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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과 나태함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다

게으르고 나태해질 때면 책망하기보다 휴식 속에서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by 이은영


마치 내 몸은 물을 한가득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하루 종일 잤는데도 잠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만사가 귀찮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게으르고 나태해진 시간만큼 죄의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만 갔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 거지? 왜 항상 계획과 무너짐을 반복하는 거지? 정말 이래서 뭘 해 먹고 세상을 살 수 있을까? 남들은 다 부지런히 일하고 자기계발에 힘쓰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남들이 이런 내 모습을 알면 한심하다 하겠지? 아...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몸은 일어날 줄 몰랐다.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싫은 나 자신을 끌어안고 먹고살기 위해 몸뚱이는 또다시 의무감에 일어나 움직여댔다. 열심히 의류를 사입하고 코디하고 카메라 앞에서 촬영을 했다. 사진 이미지를 업로드하고 배송하고 마케팅을 했다. 매일 입출금을 확인하고 관리했으며 직접 소득세 신고를 했다. 혼자서 그 모든 일을 꾸역꾸역 해댔다. 어느새 처음과 달리 패션사업은 즐거워서 하는 일이 아닌 오직 생존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경쟁업체가 잘 나가는 것 같을 땐 질투를 넘어 불안하고 초조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쉴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난 왜 이것밖에 하지 못하냐며 소리를 지르며 자기학대를 해댔다.

내가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인정해 주지 못한 결과,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 없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 처참한 현실이 날 가장 괴롭혔다. 홀로 외로운 싸움에서 지쳐 울고 있을 때 따뜻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네가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불평하는 오늘은 사실 신이 네게 허락한 오늘이란다. 이따금씩 네 삶에 게으름과 나태함이란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신이 보낸 천사임을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맞아들이며 쉬어라. 악마가 인간을 가장 쉽게 유혹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질주하는 하루만이 보람되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악마의 유혹에 빠진 인간은 중요한 것을
해내느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단다.
소중한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를 돌보지 않으면
결국 과부하를 일으키며 지쳐버린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중요한 것도 해내기 어려워지는 법이란다.


기계도 쉬지 않고 풀가동하면 망가지는 법인데 하물며 생명과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쉬어줘야 마땅할 것이다. 게으름, 나태함이란 열심히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인간을 비추는 빛에 드리워진 그림자일 뿐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스스로 바라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현실의 자신과의 괴리에서 오는 불만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다. 사람들은 보통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며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열정적 노력이 성장의 원동력을 넘어 오히려 영혼과 육체에 무리를 주게 될 때 과부하로 인해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돌보지 않고 의무감에서만 꾸역꾸역 일을 해나갈 때 게으름, 나태함이란 신호가 온다. 그런데 이러한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돌봐주어야 할 자기 자신이 오히려 스스로를 못났다며 다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다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채찍질만 하여 영혼과 육신 모두 죽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나태함과 게으름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을 온통 지배해 버린 탓에 더 이상 자각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게으름과 나태함이란 신호가 올 때면 책망하기보다 '나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인정해 주면 된다.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지친 마음과 몸을 돌보고 사랑해 주면 된다.


그동안 애쓰고 수고했다고 오늘 하루도 잘 이겨냈다고 칭찬하고 기분 좋은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사도 좋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봐도 좋다. 산을 오르거나, 운동을 하거나, 홀로 조용히 명상하고 기도를 해도 좋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거나, 오락을 하거나, TV 앞에 누워 먹고 마셔도 좋다. 무엇이든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다시 기분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여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하면 된다. 이 세상 대부분의 것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여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지친 영혼과 육체를 달랠 수 있는 방법 또한 상황마다 다르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삶 속에서 발견해 내어 기쁨을 누려야 한다.


얘야. 자기 자신을 사랑의 진리 안에서 진정 사랑하게 되면 삶이 망가질 만큼 게으르게 살지는 못한단다. 자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알기 때문에 삶에 지장을 초래할 만큼 게으른 행동은 스스로 자제하게 되지. 정신없이 바쁜 생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고 부서질 만큼 몰아붙이고 다그치며 살지는 않게 된단다.


정신 의학에서는 계속해서 잠이 쏟아진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현실이 너무 힘들어 도피하고 싶을 때면 현실을 잊을 만큼 깊은 잠을 청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아동심리학에서는 자녀들이 게으를 땐 책망하기보다 믿고 기다려 주라고 한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루함 속에서 내면의 움직임이 일어나 창의력이 발달되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새롭고 즐거운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들에게 나태함과 게으름이 찾아올 때면 자신에게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어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신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여 현재(present) 오늘이란 선물(present)을 주었다. 어제의 태양은 어제로 졌고 오늘의 태양은 오늘 새롭게 뜬다. 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오늘 하룻 동안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기쁘게 잠드는 이는 성공한 삶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오늘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채 내일을 기약하며 잠든 이들은 실패한 삶일까? 성경에는 이런 의문을 두고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 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3,13)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수 있는 이도 축복받은 성공한 삶이다. 아쉬운 어제를 살았기에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면서 인간은 다시금 믿고 희망한다. 게으름과 나태함이 가져다준 창조의 시간이 허락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야 말로 차별 없는 신의 은총과 자비의 선물이다.


얘야.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 이도,
게으르고 나태하게 보낸 이도
무한한 자비와 사랑 앞에서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단다.
그러니 부디, 오늘 밤 그 누구도 죄책감에
시달린 채 걱정, 근심 속에서 잠들지 않기를
사랑의 신은 바라고 또 바란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고
아침에 웃으며 눈뜰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신이 허락하는 한 내일의 태양은
반드시 생명체의 머리 위로
찬란히 빛을 내며 새롭고 당당하게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하느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날을 정하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대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윗을 통하여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하고 말씀하실 때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을 안식처로 이끌었다면, 하느님께서 나중에 다른 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아직도 참 안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던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그분의 안식처에 들어가는 이도 자기가 하던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니다. (히브리서 4,7-11)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그러나 너희 조상들은 내게 순종하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목을 뻣뻣이 한 채 내 훈계를 듣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예레미야서 17,22-23)

*너희가 인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안식일에 짐을 진 채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그 성문에 불을 놓겠다. 그 불은 예루살렘 궁궐들을 집어삼키고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서 17,21-27)

*그러고 나서 자기의 연합 군대를 모두 거느리고 귀국하였다. 그것은 굉장히 많은 전사들의 무리였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자기 군대와 함께 백 스무날 동안 쉬며 잔치를 벌였다. (유딧기 1,16)

*마침내 우리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흘 동안 쉬었다. (에즈라기 8,32)

*종과 그의 일행은 먹고 마신 뒤 그곳에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아침, 모두 일어났을 때에 그 종이, “제 주인에게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자, (창세기 24,54)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2,1-4)

*그리하여 백성은 이렛날에는 쉬었다. (탈출기 16,30)

*나를 찾는 내 백성에게 사론은 양들의 목장이 되고 ‘아코르 골짜기’는 소들의 쉼터가 되리라. (이사야 65,10)

*나태는 손실과 큰 곤궁을 가져온다. 나태는 굶주림의 어머니다. (토빗기 4,13)

*게으르면 깊은 잠에만 빠지고 나태하면 배를 곯는다. (잠언 19,15)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오 복음서 6,34)

*내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분과 함께 쉴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아멘. (로마서 15,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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