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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방향성을 바꾼 도시락 반찬, 미역 줄거리

우리家한식 - 2020 한식문화 공모전

by 이은영

요즘은 급식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대부분의 학교에서 급식이 나오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해도 꼭두새벽부터 보호자가 싸준 도시락을 실내화 가방과 함께 들고 다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은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사는 수준도 다 고만고만했다. 그 말은 싸 오는 도시락 반찬 종류도 다 비슷하다는 뜻이 된다.

12시 땡,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반 아이들은 자기가 앉은자리에서 뒤를 돌거나, 친한 친구의 옆자리에 앉거나, 아니면 다른 반 옛 친구를 향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달려갔다. 그런 아이들이 일제히 반찬통을 열면 쉰내를 풍기며 뚜껑 가장자리를 따라 김칫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옆에는 김칫국물에 반신욕을 하는 콩자반이 있었고, 그 옆에는 김칫국물에서 수영하는 멸치볶음이 있었다. 간혹 메추리알과 함께 졸인 쇠고기 장조림이나 달걀 프라이, 달걀 옷을 입은 동그란 핑크 소시지를 싸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한여름에 부글부글 끓어오른 김칫국물처럼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들을 한방에 기죽이는 부류가 있었는데, 영롱한 핑크와 화이트 표면 위에 오일이 휘 감도는 베이컨이나, 칼집을 내어 꽃잎처럼 벌어진 사이로 토마토케첩을 품은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그리고 한입 베어 물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경양식의 끝판왕 돈가스를 싸 오는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 아이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도시락 주인 앞에서만큼은 은근히 기가 죽는 눈치였다.

당시 집에 침대나 피아노가 있는지 따위를 기재하는 가정환경조사서보다 더 빠르고 명확한 도시락 반찬은 어느새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사이에서 한 아이의 집안 경제 수준을 반영하는 척도가 됐고,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당시 초등학생이 그런 것까지 어찌 알겠냐며 내게 묻는다면, 도시락 반찬으로 반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는 동시에 기를 죽이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고 대답하겠다.


내가 어린 시절의 우리 엄마는 유독 도시락 반찬에 목숨을 걸었다. 그건 엄마의 어린 시절에 가난으로 인해 고생했던 경험 때문인데, 결혼 후 동네에서 유일하게 3층 집을 짓고 살만큼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소중한 내 아이만큼은 어디 가서도 대접받고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도시락 반찬에 투영된 사건이었다. 그런 엄마의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나는 반에서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인기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의 나의 도시락 반찬에 일대 파장을 일으킬만한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다. 누군가 먼저 다가오는 것이 편하고 익숙했던 내성적인 내가, 친하지 않은 뒤에 앉은 친구에게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아마도 교실 뒤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기 위해 뒤돌아볼 때 가끔 눈이 마주치면 쑥스러운 듯 웃는 여자아이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함께 밥을 먹으면서 처음으로 친구의 양팔이 접히는 부분에 빨간 피딱지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친구는 내가 팔짱을 끼려고 하면 움찔하는 듯했다. 그렇게 나보다 더 수줍어하는 친구와 반찬을 나눠 먹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종종 환한 웃음을 내게 보이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의 팔에 상처는 아토피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당시 나는 아토피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 고통이 어떤지도 가늠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동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신에게는 콤플렉스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대하는 나의 무식함이 오히려 그 친구를 편하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친구와 여느 때처럼 도시락을 함께 먹기 위해 반찬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친구의 도시락통 안에는 초등학생 인생을 살면서 처음 보는 반찬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마치 슈렉 힘줄처럼 생긴 짙은 초록 줄기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하며 뒤엉켜 있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표면의 윤기는 마치 지렁이처럼 미끌미끌했고 모양새도 그것처럼 길었다. 그 때문인지 서로의 위에서 흘러내릴 때는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당황하여 친구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르던 그 날처럼 자기도 반찬 이름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순간 나는 내가 이것을 먹지 않으면 친구가 상처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소 과장된 미소와 몸짓으로 젓가락을 들어 슈렉 힘줄을 집어 들어보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미끄러운 몸통은 젓가락 사이로 잘도 빠져나갔다. 몇 차례 그런 행동을 취하며 그 핑계로 먹지 말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친구가 그런 내 마음을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포크 수저를 들어 뒤엉킨 슈렉 힘줄들을 향해 위에서부터 추락하듯 힘차게 내리꽂았다. 뿌드득- 소리인지 느낌인지 알 수 없는 감각이 전달되며 뾰족한 포크 수저에 담아 올려진 녀석들은 어느새 내 입 앞에까지 다가왔다. 친구는 긴장한 듯 그런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나 역시 긴장하긴 매한가지였는데, 혼미한 상태에서도 친구의 마음을 읽었고,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베이컨 오일과는 또 다른 미끄러움으로 내 입술을 훑고 들어간 슈렉 힘줄은 입안에서 씹힐 때 오도독거렸다. 곧이어 입안 전체로 퍼지는 고소함과 짭조름함이 심봉사가 눈을 뜨듯 새로운 세상으로 나의 미각을 안내했다. 그 뒤로 신들린 나의 포크 수저질은 슈렉 힘줄을 향해 계속 이어졌고,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친구는 자기 반찬을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포크 수저질을 멈췄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친구에게 나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부탁했다.

