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점과 약점을 함께 인정할 때 나는 온전해진다

by 이은영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이다.
-톨스토이


사람이 진실로 인정받고 성공하는 길은 뭔가 그럴듯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있지 않고 솔직한 자신을 표현하는데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은 두려워하면서, 그저 인기만 얻으려고 했다. 내 안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고 대신에 거대 자신감으로 무장했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몇 번의 무너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며 내가 누구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0대 때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했기에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의 시선을 만들어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자기 시선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갔다.

발달 심리학에 따르면 그런 것을 '개인적 우화'라고 하는데 사춘기 특징이라고 하니 사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청소년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다면 아직 미성숙하다는 증거가 된다.



내가 의식하는 타인의 시선은 허상이다


다행스럽게도 혹독한 사춘기를 거쳐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치이는 20대를 통과하면서 나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보게 됐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 코가 석 자라서 나에게 그리 관심 없음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나를 둘러싼 그 모든 타인의 시선이 허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때야 비로소 진짜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나이 29살 때 일이다. 평생 개신교 모태 신앙으로 살던 내가 가톨릭 성경까지 통독하며 30살에 새롭게 세례를 받게 된 계기다.


▲ 2010년 4월 4일. 가톨릭 성경을 통독한 후 '메리엔젤'이란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다.


청소년기에는 사춘기를 겪는다면 성년의 시기에는 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겪는다. 인생의 답을 찾아 이 책 저 책을 펼치고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배우고자 하지만 종국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파랑새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틸틸과 마틸 남매는 이웃의 부탁을 받고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다양한 세상만 경험하고는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크리스마스날에 꿈에서 깨어보니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자기 집 새장에 있었음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평생을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똑똑하며 대단한지 드러내는 일을 좇아 열정을 쏟아붓지만, 희열은 잠시뿐 또 다른 허무와 공허함이 우리를 기다린다. 인간은 그 끝에서 다시 질문한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지?



빛과 어둠이 있어야 사물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림 그릴 때 행복했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고, 상을 받고, 더 나아가 전공이 되고 직업이 됐을 때 재미 삼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아마추어일 때는 용서되고 넘어가는 것들이 프로가 되는 순간 즐길 수 없는 평가 물이 되기 때문이다. 혼자 취미로 그렸을지라도 그림을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계속 보여서 괴로워진다. 나는 그 후로 편하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천재 화가라고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조차도 다시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일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말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창세기 2:25)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사랑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나체로 표현했다.


요즘의 나는 다시 재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에 굴러다니던 천 원짜리 샤프로 그림을 그려서 공개하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된다.


빛과 어둠이 있어야 사물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처럼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강점과 약점을 함께 드러내 보일 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해짐을 느낀다. 자기 그늘을 불편해하지 않고 드러낼 때 삶은 더욱더 자연스러워지고, 자연스러운 태도는 여유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펼쳐 보여준 커다란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쉬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 조앤 미첼이 말하기를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뭔가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면 먼저, 아주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나의 약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강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나로서 사랑받고 미움받는 경험은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내면의 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다 잘할 필요도 없고, 남들의 생각대로 살 필요도 없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질 필요는 더욱더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페이지에서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나의 강점과 약점을 함께 드러내는 일이다. 타인의 그늘을 보고도 불편해하지 않고 태연히 끌어안을 때 나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나를 나로서, 너를 너로서, 소중히 대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나는 요즘 그렇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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