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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 앞에 두 개의 갈림길이 놓일 것이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라. 그 길이 네 운명이 된다

by 이은영


"마음속에서 신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미쳤어?"

사람들은 역시 쟤는 4차원, 또라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다양한 반응 앞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경험을 통해 보고, 듣고, 깨닫는 이야기들은 스스로 알 수 있는 수준이 넘어선 신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어떤 수준의 지능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삶 곳곳에서 다가오는 지혜를 스스로의 능력으로 찾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똑똑하지 못한 낮은 두뇌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속 좁은 인품 덕분에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부족함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인정하니 하늘에서 지혜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감당하기가 버거워 제발 천천히 축복해 달라고 까지 청했다.


그렇게 사랑의 신과 함께 대화하며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과, 비난과 조롱의 터널을 지나갔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영성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종교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하느님의 은총, 축복, 은사’와 같은 단어를 내게 쏟아부었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변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늘 같은 존재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져 있었다.

내 삶과 모습은 신나는 여행을 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 어린아이 같다.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며 시시각각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듯, 때가 되면 제 모습을 바꾸는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그 당시 또다시 주변은 시끄러워졌다. 바로 그런 나의 존재를 시기, 질투하며 모함하는 종교인들이 주변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흔히 안티팬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얘야. 지금의 상황을 잘 보고 듣고 깨달아라.

질투에 눈이 먼 사람들은 질투하는 대상을 모함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며 스스로를 속여 버린다. 어떻게든 시기, 질투의 대상을 깎아내리려고 아등바등거린다. 특히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던 사람이라면 질투는 극에 달해 분노로 변한다.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이 새로운 누군가에게로 옮겨가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급기야 상대를 죽이기 위해 진리를 왜곡하는 말들을 쏟아 늘어놓는다.


그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해가 되는지
분별력을 상실했다.
분별력을 상실한 인간은
결코 사랑의 평온 속에 머물 수 없다.

때문에 마음속 질투와 분노의 감정은 상대에게 해가 되기 이전에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 우물에서 악을 퍼내어 마신 후 세상을 향해 배출하는 중이란다. 추수의 계절이 오면 반드시 자신이 뿌린 곳에서 자라난 열매를 거두어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해하며 서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왜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평온하지 못한 것인가?'

지금의 상황을 기억해라.

그들의 모습 속에서 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라. 살아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찬 악령의 실체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은 그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악마의 유혹도, 나쁜 감정도 모두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신이 허락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임을 믿어라. 살아 있는 인간이기에 시기, 질투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하단다. 또 한, 인간 앞에서의 인정과 인기는 이렇듯 허무한 것이란다. 사랑의 진리 앞에서의 인정만이 인간에게 참된 평온함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이 밝은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악이 없다면
선이 좋은 것인지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이 세상에 악의 혼돈이 없다면
신의 평화를 갈구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마음 안에 악의 미움이 없다면
신의 사랑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즉, 너희 안에 인간적인 부족함이 없다면
신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한단다.
그러므로 인간의 부족함이란 신의 축복이다
부족함이 없다면 신 앞에 엎드린
인간의 겸손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너희 안에 드리워진 어둠과 악을 통해
참된 겸손의 자세를 배워라.

몇 해 전. 가톨릭 봉사단체인 복음화 학교 교장 선생님과 봉사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그런 글들을 나누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안 그래. 평신도인 내가 이 학교를 설립할 때 가장 반발이 심한 사람들이 종교인이었어. 그러니까 나한테 잘 보여놔. 나중에라도 너를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나타날 때 막아 줄 수 있을 테니깐."

두려웠다. 앞으로 내게 어떤 시련이 들이닥치게 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주변 여자들의 시기, 질투에도 넌덜머리가 났었는데 이번에는 신을 사랑하는 전 세계 종교인들의 시기, 질투라니... 세상에 맙소사!

