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 골프 입스왔잖아."
골프 구력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한두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골프 초보가 그 말의 뜻을 모르고 "와! 축하드려요" 했다는 이야기는 구전동화처럼 내려오고 있다.
입스(yips)가 오면 평소 싱글(72타를 기준으로, 한 자릿수 타수를 더 치는 사람)이나 언더(72타를 기준으로, 마이너스 타수를 치는 사람)를 치던 골퍼도 순식간에 초보가 된다. 공통으로 호소하는 증세로는 불안감에 휩싸여 예전에 잘 되던 동작이 갑자기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와 박인비 같은 월드 클래스 선수조차 입스의 저주에서 예외란 없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박인비 선수도 과거 드라이버 입스에 시달리다가 최초로 공이 없어서 경기에서 퇴장당할 것 같아 기권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골퍼에게 찾아오는 주요 입스로는 드라이버 입스, 우드 입스, 아이언 입스, 퍼팅 입스, 이 모든 것을 합친 토털 입스가 있다.(웃음)
골프계에서는 불치병이라고 불리기에 골퍼라면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입스'(Yips)란 과연 무엇일까? 스윙 전 샷 실패나 부상에 대한 두려움, 주위 시선에 대한 지나친 의식 등으로 발생하는 각종 불안 증세를 뜻한다.
마음의 병이라고 불리는 입스의 원인은 기술적인 작은 문제에서 시작해 심리적 문제로 이어지는 데 있다. 그리고 다시 근육의 가벼운 경련, 발한 등의 신체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얼마 전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소 페어웨이 위로 자신 있게 휘두르던 드라이버 샷이 와이파이 샷(공이 똑바로 가지 않고 일관성 없이 좌, 우로 심하게 빠지는 현상)으로 변질했고, 2온으로 그린 위에 올려놓아도 다시 퍼팅으로 온탕 냉탕을 오가다가 양파(더블 파, 기존 타수 보다 두 배 이상 치고 홀 아웃한 경우)로 끝냈다.
'또 생크 샷이 나오면 어떡하지? 또 뒤땅 치면 어떡하지? 또 OB 나면 어떡하지? 또 막창 나오면? 또 뻥 샷 나오면? 또... 또... 또...?'
실수가 잦아지자 다음 샷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욱더 증폭했다. 남은 홀을 미스샷 없이 잘 쳐야 한다는 압박과 강박, 샷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온몸을 마비시키는 느낌이었다. 주위 시선에 대한 지나친 의식도 한몫했다.
'좋은 샷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번에도 실수하면 어떡하지? 나로 인해 경기가 늦어지고 분위기가 망가져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 어떡하지? 그로 인해 사람들이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 말로만 듣던 입스 초기 증세. KLPGA 프로님에게 매주 2시간씩 꾸준히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실력이 우상향 중이었기에 더욱더 당혹스러웠다.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고, 게다가 몸의 감각마저 통제가 안 되니까 불안했다. 불안하고 두려우니까 표정과 함께 몸도 굳어지고 신경까지 날카로워졌다. 부정적인 신호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양산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알고 보면 프로 선수 중에도 입스로 고생하다가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입스가 경기 성적이 좋았던 완벽주의자나 성실한 성향의 프로 골퍼에게 주로 발견된다는 점은 저주에 가깝다. 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은 어김없이 신체적 반응으로 드러나고, 우려했던 상상들이 현실로 눈 앞에 펼쳐진다.
툭 쳐도 들어갈 길이의 퍼팅에서도 바들바들 떨면서 실수를 반복한다. 넓은 페어웨이를 앞에 두고도 러프(잔디가 정돈되지 않은 구역)나 오비(코스가 아닌 곳) 지역으로 공을 날릴까 봐 걱정한 그 생각 그대로 공을 보내버린다.
입스의 극복이 힘든 이유는 기술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나 다른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기에, 자신이 다스려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인생도 골프도 생각과 마음은 스스로 다스려서 인생 시나리오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
'나는 안 될까 봐 불안하고, 결국 실패할 것이다'라고 자신의 뇌에 부정적인 사고와 이미지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면, 우리 몸의 에너지 역시 부정적으로 이루어져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반면, '나는 잘될 것이고, 결국 해낼 수 있다'라고 반복적으로 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처럼 인생도 골프공도 자신이 상상하고 계획하여 믿는 방향으로 간다.
뇌과학자들 말에 의하면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속이기 쉽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시큼한 레몬을 입안에 넣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는 침이 고이고, 거짓으로 웃어도 진통제의 일종인 엔도르핀이 뿜어져 나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인간이 원하는 것을 뇌에 지속해서 주입하는 훈련을 하면 신경계통은 이를 신경 언어로 받아 뇌 작용에 미치게 한다. 이를 두고 정보처리 학자 리처드 밴들러와 언어학자 존 그리더는 인간이 자신의 뇌에 언어로써 자신을 프로그램화(NLP-신경 언어 프로그래밍)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럽인들이 말하는 '자기 조정'이다.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도 모두 옳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이 믿고 희망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 시도하며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도 골프도 결국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 위에 서서 자신감을 가지되 겸손한 태도로 전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주말 골퍼는 이 무시무시한 입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입스는 매일 밥 먹듯이 연습하는 프로 선수나 로우 핸디캐퍼 같은 상급자에게만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입스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웃음)
나와 같이 보기플레이(평균 핸디캡이 18 정도인 플레이어)와 백순이를 넘나드는 아마추어 골퍼는 입스가 아닌 연습 부족에서 오는 두려움, 실력 부족일 뿐이다. 역시 골프는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21년 7월 27일 <"나 입스 왔잖아" 프로 골퍼들이 잘 걸리는 이'병'> 로 '이은영 작가의 <아무튼 골프>' 칼럼 연재 기사에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전체 탑보드 메인과 현재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기사 3위, 다음, 네이버 뉴스 스탠드 탑, 주요 기사 PICK으로 선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