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어진 붉은 지붕의 프라하를 본 적 있나요

by 송지영


가장 긴 밤이었다.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이른 시간에 어두워지는 프라하의 겨울. 오후 네 시 반이면, 해는 이미 뚝 떨어진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그 무렵, 나는 프라하성 투어를 마치고 손님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라 불리는 프라하성 스타벅스에서 언 몸을 녹일 자유 시간을 주곤 했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하루를 보낸 손님들은 조금은 나른한 얼굴로 다시 프라하성 앞으로 모였고, 나는 그들의 안부를 살폈다.

프라하의 붉은 지붕을 가장 예쁘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점에 서서, 모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그 짧은 휴식 시간 동안 낮의 풍경이 야경으로 바뀐 도시에 감탄했다. 차디찬 난간에 걸터앉아 추위도 피로도 모두 잊은 채, 세계 3대 야경이라 불리는 빛의 장관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낮 동안 선명했던 적갈색의 지붕들은, 해가 지고 나면 분명 그 색이 뚜렷하지 않았다. 프라하성에서 내려온 베이지빛 조명은 구시가지를 은은하게 밝혔지만, 그 속의 붉은 지붕들은 본디의 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존재만 드러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은 붉은 지붕으로 보았다. 낮 동안 보아온 풍경이 이미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시가지가 어렴풋이 보이는 나의 작은 방에서도 나는 붉은 지붕의 숱한 풍경을 봐왔다. 쨍한 햇볕에 유난히 선명한 다홍빛을 띠는 날들이 있는가 하면, 흐린 날엔 붉은빛이 한 톤 가라앉았고, 비가 와 젖은 지붕은 가장 짙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적색의 스펙트럼 안에 있었다. ‘붉은’ 지붕인 채로.


어느 날이었다. 몸이 몹시 아팠다. 알 수 없는 열병에 눌려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온종일 잠만 잤다. 내내 앓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땐,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다. 이제 막 들어선 저녁이었는지, 한밤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밤이 너무나도 길고 긴 프라하의 겨울이었기에.


무거운 눈꺼풀을 걷어내려 슬쩍 창가로 가 커튼을 젖혔다. 늘 들여다보던 아득히 보이는 구시가지를 습관처럼 바라보았다. 나에겐 낮을 거치지 않고 마주한 첫, 밤의 프라하였다. 낮의 잔상이 사라진 구시가지의 풍경은 붉지 않았다. 칠흑의 어둠 속에 검어진, 성에서 뿜어져 나온 불빛에도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검고 어두운 지붕들이 처음 보는 풍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밤에 보는 풍경마저 붉은 지붕으로 보이는 건, 낮에 본 풍경의 잔상이었을까.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가장 인상 깊었던 어느 순간만으로 기억하는 걸지도 모른다. 눈앞에 놓인 실제 모습은 가려진 채, 가장 찬란한 기억으로 무언가를 마음에 영원히 두는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