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고학년이 되면 수업 내용 정리의 필요성을 느껴 공책 정리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생겨납니다. 수능시험 준비를 위한 고등학생들의 공책 정리를 다룬 책『서울대 합격생 100인의 노트정리법』에 따르면 조사한 서울대 합격생 중 97%의 학생이 공부 방법으로 공책 정리를 활용했다고 답했습니다. 직접 공책을 정리하는 대신 정리된 자료를 활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들이 매우 소수인 것을 감안한다면 공책 정리는 학생들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하는 공책 정리가 왜, 어떤 방식으로 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봅시다.
손쓰기 - 공부를 돕는 강력한 뇌 자극
사람의 손은 운동기관일 뿐만 아니라 ‘외부의 두뇌’로 불릴 만큼 많은 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기관입니다. 손을 통해 전달된 외부 자극은 뇌를 활성화시켜 뇌가 더욱 고차원의 정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해 본 학생이라면 뭔가 쓰며 수업에 임했을 때 기억도 잘 나고, 내용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필기하며 손을 쓰는 일이 뇌를 자극하여 적극적인 수업 듣기와 집중을 도운 덕분입니다. 그러기에 나중에 필기를 다시 보지 못하더라도 수업 중 필기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설명 듣기가 단조롭고 집중하기 어렵다면 연필을 들고 교과서에 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것과 같은 가벼운 손 움직임부터 시작해 볼만합니다.
공책 정리. 곧 머릿속 정리
손을 쓰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공부하면서 연필을 돌리거나 손 마사지를 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왜 굳이 펜과 종이를 써가며 필기를 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공책 정리 과정이 곧 생각의 정리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공책 정리를 하려면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고 내용의 체계가 파악되는 것이지요. 덕분에 공책 정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공부한 내용의 뼈대를 세우는 셈이 됩니다.
어떤 과목을 필기하면 좋을까?
필기하는 공부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모든 과목을 필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 합격생에게 어떤 과목을 주로 필기하며 공부했는가 조사해 보니 사회가 가장 많았고 수학, 과학이 비슷하게 그 뒤를 이었으며 국어, 영어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필기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초등 고학년 학생들은 사회나 과학, 수학 등 지금 내가 약하다고 생각되거나 내용이 복잡해서 정리하고 싶은 한두 과목으로 필기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코넬노트 정리 법
학생들에게 공책 정리를 해 보자고 하면 수업내용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교과서 내용 전체를 베끼듯이 빽빽하게 써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공책 정리는 앞서 말한 대로 생각의 정리이기 때문에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내용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책 정리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도 내용의 배치를 쉽게 정할 수 있는 정리법을 소개합니다. 바로 코넬노트 정리법입니다. 코넬노트 정리법에는 공책의 영역들을 나눠서 각 역할에 맞는 내용만 쓰도록 하는 규칙이 있어서, 이것만 잘 따라 한다면 정리를 완성했을 때 내용이 저절로 체계를 갖추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코넬노트는 보통 아래와 같이 공책의 한쪽을 4개의 구역으로 나눕니다. 상단은 제목과 목표, 왼쪽은 핵심어(키워드), 오른쪽은 내용, 하단은 요약이나 질문이 들어갑니다. 각 부분의 쓰임을 차례대로 살펴봅시다.
* 상단 - 단원 제목 쓰기
먼저 단원 제목은 가장 윗줄의 왼쪽에 붙여 크고 굵게 씁니다. 제목을 가장 위에 써 두면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회같이 대단원 제목 외에 소단원 제목이 있는 경우, 대단원 이름 다음 줄에 한 칸 들여 쓰기로 소단원 제목도 씁니다. 단원 제목 아래, 본문이 시작되는 바로 윗줄에는 그날의 학습 문제를 씁니다. 학습 문제란 그날 수업의 목표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 질문이나 청유형의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학습 문제는 그날 배운 부분의 교과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오른쪽 -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제목으로, 포함되는 내용은 번호를 붙여서
이전 글 복습 방법 편, ‘읽기‘에서 목차를 생각하면 그것이 곧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서랍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 방식은 공책 정리에도 적용됩니다. 즉 교과서를 읽었을 때 비슷한 내용은 하나로 묶어 같은 서랍에 담고, 그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서 서랍의 제목으로 뽑아내어 정하는 것입니다. 코넬노트의 경우 소단원 안에서 이렇게 하나의 제목으로 뽑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그것은 왼쪽 칸에 따로 씁니다.
서랍 속에 들어가야 할 구체적 내용은 제목 옆 오른쪽 칸에 번호를 붙여 정리하면 됩니다. 단, 내용을 쓸 때는 교과서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않고 내용을 요약해서 쓰려고 노력합니다. 내용을 요약할 때는 화살표나 -와 같은 나만의 기호들을 만들어 다양하게 활용해도 좋습니다.
* 왼쪽 - 핵심어(키워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중요하게 다루거나 교과서에 자세하게 풀어 설명된 말은 그날 꼭 알아야 할 핵심어(키워드)입니다. 핵심어와 그 뜻을 정확히 알면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날의 학습 문제에도 잘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왼쪽 칸에는 오른쪽 내용의 제목이나 대표 문구 외에도 오른쪽을 쓸 때 발견한 핵심어를 쓸 수 있습니다. 복습할 때는 오른쪽을 가리고 왼쪽의 핵심어만 보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보거나 써 보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어 연상하는 방식으로 복습하기도 좋습니다.
* 하단 - 요약과 질문
가장 아래 3줄가량의 공간에는 그날에 배운 내용에 대한 요약이나 질문, 느낌 등을 씁니다. 복습할 때는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이 공간에 한마디로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세요. 이렇게 하면 수업의 핵심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길러집니다. 또한 이 칸에 공부한 내용을 묻는 퀴즈를 만들어 적어두고, 시간이 지나서 복습할 때에 다시 풀어보면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생각났던 질문이 있다면 이 칸에 적어두었다가 집에 가서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의 확장 복습을 해도 좋겠습니다.
