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내가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
얼마 전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가 원작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막을 내렸다. 여전히 회자가 되는 배우들의 명대사 중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책 <결혼과 도덕>과 어울리는 대사로 서문을 연다.
이태오 :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나가 아니잖아. 결혼했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차단되는 게 아니라고.
손제혁 : 세상엔 두 종류의 남자가 있어. 바람피우는 남자와 그것을 들키는 남자.
부부의 세계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연이 배신으로 끊어지면서 소용돌이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불륜(不倫, affair)은 대한민국 민법에서는 부정행위라고 하며, 중요타인이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파트너의 의사에 반하여 파트너 이외의 자와 간통 등의 성적 행위나 친밀관계를 맺는 일을 말한다. 따라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이에 반해, 폴리아모리(polyamory)는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를 뜻하여 언뜻 보기에는 불륜과 비슷해 보이지만 파트너 동의를 받고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자유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라고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너무 중요한 차이점이라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 폴리아모리와 불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파트너의 동의'이다. 불륜은 파트너를 속이고 기만하는 배신 행위지만 폴리아모리는 처음부터 파트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파트너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 일부일처제인 문화 속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파트너들에게만큼은 비난받지 않는다.
# 파트너의 불륜에 분노가 치미는 근본적인 이유는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에서 1872년에 태어났으며, 당시 논리학자, 철학자, 수학자, 사회사상가로 활동했다. 그런 그의 저서 <결혼과 도덕>을 읽다 보면 시대를 앞서서 생각하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여성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에 태어나 교육받은 남자로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문장들 역시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니 문제 삼지 않겠지만, 2020년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독자를 안내할 의무와 책임을 통감하기에 이 글을 쓴다.
러셀의 <결혼과 도덕>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서구 문명에서는 기독교가 확립되기 이전부터 성윤리의 주요한 목적은 여성의 정절을 보증하는 데 있었다. 이것이 보증되지 않으면 부계 혈통을 확인할 수 없고 가부장제 가족이 존립할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독교가 남성의 정절을 강조하면서 덧붙인 성윤리는 금욕주의에 심리적인 원천을 둔 것으로, 최근 여성해방과 더불어 점점 거세지고 있는 여성들의 질투심 때문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윤리는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의 추세로 보자면, 여성들은 여태껏 여성만이 감당해야 했던 구속을 남성들에게도 부과하는 제도보다는 양성 모두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제도를 선호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P.9)
그의 주장처럼 오늘날에도 남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이유는 점점 거세지고 있는 여성들의 질투심 때문이 아니다. 이는 여성을 단순히 질투가 심한 동물로 치부하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에 기초한 혐오적 발언이며, 인간의 심리와 인권을 -시대적 이유로- 주의 깊게 통찰하지 못한 오류이다. 그렇다면 남녀를 떠나서 상대방의 불륜에 분노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이제부터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시 상영하며 조명을 받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단골 소재인 불륜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 애쓰다가 결국 아내의 고백 앞에서 울부짖는 이선균(박동훈 역)은 이렇게 말한다.
박동훈 : 너 왜 그랬어. 너 왜 그랬니. 왜 그랬냐고! 왜! 왜! 왜! 너 지석이 엄마잖아. 애 엄마잖아. 너 그 새끼랑 바람피운 순간 너 나한테 사망선고 내린 거야. 박동훈... 넌 이런 대접받아도 싼 인간이라고.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그냥 죽어버리라고....
나는 지금까지 600편이 넘는 글을 브런치에 발행했는데, 그중에서 15,000번 이상 독자에게 읽힌 글이 있다. 이는 글 랭킹 2위인 시기 질투에 관한 글보다 2배 이상 넘는 조회수다. 바로 그 주인공은 '상대방의 불륜은 너의 매력이나 언행과는 상관이 없단다'라는 제목이며,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고통받는 남성들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에 공유되면서 회자가 됐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매력적이지 못하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 시들어 죽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륜이라는 잘못된 방식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재확인하며,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파트너의 배신은 불륜 상대와 자기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러한 인간 심리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을 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귀다가 누가 차고 차였는지를 중요시하고, 배우자의 불륜에 이성을 잃고 잔인한 복수를 하는 원인 역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파트너의 불륜으로 인한 분노와 고통의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는 느낌과 더불어 현실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잉태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생각은 진실이 아니며, 소중한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을 우리는 아래 세 가지 근거를 읽고 깨달아야 한다.
하나. 자신의 근본적인 존재 가치와 평가는 결코 갈대와 같이 변하는 타인의 감정적 선택과 사랑에서 오지 않는다.
둘. 내가 좋아하고 선택한 사람도 나를 좋아하거나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며 교만이다. 하여, 그 망상에 집착할 경우 범죄로 이어진다.
셋.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부족하고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기에, 타인에게서 한결같은 사랑을 구하려는 것만큼 부서지기 쉬운 믿음도 없다. 영원한 사랑은 오직 자기 안에 있으며, 올바른 자기 사랑을 통해 타인에게도 그 사랑을 나눠 줄 수 있게 된다.