"저기 있잖아. 이거 너무 맛있어서 우리 엄마한테 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또 내가 설명을 못 해서 엄마가 못 알아들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거 우리 집에 조금만 싸가도 될까?"

친구는 조금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내게 얼마든지 싸가도 된다며 슈렉 힘줄이 담긴 반찬 통을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 마치 릴레이를 하듯 친구의 반찬 통에 담긴 슈렉 힘줄은 내 반찬 통에 옮겨졌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슈렉 힘줄이 담긴 소중한 도시락 가방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엄마~엄마! 이거 봐봐. 학교에서 친구가 싸 온 도시락 반찬인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가져왔어. 엄마 얘 이름이 뭔지 알아? 엄마도 이거 할 줄 알아?"

엄마는 흥분한 나와 대머리 위의 머리카락처럼 몇 가닥 덩그러니 반찬통에 담겨있는 슈렉 힘줄을 번갈아 보더니 마구 웃기 시작하셨다.

"은영아, 이건 미역 줄거리잖아. 너도 이게 맛있어?"

"얘 이름이 미역 줄거리야? 응! 나는 너무 맛있어. 엄마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알면서 그동안 나한테 왜 안 해준 거야?"

"엄마도 아가씨일 때 미역 줄거리가 너무 맛있어서 배가 터질 만큼 먹었어. 그런데 이거 몇백 원이면 엄청 많이 살 수 있는 싸구려 음식이야. 엄마가 클 때는 가난해서 사람들이 미역 줄거리를 질리도록 먹었거든. 그래서 엄마 딴에는 너무 싸고 흔해서 안 해준 건데, 네가 먹고 싶다면 지금 당장, 매일 해줄 수도 있어."


그날 이후,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 반찬은 내 입맛에 맞춤형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부러움을 살 만한 반찬이 아닌, 정말 내가 좋아하고 맛있어하는 음식들로 채워주셨다. 그것은 대부분 한식이었고, 그중에서도 으뜸은 나물 반찬이었다. 가끔 나를 뭉개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도시락 반찬으로 왜 그런 걸 싸 오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맛있어서'라는 대답으로 웃으며 응수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깍쟁이 같은 외모 때문인지 내가 한식 중에서도 나물 반찬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고급 이탈리아 음식을 좋아할 것 같은데 토종 입맛이라며 의외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미역 줄거리를 싸 왔던 뒷자리 친구와의 점심시간이 떠오른다.

요즘도 주방에서 미역 줄거리를 해 먹는 날이면 어김없이 양념처럼 엄마와 나는 그 시절의 추억을 깔깔 웃으며 쏟아낸다. 평생 미역 줄거리라고 부르던 음식의 정확한 명칭이 '미역 줄기 볶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인데, 나에게는 미역 줄거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부를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전 나에게 마음을 열어 자신의 세상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그래서 나의 입맛까지 깨닫게 해 준 친구가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는 따뜻한 밥 위에 슈렉 힘줄 같은 미역 줄거리를 올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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