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진실이란 가야 하는 목적지를 향한 또 다른 형태의 발걸음일 뿐이다
2012년 7월. 나는 길을 잃은 어른 아이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함께 패션 사업을 하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남아 사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헤어진 후에도 그는 무려 2년간 곁에 남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지만 완전한 혼자가 되어 보니 육체적, 정신적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헤어진 친구와는 2007년부터 동업을 하면서 그 안에서도 서로 일을 분담하여 처리 해왔다. 디자인 쪽 (사입, 코디, 사진 이미지 업로드 등)은 내가 전담하였고, 경영 쪽 (돈, 마케팅, 촬영, 배송 등)은 그가 전담하였다. 서로의 분야에는 간섭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며 지지해 주었다. 그것이 5년 넘게 동업을 하면서도 큰 마찰 없이 함께 즐기며 일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동업을 하면서 의견 다툼과 금전적인 문제로 헤어졌을 거라며 세상의 편견으로 추측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뢰로 인해 서로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대부분 공감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온전히 혼자가 되어 그의 분야까지 안고 가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영원할 것 같던 패션사업의 열정은 어느새 고단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만큼 그 일이 즐겁지 않았고 놀이터는 슬그머니 전쟁터로 변해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둡고 긴 미로 같은 시간들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미로에 갇힌 실험 쥐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제 자리에서 종종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다가 문학동네 출판사 이벤트를 발견하게 된다. 기분전환이나 할 겸 신청한 이벤트에 마치 그들은 날 기다렸다는 듯이 당첨 메일을 보내왔다. 그렇게 2012년 7월 30일 저녁 7시 30분. 홀로 이화여대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에 우뚝 선 한국인 9명의 비밀 <꿈을 이뤄드립니다>의 저자 이채영 변호사와 이병률 시인의 대담 강연회였다. 더불어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영화배우인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상영 이벤트였다. 모두가 친구와 또는 연인과 손을 잡고 참석한 저녁 이벤트에 홀로 팔짱을 낀 채 화면을 응시했다. 내 머리 위로 짙은 어둠 속을 뚫고 한 줄기 빛이 화면에 쏘아지면서 영화는 시작됐다.
주인공 남자의 직업은 소설가다. 다양한 영감을 얻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간 파리 여행. 그러나 파리의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그와 달리 함께 간 여자친구는 파리의 화려함만을 쫓는다. 결국 그는 그런 여자친구와의 마찰로 인해 밤마다 홀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그러다 낯선 거리에서 집으로 가야 하는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그 순간 열두 시 종이 울림과 동시에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에 몸을 싣게 된다. 그를 태운 클래식 푸조가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1920년대 과거 파리였다. 소설가인 그가 평소 그토록 동경하던 죽은 헤밍웨이가 살아나 자신과 동지애를 느끼고, 그가 소개하여 주는 피카소, 달리처럼 예술의 거장들과도 친구가 된다. 서로 함께 놀고 마시며 꿈같은 순간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미친 듯이 영감을 얻는다. 그는 매일 밤 또다시 클래식 푸조를 타기 위해 우연인 척 길을 잃고 방황한다.
고백하건대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를 검색하면 나오는 보통의 줄거리와는 포인트가 다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영화 자체를 이해하고 싶다면 나의 글이 아닌 영화를 직접 보길 권장하는 바이다. 세상 사람들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포인트를 잡고 본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영화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사랑하자!'라고 노래할 때, 나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왜 방황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던 중이었다. 덧붙여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당시 홀로 간 이벤트 자리에서 한 남자가 뒷 따라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그는 홀로 앉아 골똘히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하고 작가들의 대담을 경청하는 나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물론 촉이 상당히 좋다고 자부하는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지하지 못했었던 상황이다. 그렇게 그와 몇 번의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은 방황의 보너스였다. 여전히 방황하는 지금 이 순간의 우리들은 미래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디테일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악마에게 희망의 설렘을 빼앗기는 저주가 될 테니 말이다.
