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꽃다운 무용학도

엄마에서 나로 가는 두 번째 숨

by 김은희

대학에서는 무용을 전공했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일 때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용실에 남아 연습에 매진했었다. 공연을 앞두고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땐 그게 전부라 믿었다.

무대 위에서의 떨림과 스포트라이트, 무대가 끝난 후의 벅찬 감정들. 모든 것이 좋았다. 의미를 담은 움직임과 무대를 위한 준비 과정들도 모두 사랑했다.

호흡, 만남, 엉킴, 헤어짐 같은 것들.


졸업을 앞두고 어떤 분야로 취업할 것인지 고민하던 중 마침 요가 지도자 과정이 눈에 들었다. 요가가 한창 유행을 시작하던 시기라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만난 요가는 어리둥절했다.

‘사람들이 이걸 배우러 온다고?’
‘정말 이것만 하고 끝내도 되는 거야?’


요가는 무용수들이 워밍업 전 간단히 자신의 몸을 푸는 스트레칭 정도에 불가해 보였다.

그렇게 거만하게 대했나의 첫 요가.

졸업과 동시에 줄줄이 수업을 했고 사람들의 평도 좋았다. 업계에서도 무용 전공자는 우대해 주는 분위기에, 요가의 감성과 나의 감성도 적당한 접점에 있었다.

하나 둘 일이 고 수업이 재미있는 만큼 몸에 대한 갈증은 커져갔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한 웨이트 트레이닝. 지금은 요가에서도 근육학과 해부학을 다루지만 그때는 웨이트 트레이닝 쪽에 더 많은 정보가 있었기에 트레이너 공부에도 시간을 쏟았다.

몸은 깊이 알수록 흥미로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니 이전의 것들은 더 명확해졌고, 부상이나 오래된 습관으로 불편한 사람들의 몸을 보면 전보다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한 동작 안에서도 몸 쓰는 법이 다른 무용, 요가, 웨이트 트레이닝 세 분야의 이점을 찾아 수업에 적용해 보기도 하고 상대의 불편함이 공감되지 않을 때는 내 몸을 그의 형태로 고립시켜 하루 종일 다녀 보기도 했다. 그렇게 처방한 운동을 적용 해 개선되는 모습을 확인할 때의 재미로 힘든 줄도 몰랐다.


그때,

졸업 후 무용단 활동도 이어 오고 있었고 트레이너와 요가 강사의 일, 모두 사랑했다. 날개 단 듯 종횡무진했던 인생의 꽃 같은 그때. 남편을 만났다. 그의 눈에도 그때의 내가 환해 보였을까. 그 길로 결혼 임신 육아, 8년의 시간.


꽃 같던, 환하던 나도, 천리안을 단 듯 환하게 보이던 움직임들도 점차 희미 해져갔다.


까막눈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1550340979014.jpg 왕년에 꽃다운 무용학도_(c)2019.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