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
인간 정신의 덧없음을 목도하는 일이 요즘처럼 쉬운 때가 없다. 살아갈수록 인간에 대해 발견하는 것은 '위대함'이 아니라 가여울 정도의 '가벼움'이다. 배울만큼 배웠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도 허망할 정도로 쉽게 편견과 편향에 빠져 살고 그러다 죽는다. 평생 추구해 온 가치를 작은 감정의 파편 때문에 하루 아침에 뒤집거나 의도적 인지부조화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뻔뻔함은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주리를 틀고 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놀라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잘못된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행동과학 교수인 닉 채터는 그의 책 "생각한다는 착각(The Mind Is Flat)"에서 "마음에는 이유도, 깊이도 없으며, 인간은 즉흥적인 경험으로 만들어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진짜 동기는 찾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찾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는 과감한 주장을 한다. 숨겨진 정신적 깊이를 파헤치는 일이 어려운 것은 그 깊이가 너무 깊고 어두컴컴해서가 아니라 파헤칠 만한 깊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모든 것을 재고할 기회'를 갖는 일은 삶을 뒤흔드는 계기를 만나지 못하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착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며 축적한 모든 것이 어떤 '깊이'를 형성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닉 채터의 주장을 보니 재고할 기회를 갖는 일은 날마다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일이다. 그 '깊이'라는 것이 원래 없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존재하는 것은 오직 목표뿐이다. 정해진 길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설임에 불과하다. (There is a goal but no way; What we call the way is mere wavering)"라고 말했는데, 인간 정신에게 있어서 '깊이'라는 것도 '망설임' 혹은 '허상'일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인간의 비합리성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