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당하는 방법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사람은 요구하는 만큼만 존중을 받게 된다.
-윌리엄 해즐릿-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교문을 통과하여 오르막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마침 학교 매점에서 나오던 같은 반 아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나는 애들이 왜 은영이를 따돌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그래서 너 지금 은영이랑 놀겠다는 거야?"
"아니~그건 아니지만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죄지은 것도 아닌데, 나는 코너 벽에 숨어서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기대와 달리 나에 대한 대화는 단 세 마디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에이 뭐야. 이유도 모르고 나를 따돌리다니.
같은 반에 특이한 이름을 가진 -일 년 꿇은- 사나운 언니가 있었다. 새 학기 초 자신의 친구인 2학년 선배들을 교실로 데려와 함께 욕을 하며 담배를 피웠다. 그렇게 반 아이들에게 겁을 주며 자신의 위치를 다져나갔다. 반 전체는 그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아양을 떨면서 애를 썼다. 단 한 사람 이 사실을 모르는 담임 선생님만 빼고. 나는 그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특히 그녀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비굴해지는 내 기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년 꿇은 게 벼슬이야? 동생들 앞에서 이런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알고 조용히 학교 다녀."
내가 왜 그랬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내 입에 야채 호빵을 쑤셔 넣을 것이다. 분명히 작은 소리로 혼잣말한 거 같은데 모두가 내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적 괴롭힘의 희생양이 되었고, 반 아이들은 자신이 희생양이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방관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도 그녀가 없을 때는 욕을 했지만, 그녀 앞에서는 혹시나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나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곤 했다. 다행히 육체적인 폭행은 없었지만, 서로의 신경전이 흡사 트럼프 VS 바이든이었다. 문제는 나의 지지층이 없다는 것이다.
그 탓에 한동안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지만, 왠지 그런 내 감정을 티 내면 지는 것 같아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내가 나를 가장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트레스받아서 죽느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폭력 사건에 휘말려서 학교에 불려 오시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빨간 궁서체인 나의 마음과는 달리, 가족은 상쾌하게 "넌 할 수 있어. 파이팅!"까지 외치며 무거운 등굣길에 힘을 실어주었다. 괴짜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두려움에 떨며 학교에 갔다.
그날도 신경전을 벌이기 위해 사나운 언니가 다가왔다. "야, 비켜. 나랑 자리 바꿔." 그녀는 수업 시간에 내 앞자리에 앉아 계속 뒤돌아 보며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내가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다. 괜히 섣불리 먼저 움직였다가 역으로 당하면, 그땐 게임 오버라는 것을 우린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사나운 언니는 내 심리를 압박해 왔다.
‘더는 안돼. 이 선은 넘지 마.’라는 신호를 주지 않으면 졸업할 때까지 그녀의 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상대가 선을 넘지 못하게 하려면 먼저 선부터 그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허락한 만큼 무례하게 굴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살기를 품은 눈빛으로 그녀의 어깨너머에 있는 칠판을 바라보았다. 괜히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가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들키기라도 하면 끝장이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필기를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고."
세상에~! 흡사 청소년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순간 뿌듯했다. 말할 때 미세한 떨림을 느꼈지만 다행히 교실 소음에 묻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사나운 언니의 입 모양을 해석했다.
젠장! 망했다. 너무 긴장하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방귀를 코로 뀌며 "C8. 넌 오늘 나한테 뒈졌어.”라고 되받아쳤다. 이판사판 공사판! 드디어 미친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때마침 그날 나는 청소당번이었다. 대걸레로 교실 바닥을 밀면서 시간을 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나운 언니에게 “내가 청소 다 할 때까지 기다려!”라고 최대한 명령조로 말한 뒤 올라가 본 적도 없는 학교 옥상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는 사나운 언니를 대걸레로 흠신 패는 상상을 했다. ‘만약 사나운 언니의 친구들이 몰려오면, 대걸레를 휘두르며 한꺼번에 밀어버릴까. 아니야. 난 한 놈만 팬다.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대걸레를 붙잡고 죽을 각오를 하니(논개처럼 사나운 언니를 끌어안고 학교 옥상에서 같이 떨어질 생각까지도 했다) 두려움이 가라앉고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청소 업체에서 나온 사람처럼 창틀 사이사이까지 꼼꼼하게 닦은 후 그녀를 찾았다. 기다리다 지쳐서 집에 갔는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뭐야! 별것도 아닌 게." 그런 허세 가득한 말을 내뱉으며 친구들 앞에서 거드름을 떨었지만, 내 두 다리는 누구보다 재빠르게 교문 밖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나운 언니는 일주일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학교에 나타났을 땐 어찌 된 일인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희생양을 물었는데, 그때는 충격적일 만큼 교실 안에서 육체적 폭행을 가했다. 반 아이들은 내 곁으로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가 진짜 친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한 참 시간이 흐른 뒤 사나운 언니가 다시 다가와 나의 종아리를 꼬집더니 “장난이야~”라며 웃었다. 이게 어디서 간을 봐?!
그때까지 몰랐다. 미친개를 키우며 찰지게 욕하는 할미넴이 내 안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 나는 선풍기 바람을 쐐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선풍기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사나운 언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욕쟁이 할머니에 빙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카 신발! 이개나리십장생아! 수박에씨발라먹어! 한 번만 더 나한테 이런 장난치면 그땐 진짜 죽여버린다!"
사나운 언니는 두 번 다시 내 곁에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를 물 수 있는 미친개처럼 보였던 것 같다. (웃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사나운 언니는 타인과 친구가 되는 법에 서툰 아이였고, 나는 내 감정에 집중하느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서툰 사람들이 모였으니 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그러나 그때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오히려 두려움을 극복하며 나를 보호해 준 나 자신이 고맙고 대견하다. 학창 시절 왕따의 기억이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괴롭혔지만, 극복하고 나니 내공이 더욱더 단단해졌다. 무엇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관계 유지를 위해,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비굴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인생 철학이 됐다.
민주화 운동을 하여 고문당했던 사람이 과거를 떠올릴 때 가장 괴로운 건,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고 했다. 고문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고 고백했다. 사람 감정 다 똑같은가 보다.
문득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상상해 본다. 지금의 나라면 사나운 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고 내 할 일에 집중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무례하게 군다면 교양 있고 단호하게 내 감정을 표현했을 것 같다. 그런 매너가 안 통하는 사람이라면? 더는 반 친구들을 건들지 못하도록 선생님, 부모님, 경찰 총동원하고는 또다시 미친개를 키우는 욕쟁이 할머니를 소환할지도 모른다. (웃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계에 선을 긋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단호해지는 일은 매몰찬 행동이 아니라, 상대가 더는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렇게 선 너머에 존중해야 할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들이 가족, 애인, 친구, 이웃, 직장 상사, 동료 등 어떤 관계이든 간에 마찬가지다. 나를 잃어버리고 비굴해지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관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나뿐인 소중한 나를 사랑하자. 인생의 비극은 언제나 나를 사랑하지 않고 악연을 허락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건 자신이 어딘가 못나고 부족해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라고 오해한다. 인간에게 있어 관계가 단절되는 불행은 불명예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고 감춰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괴롭히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내가 못나서가 아니다. 괜한 수치심에 자기 고통을 감추고 혼자 끙끙 앓지 말자. 불행은 내 탓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기형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때 행복이 깃든다. 그때 비로소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높은 자존감은 그렇게 얻어진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모욕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반드시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남을 괴롭히는 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도 많지만, 서로를 기쁘게 해 주면서 좋은 추억을 쌓으려는 사람은 더욱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살기를, 부디 살아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자기 자신으로 당당해지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