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요가 선생님

엄마에서 나로 가는 첫 번째 숨

by 김은희


드디어!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여느 엄마들처럼 지역 카페 글을 모조리 뒤져 어린이집을 선정하고 긴 대기 시간을 보냈다.

입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소 대기. 평이 좋은 몇 군데에 대기자 명단을 올려두고 순번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첫째의 어린이집 적응이 힘들었기에 이번에도 단단히 각오를 다졌는데 둘째의 적응은 걱정보다 훨씬 수월 했다. 물론 헤어질 때 울기는 했지만 엄마는 곧 돌아온다는 사실을 일찍 받아들여 주었다.

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빨리 사회에 적응할 수도 있다니.

불과 몇 달 전까지 포대기 공주였던 20개월 둘째에게 진한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너를 허리 부서져라 업어 키운 보람이 있어, 정말!’




세 살 터울의 아이 둘 육아에 동동 매여 전업 주부로 전향한 지 8년이 지났다.

첫 아이 기르면서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가슴 깊은 곳에서 불고개를 내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아와 현실의 괴리감은 점점 깊어졌고, 역할 하나도 버거워 자아의 의지는 무뎌져 버렸다.

다른 것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어 그나마 육아가 제일 잘하는 게 돼버린 여자. 그것이 나의 현주소였다.


첫 아이가 세 살이 되고 사람, 그래 사람이 되었다.

남편과는 아이 하나만 잘 키우기로 합의하고 쓰지 않는 육아 용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고 사이트에 올린 첫 육아 용품이 팔린 날, 뭔가 조짐이 이상했다.


두 줄.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왔다.

우리에게 둘째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려 9주.

그 길로 임신, 출산, 육아라는 3종 세트를 1+1으로 받은 나는, 내게서 한발 두발 물러섰다. 그리고 가슴속에 자아실현의 욕구 같은 것도 깨끗이 지워 버렸다. 8년의 시간은 내 이름을 앞세워한 일들을 모두 지워내기에 충분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한 육아 맘.

그렇게 내내 익숙해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존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로 살고 싶어, 엄마 말고 나.

둘째의 등원이 순조로워지자 단지 내 헬스장에 등록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챙겨 보내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몸을 움직이는 건 즐거웠다. 출산과 육아로 망가진 라인들도 자리를 잡아갔고 하원 시간까지 충분한 휴식 시간도 있으니 체력도 좋아졌다.

온통 아이들 이야기만 가득하던 SNS에도 내 이야기를 하나씩 채워 나갔다. 애만 키우다 끝날 것 같았던 삼십 대에, 이것만으로도 생기가 넘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점점 욕심났다. 오전 시간은 한가한데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요가.

요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한동안의 고민 끝에 이력서를 적어보기로 했다. 10년 가까이 지난 시간들은 금방인 듯 잡힐 것 같으면서도 곧 부옇게 흐려져 버렸다. 적을 수 있는 경력은 모두 적고 붙박이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자격증도 모두 꺼내 써 내려갔다. 한 페이지 가득 채우고 보니 이건 이력서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일이었다.

육아 말고 다른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하는 생각에 한껏 들떠 구인구직 사이트를 찾아보았다. 물론 어디서든 불러주기만 한다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야 하겠지만 엄마 역할에 소홀할 수 없었기에 입맛에 맞는 자리를 찾아보았다.


오전 시간, 집에서 가까운 곳 그리고 8년의 경력 중단 여성에게 너그러운 곳.

몇 군데 이력서를 보내 보았지만 역시나 연락이 없다. 다시 시작하기엔 나이가 많은 쪽에 속하는 데다 8년의 휴직이라니. 계속되는 무언의 거절에 시작도 못한 채 풀이 죽어버렸다.

그래. 딱 한 군데, 여기만 넣자! 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이력서를 보냈다.


그런데 웬일!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면접 보러 오세요.’

급히 몰골을 챙기고 시간을 정해 면접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럼 다음 주부터 수업해 주세요.’ 란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내가 오늘을 보려고 그 긴 시간을 견뎠어!

심장이 마구 요동 쳤다.


1550340973664.jpg 다시 요가 선생님_(c)2019.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