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 목소리에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걸어가라.
5년 전. 꾸준히 글을 쓰며 문자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 오랫동안 사귀다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곁에서 힘과 용기를 주던 친구가 있었다. 순수한 사랑을 할 줄 알았던 그가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은영아. 정말 신기해! 오늘 우리 동네 성당 사람한테 문자 한 통을 받았는데 예전에 네가 보낸 문자야. 너한테 문자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한테 재전송했나 봐. 노래 가사말처럼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리듯 네 글이 퍼져나가고 있어.”
너무 신기해 미치겠다는 듯 자신의 일처럼 신나 했다. 그의 순수한 행동도 그가 전해준 소식도 그 당시 나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무시당하고 차단당하던 찬밥신세의 글이 었는데... 그런 글이 강 건너 내가 알지도 못하는 곳까지 퍼져나가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때 가톨릭 봉사단체인 복음화 학교라는 곳에서 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과 수업을 받고 있었기에 어린 청년에 속했다. 그 당시 세례 받은지 얼마 안 된 어린 학생의 신분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내가 어르신과 봉사자들 게다가 신부님과 수녀님에게 문자 보내는 일은 실로 엄청난 두려움이었다. 내 글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성경을 통해 얻은 삶의 깨달음, 사랑의 지혜와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자칫 주제넘어 보이지는 않을까, 건방져 보이지는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렇지만 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사랑의 마음이 커지고 간절해지다 보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자를 받은 누군가는 보내지 말라고 했고, 누군가는 차단했고, 누군가는 비아냥 거렸다. 누군가는 이단이 숨어 들어왔다고까지 표현을 했다. 그래서 더욱 더 포기하지 않았다. 선한 신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숱한 오해와 멸시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렇게 한 발 한발 걸어가던 어느 날. 봉사자와 학생들과 다 같이 술자리를 가졌다. 연세 드신 분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도 어김없이 안주만 집어 먹고 있을 때였다.
“항상 문자 잘 받고 있어요. 글이 너무 좋아서 회사에서 일하는 신랑한테까지 보내줬어요. 그랬더니 신랑도 글이 너무 좋다면서 답문을 보내오더라고요. ”
한 학생 아주머니께서 봉사자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어르신 봉사자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그 글은 제가 쓴 게 아니고 여기 이은영 메리 엔젤(세례명) 학생이 쓴 거를 제가 다시 보내드린 겁니다.”
순간 함께 앉은 테이블의 어르신들은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안주를 신나게 집어 먹고 있던 나의 몸짓은 일시정지가 되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주님의 은총이라며 말씀해 주셨다. 훗날 신부님과 수녀님도 그것은 하느님의 은사(신이 주는 선물) 라며 아름답게 쓰라고 응원해 주셨다. 그 순간 또다시 내 안에서 따뜻한 음성이 들려온다.
얘야.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짓눌려
천국의 기쁨을 포기했단다.
너희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라.
언제나 찬성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반대의 목소리는 가장 시끄럽다.
10명의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들어 큰 소리로 항변하는 사람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존재를 동일시하게 여기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들으면 발끈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 손을 들어 목소리를 내는 이는 둘 중 누군가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처음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대의견을 내는 목소리가 가장 먼저 크게 들릴 것이다. 이때 당황하며 주저앉아 포기하는 이는 결코 모든 인간이 원하는 세상, 천국을 얻지 못한다.
모두가 천재 과학자라 부르는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처음 듣는 순간 얼토당토않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그 아이디어는 희망이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적인 갑부들이 입을 모으며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처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모두가 찬성을 한다면 하지 마라. 그것은 이미 누군가가 성공시킨 레드오션(경쟁의 피바다) 사업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고개를 저으며 미쳤냐고 말한다면 해야만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누구도 실현시키지 못한 블루오션(아름다운 바다에서 헤엄치는 자유) 대박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극심한 반대 반응은 혁명적 역사의 순간에 반드시 따라오는 필수 불가결한 옵션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반대의 목소리는 당연한 반응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의 목소리는 상대방의 또 다른 견해일 뿐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자신의 존재를 동일시한다. 때문에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부정하거나 채택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듯한 모멸감을 느끼고 좌절하며 분노하게 된다. 이 또한 어리석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의미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인간이 행복하고 좋은 세상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고와 성향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무조건 틀렸다고 결론짓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누군가 한 가지 사상만을 알고 있다면 사실 그는 그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운 갈등 없는 상황을 바람직하다 여긴다. 그러한 이유로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피하거나 억압하려 든다. 그러나 갈등 속에 숨어있는 진실은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어둠을 없애려는 사람들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같은 목적을 향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아 조율해 나가는 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사랑에서 오는 행복이란 같은 목적을 잊은 채,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갈등은 오히려 관계에 독이 된다. 연인, 부부, 친구,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마찬 가지다. 더 나아가 종교와 국가 싸움은 이러한 진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위선자들은 입으로는 사랑과 자비를 논하지만 자신들의 의견(교리)과 다를 땐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가며 배척하거나 죽인다. 때문에 차가운 종교인들은 형식(율법)에 얽매이게 되고, 따뜻한 신앙인들은 사랑으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의 회의 방식 역시 갈등구조이다.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존재해야 하며 그 속에서의 갈등은 방해가 아닌 필수적 요소라 여긴다. 나와 다른 의견과 삶의 방식은 비난하고 배척해야 할 암적인 존재가 아니다.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하는 풍요의 핵심으로 인식해야 한다. 진정 해로운 존재는 나와 다른 의견을 내는 부류가 아니다. 독자적 사고와 분별력 없이 편견에 휩싸인 채 진리를 죽이기 위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가리켜 성서는 바리사이, 율법학자, 수석 사제, 군중 등으로 표현하고 사회 용어는 고개만 끄덕이는 ‘버블헤드 인형 효과’라 부른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배척해야 하는 머리 아픈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좁은 시야를 넓게 만들어주는 천사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
얘야. 살면서 진실을 말하는 일이 쉽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누군가는 믿고, 누군가는 믿지 못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관심이 없다. 네가 만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하면 진실은 처음과 다르게 왜곡된다. 그리고 처음의 진실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거짓만 남는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라.
너희 모두는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별이고,
자기 자신으로 반짝일 권리가 있다.
반대의 목소리에도 기죽지 말고
똑바로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세상 위를 걸어가라.
남들에게 미움받고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은 서로에게 해롭다. 거짓으로 꾸며진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미움받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다. 때가 되면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같아지려 애쓰기보다 죽는 날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빛을 내야 한다. 그럴 때 세상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써 천국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여라. “ (탈출기 3,14)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코 복음서 16,9-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단 말이냐? (루카 복음서 22,52)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로마서 12,12-14)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6-8)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베드로 1서 4,10)
*당신 명령을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날래게 달려간다. (시편 14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