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기쁨은 사랑하는 이와 하는 달콤한 입맞춤과 같다
어릴 때부터 자선과 봉사는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과 돈의 여유도 없고, 훌륭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나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형편이 좋아지면 해야지.'라며 나중으로 미루는 숙제처럼 여겨졌다. 좋은 일인지는 알겠지만 나 혼자서도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그러한 얘기들은 마음의 짐만 될 뿐이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가난하고 절망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짐처럼 느껴지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옛 말에 ‘과부 심정 과부가 안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직접 굶주림의 고통과, 멸시의 아픔을 삶으로 겪다 보니 비로소 가난한 이들의 괴로움을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감은 고개만 끄덕이는 단순 반응이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손과 발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을 가장 잘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랑에 아파 본 사람이다. 이와 같이 가난으로 아파본 사람은 가난으로 아픈 사람을 보면 자신의 아픔이 떠올라 도와주고 싶게 된다. 이때 하는 자선활동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팠던 기억을 보듬어 주는 본인의 일이 되어 버린다.
얘야. 자발적 기쁨에서 하는 자선과 봉사활동은 종교의 교리처럼 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을 사기 위한 신과 인간의 거래가 아니란다. 세상 속에서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점수와 교환하는 행위 또한 될 수 없단다. 자선과 봉사란 지금 이 순간 사랑 안에서 스스로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가치 있는 투자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세상 그 무엇이든 억지로 하는 행위에서는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아무리 선한 행위라 할지라도 자신이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고역일 뿐이다.
악마는 인간의 선한 마음에 함정을 파서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선한 행위를 의무감에 하게 만들거나, 선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어, 인간 스스로 자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평가하고 의식하는 그대로 변화된다. 이러한 이유로 선행을 하지 않지 않는 인간이 죄인이 아니라, 자신을 단죄하는 이가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믿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사랑의 신을 닮은 존재라는 진리를 말이다.
너희 안에 있는 순수한 사랑을 믿어라.
어둠 속에서 슬퍼하기보다
빛을 바라보며 희망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어두운
마음 안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랑을 발견하라.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선과 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순수한 사랑의 신성神性을 믿는 일이다.
전 세계 통계적으로 보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2010년 UC버클리와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 교수들은 ‘적게 가질수록 더 많이 기부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기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의 상황보다 자신의 경제 상황만을 돌봐야 한다는 게 상식이지만 인간의 심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의 사랑은 공부를 통해서가 아닌 삶의 체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안의 순수한 사랑은 타인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때문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은 다시금 자신의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사랑 안에서 완성하기 위해 상대를 돕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심리 상태에서 상대를 돕는 행위는 마치 자신의 아픔을 보살피는 행위와 같아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선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 때 만족감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 자신의 선행을 오해하고 비하해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되는 넓은 아량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무감에서 좋은 일을 하면서도 힘들고 지친다면 이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자발적 기쁨 없이 하는 희생과 봉사는 결국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어, 반드시 어딘가를 향해 원망의 화살을 쏘게 되어 있다. 선행 속에서 스스로 기쁨을 찾지 못하면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게 되고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게 된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발적 기쁨 없이 육아와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언젠가 가족이 짐처럼 느껴져 원망하게 되고 삶이 공허해진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희생당하는 느낌에 화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깨닫고 기쁨 속에서 행하게 되면 시련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일을 통해 자신이 이미 천국의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을 알아주길 바라며 자랑하게 되는 이유가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선행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으로 감정의 빈 공간을 채워 넣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드는 상태에서는 누군가의 오해를 받게 되면 의욕을 잃고 슬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좋은 일을 하고도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는 존재를 만나면 더욱 기쁘고 행복한 감정에 열심히 하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행복의 무게중심은 타인의 인정과 칭찬보다 자신 안에 있은 순수한 사랑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수많은 오해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기보다 자신의 행복을 돌보는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행복을 위해 한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그 아이를 통해 이러한 진리를 깨닫자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지혜의 비밀을 알려주고 나누고 싶어 졌다.
2011년. 사람들도 이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며 1:1 아동 후원을 함께 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각양각색의 반응이 돌아왔다. 국내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왜 외국 아이를 후원하느냐부터 액수를 물으며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누군가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며 겸손하지 못해 선행을 자랑한다며 농담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내 진심과 다르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상황 속에서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행복하니깐’이란 심플한 공식이었다. 오히려 오해는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더 큰 사랑의 마음이 주어지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얘야. 선행의 기쁨은 사랑하는 이와 하는
달콤한 입맞춤과 같단다.
스스로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어야만 한다.
네 예쁜 마음속에 심어둔
순수한 사랑에 귀 기울여라.
그 사랑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라.
사랑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단다.
사랑스러운 얘야. 선행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졌느냐. 그렇다면 가장 먼저 지치고 힘든 너 자신을 끊임없이 살피며 돌보아 주어라. 그리하면 훗날 기쁨 마음으로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네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아름다운 네 본성을 악마에게 빼앗기지도 잃어버리지도 않게 될 것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로마서 4,3)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로마서 4,5-6)
*선행을 할 때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지를 알고 하여라. 그래야 상대방이 네 자선에 감사할 것이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어라, 보상을 받으리라. 그 사람이 보상을 하지 않더라도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갚아주신다. (집회서 12,1-2)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복음서 10,40-4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마태오 복음서 6,23)
*네가 가진 것에서 자선을 베풀어라. 그리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아까워하지 마라. 누구든 가난한 이에게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너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가진 만큼, 많으면 많은 대로 자선을 베풀어라. 네가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자선을 베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곤궁에 빠지게 되는 날을 위하여 좋은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이다. 자선은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 주고 암흑에 빠져 들지 않게 해 준다. 사실 자선을 베푸는 모든 이에게는 그 자선이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바치는 훌륭한 예물이 된다. (토빗기 4,7-11)
*아내가 나에게 "이것은 품삯 외에 선물로 받은 것이에요."하고 말하였지만, 나는 아내를 믿지 못하여 그 새끼 염소를 주인들에게 돌려주라고 다시 말하면서, 그 일로 아내에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였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토빗기 2,14)
*"얘야, 너에게 복이 내리기를 빈다. 네 아버지는 훌륭하고 선하신 분이다. 그렇게 의롭고 자선을 많이 하는 이가 눈이 멀다니, 정말 끔찍한 불행이로구나!"그러고 나서 자기 친족 토비야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토빗기 7,7)
*자선의 손길을 펼치는 사람은 기쁨을 맛보겠지만 범법자들은 완전한 멸망에 이르리라. (집회서 40,14)
*주님은 인간의 자선 행위를 옥새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인간의 선행을 당신의 눈동자처럼 아끼신다. (집회서 17,2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요한1서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