파트너에게 솔직한 자신을 공유하는 폴리아모리와는 달리 불륜은 명백히 파트너를 기만하는 아전인수적인 배신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만약 한쪽 배우자가 그동안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신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상대방의 불륜으로 인한 배신감과 상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파트너가 이러한 고통을 겪을 것을 알고도 욕정에 기울인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결국, 참사랑이 최고의 진리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에서 남성에게도 정절을 요구하는 일은 러셀의 주장처럼 금욕주의가 원인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핵심이다. 정리하자면, 남과 여 사이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하며, 인간관계에서 신의를 지키는 일은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러셀의 또 다른 주장처럼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양성 모두에게 자유를 주는 제도를 선호하게 될 거라는 것은, 불륜이 아닌 폴리아모리가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 이중적인 잣대란 곧 성적인 정절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p.81)
우선 이 책을 읽으며 당시 러셀이 알고 있는 기독교 가르침과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도 썼다) 오늘날의 내가 성서를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점이 흥미로웠고, 불륜을 질투심과 가장 크게 연결하여 해석하는 시선이 살짝 아쉬웠으며, 불륜 사실을 알고도 서로 묵인해 주는 것이 좋다는 표현은 당시 이혼이 죄악시되던 시대에도 3번의 이혼과 4번의 결혼을 하게 된 그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러셀은 성매매를 용인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을 펴냄과 동시에 사랑이 없는 성매매는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관계에서 도덕 관념에 얽매여 있을 때 그렇다는 뜻이 된다.
성관계에서 도덕성의 본질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상대방의 욕구를 헤아리지 않고 상대방을 개인적인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는 마음에 있다. 성매매는 바로 이런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아무리 성매매 여성이 존중받고 성병의 위험이 사라진 경우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p.138)
러셀 스스로는 매춘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위선인지는 자신의 아내가 매춘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 인권이 높아졌다는 오늘날에도 성매매 여성은 하찮은 존재로 여기면서도 돈을 주고 성 매수한 남성 스스로는 매춘부와는 다른 위치에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강한 성욕을 가진 남자가 (성욕의 크기는 남과 여의 차이라기보다 개인차다. 여자 역시 남성과 다르지 않게 강한 성욕을 갖고 있다) 어쩌다 한두 번 성매매하거나 바람피우는 정도는 호기심에 할 수 있지만, 여자는 특성상 불륜이나 매춘을 했다면 단순 호기심이 아니기에 용인될 수 없다는 이중잣대를 들이민다.
여자와 성관계를 많이 가진 남자는 능력자로 포장하면서, 남자와 성관계를 많이 가진 여자는 헤프고 걸레라는 표현으로 매도한다.
간혹 유흥업소 여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교양인 인척 말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그들의 속내는 그녀들을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존중해서라기보다 유흥업소를 드나드는 자신의 행위에 죄책감을 덜기 위함과 동시에 옹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끼리는 성매매나 유흥업소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기도 하는데, 만약 친구가 업소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한다고 발표한다면 그들은 제정신이냐고 물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여자 친구나 아내가 성매매나 유흥업소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 이별할지도 모른다.
만약, 남자가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위와 같은 행동은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면서도, 여자가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위와 같은 행동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일부 어리석은 남자들의 이중잣대는 뿌리 뽑히지 않는 실정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만약에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을 사랑하는 상대방이 똑같이 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적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내로남불은 줄어들 것이다.
진짜 파트너와의 성적인 만족도를 얻기 원한다면 이중잣대는 내려놓고 세상의 도덕 관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서로의 기벽과 부끄러운 모습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속이고 기만하는 일을 해서는 더욱더 안 된다.
# 행복한 결혼의 정수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깊이 있는 친밀감과 신뢰를 유지하는 데 있다.
책의 마무리로 달려가는 지점에서 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했는데,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기 사상과 동일함을 반기기 때문이다.
결국, 러셀과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사고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혹시 종교의 교리나 자신이 속한 국가의 문화적 억압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부부의 사랑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을 따르기 위해 서로의 감시자가 되고, 도덕 윤리의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발적 실천과 억압에 의한 의무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강요에 의한 도덕은 억압이 되고, 상대방을 향한 분노로 이어져 사랑의 위대함을 상실하게 만들며, 신뢰 속에서 둘만이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기쁨이 소멸한다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므로 불륜은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멍청한 소리는 그만 하고, 파트너끼리 솔직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부부 생활에 유익하다. 끝으로 최근 유행하는 '부부의 세계 테스트' 중에서 나의 캐릭터는 김희애 씨가 맡은 지선우 역으로 나왔는데, 그녀의 결혼관을 공유하며 긴 리뷰를 마친다.
행복한 결혼의 정수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P.281)
지선우 : 본능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야. 여자라고 바람피울 줄 몰라서 안 피는 게 아니야. 다만 부부로서 신의 지키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제하고 사는 거지.
결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판돈 떨어졌다고 가볍게 손 털고 나올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고요. 내 인생 내 자식까지 걸려있는 절박한 문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