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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던 대로 살면, 늘 얻던 대로 얻을 뿐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는 노예가 되고, 발 밑에 두는 자는 임금이 된다

by 이은영


2000년 전 누군가는 직접 목격했고, 누군가는 지혜의 영감을 받아 함께 기록한 글. 인간의 심리와 의식, 우주의 법칙 등 삶의 지혜가 총망라된 책이었다. 모든 게 비유로 쓰인 덕분에 실제 믿고 경험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지식인도 풀이할 수 없는 비밀문서. 보물지도를 발견한 듯 낮이고 밤이고 성서를 읽으며 마음과 정신 그리고 삶의 태도를 돌보았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은영아. 정신 차려. 네가 아직 인생 경험이 없어서 그래. 성경책에 쓰여 있는 글은 이상적인 말일뿐, 인간은 그대로 살 수 없어. 그렇게 살아서는 잘 먹고 잘 살 수가 없다고. 인생은 한번 실패하면 끝장이야! 사람들은 실패한 너를 비웃으며 조롱하기 시작할 거야. 종교는 그저 지친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한 정도로만 생각해야 해. 무모하게 덤비지 마. 너도 좀 더 세상을 겪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신은 인간 안에 심어진 사랑의 힘, 진리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인간의 귓가에 속삭이도록 허락했다. 악마는 현실의 벽 앞에 울고 있는 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변화시키려 하지 마! 지금처럼 하던 대로 계속 살아. 끊임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걱정, 근심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교하고, 질투하고, 서로 속여가면서 지금 이대로 삶의 태도를 유지해.
남들이 업신여기지 않게 겉으로 선한 척, 행복하게 잘 사는 척 웃고 살아. 그게 인생이야. 절대 사람들 앞에서 속마음이나 상처 따위 내보이지 말란 말이야. 너의 과거와 상처는 약점이 되고 너의 기쁨은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될 거야.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어서는 절대 안돼. 그날로 넌 끝장이야!

지금부터 잘 들어! 내가 한 말대로 살다 보면 반드시 공허하고 불행한 감정이 들 거야. 그럴 때마다 너는 더 많이 모으고 얻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노력해야 해. 행복은 오직 그 안에만 있으니깐. 네 마음을 돌 볼 생각 따윈 절대 하지 마. 그러기에 넌 너무 바쁘잖아? 네가 불행한 이유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들만큼 살지 못해서라고. 그러니까 고개를 돌려 끊임없이 위아래로 비교하란 말이야.

봐!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 너는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불행한 거야. 저들처럼 살기 위해 더 노력해. 원하는 걸 이루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 현재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너는 그 모습으로 안주하게 될 거야. 그런 인간의 삶에는 결코 발전이란 없지. 행복은 미래에 있는 거라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해. 오늘의 기쁨과 행복은 잠시 접어둬.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단 법이니까. 원래 세상은 허무한 거야. 힘들 땐 그냥 참고 견뎌. 종교가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 뭐가 됐든 찾아가서 마음의 위안이나 삼아. 혹시 알아? 죽어서 천국 갈지!


얘야. 늘 하던 대로 살면
늘 얻던 것을 얻을 뿐이란다.
모든 피조물은 자신의 믿음대로 된다.
그것이 세상 속에 숨겨둔 지혜의 비밀이다.

신을 믿는다는 뜻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진리의 가르침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믿기에
기쁘게 실천한다는 고백이란다.
천국의 기쁨은 순수한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얻는 천상의 선물이다.

신은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으며 인간의 계획과는 다르다. 더 큰 선을 위해 악을 허락할 수 있는 존재이며, 필요에 따라 살아있는 인간을 지옥으로 보냈다가 천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권능이 있다. 때문에 불신하는 인간에게는 악마의 유혹에 따라 살도록 그의 마음과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러자 인간은 불행의 늪 속을 향해 걸어가면서 스스로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행복과 불행이란 무엇인가? 삶이 왜 이렇게 공허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왜 태어났는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인간에게 진정한 평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고 선택하게 하기 위한 신의 계획이었다.


1마일 4분의 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운동 경기인 달리기의 한계점을 뜻한다. 수 천년 동안 인간이 1마일을 4분 만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여겼다. 당시 1마일을 4분 안에 달리게 되면 인간의 폐와 심장이 파열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있어 1마일 4분이란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장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45년 한 외과 의사가 연구 논문을 통해 인간의 신체 구조는 1마일을 4분 안에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 후 9년이 흘렀고 영국의 아마추어 육상선수인 로저 배니스터에 의해 3분 59초 4로 1마일 4분의 장벽은 무너졌다.

사실 그는 신경학자였고 인간이 견디어 낼 수 있는 최대치 고통과 최고의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자신의 연구를 실험하였고 성공한 것이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로저 베니스터가 1마일 4분의 장벽을 깨자 6주 후 존 랜디라는 사람이 또다시 기록을 깨고 1년도 되지 않아 37명, 2년도 안되어 300명이 줄지어 기록을 깼다. 로저 베니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1마일 4분의 장벽을 깨지 못했던 것은 나의 심폐기능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1마일을 4분 내 달릴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성서에는 군중 또는 군대로 표현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두는 편견의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다 해봤어.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 머리 아파 관두자.'

미국의 국민 자동차라 불리는 포드 창설자 헨리 포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두 사람 다 옳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외면하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더 큰 괴로움에 휩싸이게 한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도 신의 섭리를 믿어야 한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끊임없이 편견을 의심하고 의식을 확장시켜 나아가라. 성서는 그들을 가리켜 신의 제자라 표현하고 세상은 혁신적 리더, 성공자라 부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주저앉아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누군가는 또다시 일어나 편견을 뚫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작은 믿음의 차이가 인간과 세상의 운명을 가른다.

인간의 삶. 모두가 현실의 벽이라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인간의 불신에서 오는
두려움일 뿐이다.

의식은 현실을 창조한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 세상의 노예가 되고,
세상을 발 밑에 두는 자 세상의 임금이 된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미 이긴 싸움일 뿐이다. 진리를 믿고 나아가는 이는 현실을 즐기게 될 것이며, 시련의 고통마저 즐기는 자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신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3:15)

*만일 그자가 나와 싸워서 나를 쳐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이겨서 그자를 쳐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 “ 그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소리쳤다. ”내가 오늘 너희 이스라엘 전열을 모욕하였으니, 나와 맞붙어 싸울 자를 하나 내보내라. “ 사울과 온 이스라엘군은 이 필리스티아 사람의 말을 듣고, 너무나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다. (1사무 17,9-11)

*임금님께서는 저자를 쳐 죽이는 사람에게 많은 재산뿐만 아니라 공주님도 주시고, 이스라엘 안에서 그의 집안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실 거야. “ (1 사무 17,25)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사울을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1사무 17,32-33)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 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1사무 17,37)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1사무 17,43)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 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1사무 17,45-48)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1사무 17,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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