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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_하늘을 날아오른 미운 오리 새끼들

열등감. 타인과의 비교는 내적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다.

by 이은영


며칠 전 부모님의 안방 서랍을 뒤적이다 깊숙한 곳에 보관된 편지들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편지 한 통이 있다. 보낸 이의 주소와 받는 이의 주소가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우표가 붙여져 있다. 한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 우표까지 붙여 보낸 사연은 무엇일까? 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은영이에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빠. 엄마에게


아빠. 엄마. 저 은영이예요. 제가 아빠. 엄마에게 너무 못되게 굴죠. 죄송해요.

하지만 아빠. 엄마에게도 잘못된 점이 있어요. 제가 가족 중에 제일 쫄병이라고 매일 저에게만 심부름시키잖아요. 또 오빤 공부해야 한다고 저에게만 일 시키시고. 전 그런 게 못 마땅해서 못되게 구는 거예요.

제가 아빠.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 뿐이에요. 아빠. 엄마께서도 저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으시겠지요. 저도 요구를 했으니깐 이유가 타당한 것은 따르겠어요.

저는 모든 것이 오빠에게 비교되고 떨어져서 늘 속상해요. 아빠. 엄마 전 왜 늘 오빠에게 비교되죠? 오빤 저보다 2살이 더 많은데 말이에요. 그리고 제발 다른 집 아이들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너무 아빠. 엄마에게 해달라는 것만 쓴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이것이 저의 진실한 속 마음이에요. 이젠 제 마음이 시원하네요. 아빠. 엄마 저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럼 몸 건강히 오래 사세요.


1993년 12월 17일 금요일 –딸 은영 올림-



사연은 이러했다. 아무리 부모님에게 비교하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달라 말씀드려도 변함이 없으셨다. 13살 아이는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호소하고팠다. 그 결과 한집에 살면서 우표까지 붙여가며 편지를 쓴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친아, 엄친딸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성장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들은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 자매끼리도 비교를 당하며 자란다. 이러한 비교 습관은 성인이 돼서도 자기 자신은 물론 자녀와 배우자에게도 대물림된다.

"누구 집 아들 딸은 반에서 몇 등을 하고 학교와 직장을 어디에 갔다더라. 매달 용돈을 얼마 주고 해외여행도 시켜준다더라. 그런데 넌 뭐니?"

"내 친구 애인은 이렇게 저렇게 해줬다. 이런 것도 선물해 주고 이런 이벤트도 해줬다더라. 그런데 넌 뭐니?"

"내 친구 남편(부인)은 능력이 좋아서 시댁(친정) 식구들에게 이렇게 해줬다더라. 연봉이(요리 솜씨가) 훌륭해서 이런저런 것도 한다더라. 그런데 넌 뭐니?"

이러한 종류의 비교 습관은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며 괴롭히는 악순환일 뿐이다.

그러나 비교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전히 비교당하고 선택받는다. 우리 또한 사람이든 사물이든 비교하고 선택한다. 단지, 이성을 소유한 인간이 현명한 비교를 할 줄 아는 지혜를 갖었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


나는 평생 엄친아의 대명사인 2살 많은 친오빠와 비교를 당하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엔 오빠 곁에 서있으면 내가 너무 부족하다 못해 찌질한 사람처럼 느껴져 위축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오늘날까지 엘리트 코스만 밟고 있다. 그에 반해 나는 늘 아웃사이더 마이웨이의 길을 걷고 있다. 오빠는 훈훈한 외모와 반듯한 성품, 활발한 성격, 명석한 두뇌로 어디에 가도 칭찬 일색이었다. 어릴 때도 항상 반장은 물론 전교 어린이 회장인 이현민이었고 나는 그냥 청소반장, 현민이 동생으로 불리었다. 초등학교 등하굣길 마주치는 낯선 학생들이 다가와 물었다.

"네가 현민이 동생이니? 너희 오빤 집에서 어때?"

나는 물론 또래 친구들에게도 그는 범접할 수 없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 었다. 활달한 성격의 그는 아람단 단장까지 되어 몇 백명의 단원들을 산속에서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를 보여 주었다. 그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조차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특별활동 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면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빨개졌고, 목소리와 온몸은 바들바들 떨렸으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래서 오빠와 같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가 앞서 걸어가면 그의 발자국대로 뒤 따라 걸었다. 더욱 닮아지고 싶은 마음에 작아진 오빠 옷을 스스로 물려받아 헤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드디어 오빠를 따라 아람단에 입단했다. 두렵고 떨려도 이를 악물고 사람들 앞에 계속해서 나섰다. (지금의 외향적인 성격은 어린 시절 열등의식 덕분에 형성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학교 친구들은 나만의 개성을 알아봐주기 시작했다. 이현민 동생에서 벗어나 '그림 잘 그리는 은영이', '지점토 잘 만드는 은영이',‘춤 잘 추는 은영이’, ‘체력장 특급받은 은영이’등으로 통했다. 드디어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최고학년이 되었을 때 아람단 부단장이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그의 목소리 대신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늘 '현민이 엄마'로 불리던 심지어 가게 상호명도 '현민 BYC'로 지었던 '우리 엄마'도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알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대로 중학생이 되었고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여전히 모범생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모범생 오빠를 따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안이한 우월성 추구’를 시작했다. 즉 인간이 남들보다 특별해지고 주목받고 싶다는 욕구는 강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우월성을 추구한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흔히 비행청소년이 되는 과정이고, 더 나아가 범죄자가 되는 원인이다.

