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 즉 외우기는 선조들도 하던 일반적인 공부법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공자, 맹자와 같은 고전 공부를 할 때도 글을 외워서 완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용을 외우면 여러모로 유용하고 편할 때가 많습니다. 구구단처럼 내용이 필요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쓸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언제든지 암기한 내용을 떠올려 그 의미를 곱씹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암기는 사실 힘들고 별로 재미도 없습니다. 외워지지 않을 때면 반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책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힘들지만 꼭 외워야 할 때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복습할 때 외울 것을 미리 구별해 두자
시험이 임박했을 때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면 많은 학생들은 뭔가를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쓰고 중얼대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몇몇 학생들은 무엇을 외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꼭 필요한 것을 외우고 싶은데, 무엇이 중요한지 몰라 다 외워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시험 직전에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복습 때 해 두면 좋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암기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자신만의 표시로 구분을 해 두는 일입니다. 내용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해 놓는 것이지요. 집중적으로 외워야 할 것과 알아두기만 해도 되는 내용이 복습할 때 구분되어 있으면 시험이 임박해서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중요하다고 표시한 것만 외우면 되니까요. 만약 복습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학습 문제를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학습 문제와 관련이 깊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식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을 외울까?
외울 것이 많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복습할 때 꼭 외워야 할 내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구구단과 같이 정확히 외워두었다가 활용하거나 말할 수 있어야 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과목별로 핵심어들은 용어 자체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특히 사회는 교과서 단원마다 주요 용어들이 정리된 칸이 따로 있을 정도로 용어가 중요한 과목입니다. 용어 자체를 쓸 수 있어야 하고 그 뜻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어의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글의 주장이 < 공정 무역 제품을 사용하자 > 일 때, 이 글에서 제시한 근거의 타당성을 판단하여 쓰시오.
위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근거의 타당성 판단 기준 3가지, 즉
1. 근거가 주장과 관련 있는지, 2. 근거가 주장을 뒷받침하는지, 3. 근거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적절한지
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국어라 하더라도 이렇듯 기억했다 활용해야 하는 내용이라면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입으로 반복하며 외우기보다는 각 항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반복적으로 떠올려 보면서 외우는 것이 기억도 잘 되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좋습니다. 위의 경우라면 각 항목의 의미를 명확히 해주는 단어들 (1. 관련 / 2. 뒷받침 / 3. 적절)에 집중해서 문장의 의미를 반복해서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암기도 결국 노력
과학이나 사회 시험을 보고 나면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외우는 게 안 되는 걸까요?"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보통 잘 이해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초등 교과 내용의 대부분은 외우기보다는 이해하면 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외운다기보다는 생각의 방식이 익혀져서 굳이 외운다는 생각 없이도 자연스레 암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재들만 암기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암기 역시 노력과 기술에 의해 좌우됩니다. 암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자신만의 암기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지요.
* 외운 것을 꺼내어 확인하기
지금 암기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면 암기한 것이 잘 외워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바로 기억을 꺼내어보는 것입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외운 것은 책을 덮고 암송해 보거나 써봐야 합니다. 바로 외운 것을 출력해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잘 외워졌는지 확인해 달라고 하거나 외워서 쓴 것을 원본과 비교해 봐도 좋습니다. 외운 지식을 자꾸 확인하면 작업 기억에 올라온 갓 외운 지식을 뇌는 중요한 정보로 인식하고, 이것을 ‘해마’라는 장기기억장치로 이동시키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기억은 자꾸 꺼내어보고 다듬을수록 견고해집니다.
*이야기와 연관 짓기
기억력 대회(원주율 외우기, 트럼프 카드 순서 외우기 등)의 참가자들은 아무 규칙이 없는 대상을 외우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내용이 너무나 낯설다 보니 때로는 원주율이나 트럼프 카드처럼 아무 규칙 없는 내용의 나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공부하는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 읽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사회의 지리나 역사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지리 내용의 경우 그 장소와 연관된 사건이나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것이 내용을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역사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운 것은 역사가 가진 흐름,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 내용을 풀어서 정리한 역사 책, 역사 만화 등이 시중에 많습니다. 사회 복습으로 오늘 배운 내용을 역사 책에서 찾아 읽어보면 어떨까요? 읽다 보면 교과서 내용에서 생략된 자세한 이야기가 보충되어 내용의 흐름이 잘 이해되고 기억되는 부분도 많아질 것입니다.
* 외울 내용 시각화하기
암기를 잘 하는 몇몇 학생들에게 비결을 물으니 외울 때 글의 내용을 그림이나 장면으로 떠올려 본다고 답했습니다. 글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초등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시각화할 수 있도록 비주얼 씽킹 기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비주얼 씽킹이란 쉽게 말하면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책 정리를 할 때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림을 구상하고 그리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내용을 그림으로 정리해두면 내용이 필요할 때 그림을 떠올리게 되어 기억이 잘 나게 됩니다. 특히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비주얼 씽킹 방식으로 공책 정리, 연상하기(백지복습) 등을 해보기를 추천합니다.
* 다감각으로 외우기
사람의 뇌는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여 저장합니다. 그리고 저장된 정보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 활용했던 감각 정보를 통해 다시 불러 들여지게 됩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곳을 지나가다가 뭔가를 태우는 듯 매캐한 냄새를 맡았습니다. ‘이 냄새 뭐지? 코가 매운데’하고 생각하다가 여러분은 문득 이런 기억을 떠올립니다.
‘아~ 전에 할머니와 밭에 갔을 때도 비슷한 냄새가 났었지? 그때 할머니 댁 강아지 복실이도 따라왔었어.’
이처럼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도 관련된 기억 전체가 떠오르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경험이나 사건도 여러 가지 감각으로 기억하면 그만큼 그 경험을 떠올릴 단서가 많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기억해야 한다면 가능한 한 여러 감각을 동원해서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은 교과서 과목별로 다른 향수를 뿌려두고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냄새와 과목별 내용을 연결해서 기억하려는 하나의 기억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 주차장 자리를 기억하기 원한다면 번호를 눈으로 익히고, 입으로 중얼대서 귀로 듣고, 우리 차 주변의 색깔은 어떤 색인지도 봐 두는 것입니다. 여러 감각의 기억들이 서로 얽혀서 기억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공부할 때 보통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감각은 손으로 쓰고 입으로 읽어서 내 귀로 듣는 것입니다. 쓰고 읽기만 해도 보고 쓰고 말하고 듣는 4가지의 감각 실마리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다감각으로 저장된 정보는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한 정보보다 훨씬 견고하게 기억되고 실마리도 많아서 다시 떠올리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초등 공부는 외워야 할 일보다는 제대로 이해하면 해결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꼭 외우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외운 내용 꺼내어 확인하기, 이야기 연관 짓기, 시각화하기, 다감각 활용하기 등의 전략을 활용해서 외우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