오테이프로 남아 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보면서 웃곤 한다.) 그러한 이유로 어린 시절 함께 자란 가족이나 친구들 조차 내가 원래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성격인지 모른다. 부모님의 차별 없는 사랑과 풍부한 물질적 지원 덕분에 자신감 넘치는 아이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런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말한다. 자신은 나처럼 화목하지도 부유하지도 못한 가정에서 자라 지금의 불행한 삶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가족들에게 상처받지 않고 자란 아이는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의 모든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완벽한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이상적으로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하지 않았다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인 관계의 기술에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갈 때 상대의 아픔 또한 이해할 수 있는 큰 그릇의 성인聖人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인물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하는 사람은 해야 할 이유를 찾아 해내지만, 하기 싫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변명만 찾아 늘어놓는다. 그렇게 스스로 선택한 인생을 끝까지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 탓으로 돌려 원망만 한다. 스스로 불행의 구덩이를 깊이 파고 들어가 죽지 못해 사는 사람처럼 무덤 안에 드러눕는다.


나 역시 죽음의 무덤 속에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왜 책 속에 나오는 훌륭한 부모들처럼 이상적이지 못할까? 왜 저 친척들은 오빠와 나를 비교하며 상처 줄까? 왜 저들은 계속 나를 비아냥 거릴까? 내 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 시기, 질투하며 못되게 구는 걸까? 하는 생각에 한 없이 원망했다. 그 순간 또다시 내 안에서 따뜻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신은 인간이 신성神性에
가까워질 수 있고
신을 가장 닮아갈 수 있는
그 자리에 보내준다.
그렇기에 지금 처해진 환경은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이며,
네게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란다.


사랑의 신은 인간이 이 땅에서 자기 자신으로 꽃 피우기 가장 좋은 환경을 선택하여 심는 단다. 신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고 신의 계획은 인간의 계획과 다르기 때문이란다.

너희 모두는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다. 이 세상에서 각자의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각자의 성향대로 이 땅에서 피고 지고 열매 맺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진리를 모르는 너희들은 아직 이 세상에 각자가 어떤 사람으로 쓰일지 알지 못한단다. 옹기장이는 자신이 다져 만드는 진흙의 쓰임새를 알고 있으나 진흙은 자신이 어떤 그릇이 될지 모르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제 주인이 치대고 밟는 과정에서 고통만 느낄 뿐이란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진리를 조금씩 깨닫는 진흙은 선한 주인의 계획을 믿게 된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희망의 노래를 부른단다.

‘그래. 이 고통을 감사히 견디어 내고 인내하다 보면 나는 반드시 좋은 그릇으로 탄생될 거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될 거야.’ 신은 그러한 믿음을 간직한 인간을 의로운 사람이라 부른다.

하지만 선한 주인의 계획을 믿지 못하는 진흙은 고통 속에서 원망의 한숨만 내쉬며 모두를 힘들게 한단다.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 무슨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이야! 허구한 날 재수 없이 힘든 일만 반복되는 거야. 진짜 다 죽이고 나도 같이 죽고 싶다.’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해 믿음이 없는 까닭에 스스로 지옥불에 들어가 고통을 받는다.

얘야. 작은 그릇을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란다. 지금의 네 고통의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하거라.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보석이 숨겨진 성공의 문 앞에서 신세 한탄만 하다 뒷걸음질 친단다.


성공한 사람이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을 마음 깊이 잘 새겨 두거라.


성공한 사람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다.
자신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기쁘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모든 상황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이다.


얘야. 스스로 행복한 사람만이 타인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며, 세상을 이롭게 만들어갈 수 있음은 절대 불변의 진리란다.


나는 이 모든 진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7살 동욱이의 눈높이에 맞게 전해 주었다.


은영 : 동욱아. 동욱이는 아직 사람들 앞에 나서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쑥스럽지?


동욱이는 고개를 떨군 채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은영 : 동욱아 괜찮아.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잘 하는 게 모두 다르기 때문이야. 동생 우진이는 춤과 노래를 잘 하고 우리 동욱이는 혼자서 레고 만드는걸 좋아하고 잘하잖아. 언제든 동욱이가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때 그때 즐기면서 하면 돼.


그러자 아이의 슬퍼하던 큰 눈동자가 반짝이며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는 자신이 레고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 내 앞에서 신나게 설명했다.


그 후 1년 뒤. 8살이 된 동욱이는 유치원 졸업식을 위해 혼자서 춤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에게 조차 쑥스러워 방 문을 걸어 잠그며 연습하던 아이 었다. 그러나 D-day날에는 기죽지 않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씨스타의 'SHAKE IT"을 기가 막히게 추었다. 스스로 무대 위를 즐기면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작년 우리 둘만의 비밀 이야기에 대한 화답을 하듯이 말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야 55,8-9)

*아! 네가 비참하게 되리라. 자기를 빚어낸 이와 다투는 자야. 옹기그릇이 옹기장이와 어찌 말다툼하겠느냐? 옹기 흙이 어찌 옹기장이에게 "당신이 무엇을 만드는 거요?"할 수 있겠느냐? 작품이 어떻게 작자에게 "형편없는 솜씨로군."하고 불평할 수 있겠느냐? (이사야 45,9)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예레미야서 18,6)

*실로 황금은 불 속에서 단련되고 사람은 굴욕의 화덕에서 단련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 (집회서 2,5)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에젤키엘서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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