정신병리학에서는 맏이가 보수적인 성향, 다시 말해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이유를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함이라 말한다. 귀여운 동생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기대에 빗나가지 않으려고 스스로 통제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동생에게 빼앗긴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히려 말썽을 피우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두고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쟁탈전을 벌인다. 이때 부모가 아이들을 비교하면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리 집안처럼 개성 넘치는 둘째와 의젓한 첫째를 비교할 때 둘째는 자연스럽게 방황한다. 그 결과 사춘기와 맞물리면 안이한 우월성 추구를 선택한다. 흔히 문제아가 되는 것이다.


그 시절 그렇게 방황하던 나를 붙잡아 준 고마운 사람이 곁에 있었다. 처해진 상황과 상관없이 끝까지 나를 믿고 나의 존재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단 한 사람. 바로 나와 늘 비교 대상이었던 친오빠 이현민이었다. 그는 남들의 걱정과 비교 속에서도 항상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 오늘날 까지도.

"난 내 동생 은영이를 믿어!"

그런 오빠의 진심 어린 믿음과 사랑 덕분에 사춘기 시절에도 큰 사고 없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스로 정신적 성장통을 치르고 나서야 소중한 자신을 열등감의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는 지혜를 터득했다.


우리 모두는 찌질이거나 위대하다.
단지, 자신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만이 신神의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는 용감하거나 겁쟁이, 이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어울리며 살아간다.

용감한 사람은 자신의 장단점, 성공과 실패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실패의 경험을 성공의 디딤돌로 활용한다. 남들과 다른 고유한 자신만의 경험을 가장 큰 재산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인간의 눈에는 재앙처럼 보이는 것들 조차 신의 축복으로 변모시킨다.

겁쟁이 사람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스스로 비교하며 원망한다. 그리고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쳐 버린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여 주지 않고 타인의 삶에 집중한다. 언제나 남 탓만 하고 남 시선에만 신경 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실패의 경험을 인생의 걸림돌로 남겨 놓는다. 자신에게만 그런 재수없는 일들이 벌어지냐며 평생 신세 한탄만 한다.

우리 모두 어느 부류에 속한 채 이 세상을 살아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친인척까지 오빠와 나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렇게 홀로 외롭게 울고 있을 때 내 안에 누군가가 따뜻하게 말을 걸어왔다.


얘야. 네 삶을 변화시킬 생각이 없다면
지금의 상황을 원망하지 말자.
그러나 계속해서 원망할 생각이라면
네 삶을 변화시켜라.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아라. 너희 모두는 같은 인간이지만 생김새도 처해진 환경도 모두 다르단다. 신의 계획에 따라 세상에서의 쓰임새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이유 없이 창조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기억하거라.

하찮아 보이는 저 작은 모래알 조차 신의 계획에 따라 생겨나고 변화되고 사라진다. 만일 너희들에게 지금과 다른 모습을 원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마찬 가지란다. 같은 종류인 꽃조차도 생김새가 다르고 피고 지는 시기도 다르단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라. 작고 어여쁜 꽃은 제 옆의 큰 나무를 닮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듬직한 큰 나무도 작은 꽃이 되고 싶어 하며 시기, 질투하지 않는단다.


얘야. 고개를 돌려 숲 속 동물들을 바라보아라. 토끼는 코끼리에게 깡충깡충 뛰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코끼리는 새에게 긴 코로 음식을 받아먹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새는 치타에게 두 날개로 하늘을 날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치타는 사람에게 네 다리로 날쌔게 달려야 험난한 세상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단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서로 다른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질투하며 괴로워하는 존재가 있단다. 바로 신성神性에서 멀어진 인간이라는 생명체다.

타락한 인간은 타고난 외모는 물론 성격, 직업, 집안, 종교까지 모두 비교하며 우월감에 빠지거나 열등감에 휩싸인다. 스스로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 몸부림친다. 그러나 인간이 마음을 고쳐먹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 지옥의 경험은 타인의 방황을 이해하는 사랑의 밑거름으로 쓰일 것이다.


지친 영혼들아 모두 잘 듣거라. 너희가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진리에 귀 기울일 때 지옥 같던 세상은 천국으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누구도 더 이상은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아 행복할 수 있다고 다그치지 않을 것이다.


신神은 자신의 작품인 사람들이
더욱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란다.


얘야. 인간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어긋난 길을 가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그동안의 네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며 내가 너에게 들려주었듯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어라. 그리고 항상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믿고 희망하여라. 죽은 줄 알았던 작은 불씨가 바람결에 되살아나 온 산을 불태우듯, 죽어가던 영혼을 향한 신의 사랑에 포기란 없단다. 너희 안에 존재하는 신의 위대함을 믿지 못하겠다면 부디 세상의 섭리를 바라보면서라도 깨달아라.

마음으로 듣고 보고 뉘우쳐라. 천국은 지금 이 순간 너희 말과 마음 안에 있다.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믿어주는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때론 현실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그런 자신을 믿어주는 존재가 있음을 떠올리거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의 신은 너보다 앞서 네가 가야 할 길을 계획하며 걸어가고 있음을 말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복음서 14,27)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마태오 복음서 12,20-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4,17)

*행동이 굼뜨고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는데 그는 능력이 없어 가난에 파묻힌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인자하신 눈으로 굽어보시고 비천한 처지에서 들어 올리시며 그의 머리를 들어 높이시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란다. 좋은 일과 궂은일, 삶과 죽음, 가난과 부, 이 모두가 주님에게서 온다. 지혜와 슬기와 율법에 대한 지식이 주님에게서 오고 애정도 선행의 길도 그분에게서 온다. 잘못과 어둠은 죄인들과 함께 창조되었고 악은 악을 과시하는 자들과 함께 자라난다. 주님의 선물은 경건한 이들 곁에 머물고 그분의 호의는 항구 하게 성공으로 이끈다. (집회서 11,12-17)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이사야서 46,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요한 복음서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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