혼자 해 보는 2차 공책 정리( 2차 필기 )
공책 정리를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면 노트를 마련해 일단 수업 시간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적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수업 시간 중에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까지 깔끔하고 빠짐없이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무리하게 꼼꼼하고 예쁘게 적으려다 보면 오히려 수업 흐름을 놓칠 수 있지요. 그래서 수업 중에는 보통 우선 생각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간략히 내용을 써넣고 틀린 내용은 줄을 그어 지우며 대략 필기합니다.
그런 후에 많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써 놓은 필기를 수정하거나 다시 정리합니다.『서울대 합격생 100인의 노트정리법』에서는 이것을 2차 필기라고 불렀습니다. 2차 필기를 하려면 수업 후에 시간을 따로내서 공책을 정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필기하는 복습으로 한 과목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체계를 세우기를 원한다면 이런 노력도 해 볼 만합니다. 실제로 사회나 과학 등의 과목에서 2차 필기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책 정리로 복습할 때 쓰면 좋을 그 밖의 전략들
* 선생님 필기에 교과서 보고 빠진 부분 써넣기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칠판에 공책 정리를 해 주었다면, 집에서 복습할 때는 교과서와 필기 내용을 비교해 보고 빠진 내용을 써넣어 보세요. 내가 이해한 대로 관련 그림을 그려 넣거나 오려 붙여도 좋습니다. 선생님의 정리 방식도 배우고, 빠진 내용을 찾고 채우느라 공책과 교과서를 다시 보게 되어 꼼꼼히 복습하게 됩니다.
* 교과서 내용을 노트에 요약정리하기
수업 시간에 했던 필기가 따로 없다면 복습할 때 교과서 내용을 읽어보고 공책에 직접 수업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공되는 프린트물이 있다면 이것을 교과서 내용과 비교해 보면서 공책에 쓸 내용을 정하는 것도 좋습니다. 교과서를 읽고 직접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도 길러지고, 수업 내용도 정리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 핵심어의 정의 써 보기
수업 시간에 핵심어만 필기해서 오거나, 핵심어의 뜻을 선생님께서 풀어주신 대로 받아 적어 왔다면 복습할 때 이것을 교과서에서 말하는 뜻과 한 번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서 단어의 뜻도 다시 음미해 보고, 빠진 설명이 있다면 추가해서 적어 넣습니다. 만약 '대동법'에 대해 배웠다면 대동법이 가진 한자 뜻, 내가 이해한 방식의 뜻, 누가 왜 반포한 것인지, 대동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 등을 복습할 때 공책에 써넣는 것이지요.
*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보기
공책 정리는 글씨로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한 내용을 잘 보여주는 나만의 그림으로 오늘 공부한 내용을 공책에 표현해 보세요. 그리는 과정에서 재미도 느낄 수 있고, 내용을 그림과 연관 지으면서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 내용을 서로 비교하기 - 비슷한 것은 묶고 다른 것은 드러나게
이 필기에서는 삼국 전성기 왕들의 업적을 쓰고,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강 유역 차지, 영토 확장 등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서 한반도에서 전성기를 맞이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쉽게 눈에 띄도록 했습니다.
신분에 따른 생활 모습에서 귀족은 비단옷을 입고 화려한 집에 살았던 것과 달리, 평민은 베옷을 입고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 집과 옷에 관련된 내용을 신분별로 나란히 배치하여 써 놓았습니다.
* 표로 정리해 보기
여러 가지 내용을 배운 후에는 이 내용을 표로 분류, 정리해 보면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생각해 보기에도 좋습니다.
* 생각한 과정을 설명하듯 써 보기
이 학생은 수업 시간에 공부한 ‘헤이그 특사 파견 과정’을 번호를 붙여 공책에 적고 있습니다. 역사 단원을 공부할 때 이런 방식의 공책 정리를 선호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생각하는 과정을 공책에 그대로 적어보면 일의 순서와 인과관계가 분명해져서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교과서에 정리하기
수업 중이나 후에 공책 정리하는 일이 부담되는 학생들은 중요 내용을 교과서에 직접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업내용에 더 잘 집중하기 위해서 수업 시간에는 거의 전적으로 듣기만 하고, 필기는 교과서에 간단히 표시하는 정도로만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수업 중에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그 내용을 공책에 적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찾아서 표시하거나 여백에 재빨리 메모하는 정도로만 남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잘 표시한 밑줄이나, 교과서 질문에 써 둔 답, 메모 등은 공책 이상으로 좋은 내용 정리가 됩니다. 수행평가를 앞두고 있을 때 이렇게 정리한 교과서를 집에 가져가 표시한 부분을 다시 훑어보고 답한 내용을 읽어봅시다. 수행평가는 수업 중에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교과서 필기 내용이 큰 도움이 됩니다.
과학의 경우라면 과학 교과서와 함께 실험관찰을 잘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실험관찰은 과학 교과의 핵심 내용을 담은 보조 교과서이자 일종의 정리 학습장입니다. 실험관찰의 각 질문은 학생이 수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국어,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확인 질문들이나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 설명 등을 ‘이거 당연하고 쉬운 내용이네!’라며 제대로 보지 않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과서 질문들에는 명확한 말로 답을 써넣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기를 권합니다. 단원을 다 배우고 교과서의 질문들과 답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이 내용이 곧 잘 정리된 수업의 핵심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기를 따로 하지 않더라도 복습할 때 교과서에 썼던 답들을 읽고 바로잡는 노력을 해 평소 복습 때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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