어느 날은 직접 체험한 글을 있는 그대로 써내어도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편집되었다. 대신 쓰지도 않은 대목이 그 자리에 들어찼다. 그렇게 내가 목격한 진실은 사라지고 종교의 교리로 뒤바뀌어 있었다. 그 뒤로 다시는 글을 써서 제출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입 밖에 신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문자 보내기를 멈추었고 신앙체험 발표 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발버둥 치고 뛰어 봤자 신의 계획 안이었다. 몇 년 후 지금의 나는 그동안 또다시 보고, 듣고, 체험한 일들을 입 밖에 꺼내어 놓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됐다. 그 일을 하지 않을 때 나 자신이 가장 불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얘야. 세상 풍경과 같이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의 감정 앞에서 너 자신을
잘 보이려 애쓰지 마라.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의
신 앞에서 너 자신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도와주는 천사들을 땅끝에서부터 모아 들일 것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신과 함께 세상 위를 걸어가며 네 곁에서 천군만마天軍萬馬가 되어 줄 것이다. 세상의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백대로 신의 전지전능함을 믿고 의지하는 이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권좌에 앉게 될 것이다.


세상의 권력이란 제 유익에 맞지 않을 때
모습을 바꾸어 너를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그것이 두려운 나머지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사랑의 진리를 왜곡하며 죽이는 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희와 함께 있다.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네 곁에서 괴로워 죽어가는 영혼들이 보이지 않느냐? 그때의 너와 같이 힘든 영혼들이 굶주림에 목말라하는 고통의 울부짖음이 느껴지지 않느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만일 이 모든 일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을 걸어 잠금다면 네가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네게 주는 신의 축복을 두려워하며 네 안에만 가두어 둔다면 그 기쁨은 겨자씨만큼 매우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을 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될 때 그 기쁨은 우주만큼 커질 것이다.

얘야. 기쁜 소식은 누군가 전해 들려주어야만 들을 수 있단다. 너희들은 기억하라. 언제나 세상 속에서 앞서 걸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경고 나팔을 불어야 할 것이다. 이때 나팔 소리를 듣고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돌보며 경고 나팔을 불지 않는 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뒤 따라오는 사람들은 분별없이 자신의 옳지 않은 행위로 인해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앞서 가며 사랑의 진리를 통해 직접 보고, 듣고, 깨달은 것을 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신이 직접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를 감추지 않고, 사람들 앞에 펼쳐놓으며 경고 나팔을 부는 이는 행복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흑역사, 죄 뒤에 숨어 지내며 불행의 늪에서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보아라.
신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악을 선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위대한 연금술사의 길을 선택한다.

오늘도 인간의 삶 앞에
두 개의 갈림길이 놓일 것이다.
스스로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라.
그 길이 네 운명이 될 것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코린토1서 9,16)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3,19-21)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고 질투는 뼈의 염증이다. (잠언 14,30)

*분노가 잔인하고 격분이 홍수 같다 해도 질투를 누가 당해 낼 수 있으랴? (잠언 27,4)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싸움을 걸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26)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티토서 3,3)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마태오 복음서 12,14)

*그는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7,18)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이튿날 하느님께서 보내신 악령이 사울에게 들이닥쳐 그가 집 안에서 발작을 일으키자, 다윗이 여느 날처럼 비파를 탔다. 이때 마침 사울은 손에 창을 들고 있었다. 사울은 '다윗을 벽에 박아 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창을 던졌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 번이나 몸을 피하였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며 자기에게서 돌아서셨기 때문에 다윗을 두려워하였다. 사울은 그를 천인 대장으로 임명하여 자기에게서 떠나보냈다. 다윗은 군대 앞에 서서 출전하곤 하였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다. 사울은 다윗이 크게 승리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좋아하였다. 그들 앞에 서서 출전하는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8,7-16)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3,27)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로마서 10,13-18)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사람의 아들아, 네 동포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어떤 나라에 칼을 끌어들이려 할 때, 그 나라 백성이 저희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뽑아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자. 그는 자기 나라로 칼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면,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칼이 쳐들어와 그를 잡아간다면, 그가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가 죽은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칼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아, 백성이 경고를 받지 못하였는데 칼이 쳐들어와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을 잡아간다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잡혀가는 것이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파수꾼에게 붇겠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할 때,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붙겠다. 그러나 네가 그에게 자기 길에서 돌아서라고 경고하였는데도, 그가 자기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고,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에제키엘서 33,1-9)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시편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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