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쑤뜨라가 읽히기 시작 했다.

1장 2절

by 김은희
요가 쑤뜨라 1장2절.
YOGAS CITTA VRTTI NIRODHAH
마음-재질 작용의 제어가 요가이다.

이 구절에서 빠딴잘리는 요가의 목표를 제시 합니다. 예리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이 한 구절만 가지고도 충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의 나머지는 단지 이 구절을 설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정신적인 작용의 제어가 성취되었다면 그 사람은 요가의 목표에 도달한 것입니다. 빠딴잘리는 요가의 정의와 동시에 수행에 대해 설명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잔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요가를 경험할 것이다."


책을 쓴 것도 요가를 한 것도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단 이였다. 모두가 '자신'을 말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무엇이 진짜인지 분명히 알기는 어려웠다.


알고 있어도 쓰지 못한다면 진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글을 읽었다. 쓴다는 행위가 내게 주는 행위가 너무나 분명하기에 부정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을 쓰듯 책을 쓰기 시작하자 '진짜'가 보이기 시작 했다.


그제서야 오래 전 사두었던 요가 쑤뜨라가 눈에 들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읽지 않던 요가의 경전.


서문을 읽기 시작 하는데 거기에도 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면에서도 그는 라자 요가를 '발명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미 존재했던 생각들과 수행들을 체계화 시키고 편집한 것입니다. 그 시대 이후로 그는 '요가의 아버지'로서 간주되어 왔으며, 그리고 그의 경을 오늘날 무수한 형식 속에서 범람하고 있는 명상과 요가의 모든 다양한 형태들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요가 쑤뜨라15


요가 쑤뜨라의 저자인 빠딴잘리도 이것을 '체계화 시키고 편집' 즉, '썼기' 때문에 요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라 하니 쓴다는 행위가 갖는 힘은 참 위대하다.


아쉬탕가로 요가를 배웠고 유난히 아쉬탕기같이 생긴 몸 때문에 꼭 아쉬탕가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있었다. 보통의 아쉬탕가 요기들은 문데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수련을 하는데 나의 에너지는 그것을 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아이들의 하원시간이였고 수련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불안했다.


그런데 책을 쓰기 시작 무렵, 소마SOMA를 접하게 되었다. 알렉산터테크닉 수련을 거쳐 요가프라하를 만나기까지. 비로소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요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려면 내면에 깊히 집중 하고 예민하게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만 하고, 그 길을 요가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 인도하는 것이 내가 가고픈 길이였다. 거기에 만트라를 통한 찬팅 명상까지 몸을 진하게 울렸다.


동, 보다는 정.

글을 쓰듯 몸을 쓴다면, 글을 읽듯 몸을 읽는다면.

그거면 나의 요가는 완성 이였어. 그치?


작은 깨달음이 있고난 후 몸이 드러나는 탑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 났고 매일 아침 공복에 체중을 재는 일도 멈췄다.


요가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이 그냥 툭, 하고. 편안해졌다. 미약하게나마 마음에 일어나는 잔물결이 잦아들기 시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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