얼마 전 내비게이션에 북악 스카이웨이를 목적지로 찍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긴 차량 행렬에 나도 모르게 끼어 있었다. ‘이건 무슨 줄인가?’ 싶어 옆길로 새서 빠져나가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줄은 바로 우리가 목적지로 찍은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서울 야경을 볼 수 있는 팔각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그 행렬을 이탈했고 운명처럼 방황하는 길을 따라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카페&레스토랑을 향해 운전대를 틀었을 때 환호성을 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친절한 서비스와 음식, 더불어 멋진 야경까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다 마친 후 다시 처음의 목적지였던 북악 스카이웨이 야경을 볼 수 있는 팔각정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길을 잃고 방황하다 운명처럼 들어간 낯선 레스토랑에서 본 서울 야경이 내 영감을 더욱 강렬히 흔들어 놓았음을 고백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래전에도 한번 가본 적이 있는 레스토랑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느낌이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렇다. 누구나 가끔씩 삶의 목적을 잃고 갈 길을 헤매며 방황할 때가 있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것도 모자라 도대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원초적 질문으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인간은 한 없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홀로 몸부림치게 된다.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에 지독히도 외로워진다. 하지만 감히 당신과 비슷한 감정의 터널. 앞으로 수많은 미로 중 하나의 미로를 함께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다정하게 다가가 말하고 싶다. 그때 그 순간 내 안에서 누군가 들려준 그대로 어둠 속 미로의 벽에 기록해 본다. 방황하는 청춘들이 우연히 이 글귀를 발견하고 그때의 나와 같이 힘과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얘야. 방황의 진실이란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를 향한
또 다른 형태의 발걸음일 뿐이다.
그러니 오늘도 네가 가야 하는
길 위에서 방황하는 청춘이여.
넌 잘하고 있는 것이니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네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풍경을 맞이하게 된단다. 그동안 정해진 길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근사한 풍경을 방황의 길 위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할 수 있단다. 지금의 방황은 네 삶의 근원으로 들어가 원초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는 시간들이다. 부디 신과 함께 세상 위를 걷는 시간들을 겁내며 피하지 말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정면을 응시하거라. 세상이란 거울 속에 비친 네 안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거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주눅들지 말고 일어나 너만의 길을 신나게 걸어가라!
우리들의 인생 선배인 젊은 오빠 프란체스코 교황님도 말씀하셨다.
젊은이여 일어나라.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
- GOOD BOOK과 이야기의 연결고리 -
*아이들은 생기를 잃고 여자들과 젊은이들은 목이 말라 기력을 잃어, 성읍의 길거리와 성문 통로에 쓰러졌다. 이제 그들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유딧기 7,22)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루카 복음서 7,14)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마르코 복음서 41-42)
*젊은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들어라. (시편 34,11)
*이 잠언은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예지의 말씀을 이해하며 현철한 교훈과 정의와 공정과 정직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어수룩한 이들에게 영리함을, 젊은이들에게 지식과 현명함을 베풀려는 것이니 지혜로운 이는 이것을 들어 견문을 더하고 슬기로운 이는 지도력을 얻으라. 그러면 잠언과 비유, 현인들의 말씀과 수수께끼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 (잠언 1,2-7)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길을 깨끗이 보존하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제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 계명을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죄짓지 않으려고 마음속에 당신 말씀을 간직합니다. (시편 119,9-11)
*노인들은 거리에 나와 앉아 모두 함께 좋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젊은이들은 화려한 군복을 입었다. (마카베오상 14,9)
*정녕 빛은 달콤한 것, 태양을 봄은 눈에 즐겁다. 그렇다, 사람이 많은 햇수를 살게 되어도 그 모든 세월 동안 즐겨야 한다. 그러나 어둠의 날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오는 모든 것은 허무일 뿐. 젊은이야, 제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 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코헬렛 11,7-10)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코헬렛 12,1-2)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 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 (코헬렛 12,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