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이자 완성인 아이들

엄마에서 나로 가는 열 번째 숨

by 김은희

아들 하나 딸 하나, 아이 둘의 엄마.


결혼 한지 3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다. 두 번의 초기 유산을 겪고 세 번째 아이가 생겼을 때 태명을 '뿌리'라 지었다. 단단하게 뿌리내려달란 의미로. 뿌리는 안정권에 들 때까지 불안한 아이였다. 조금 걷기만 해도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 임신 초반 석 달가량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하루에 실기 수업을 다섯 시간 넘게 방방 뛰어도 멀쩡한 몸이었는데, 임산부의 몸은 평상시 컨디션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도 태명처럼 단단하게 내린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버텨 주었고 안정권에 들어와서는 내내 잘 커 주었다. 산후조리원에서 결혼 4주년을 맞이하고 그날에 맞춰 뿌리의 출생 신고를 했다.


남편과 나, 우진.

그날 정말 행복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선물해 준 아이.

나의 첫사랑, 뿌리.


둘째는 소리 없이 찾아왔다.

당시 한창 활동이 왕성한 세 살 우진이를 돌보느라 밖에 나가면 대여섯 시간씩 돌아다니곤 했었다. 아침 먹고 놀이터로 출동해서 점심 먹고 또 놀이터, 마트, 놀이터. 그리고 저녁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는 강행군이었다. 임신 확인 후 받은 산모 검사 결과에서 햇빛을 받으면 생성되는 비타민D 수치가 굉장히 높게 나와, 의사 선생님이 내게 혹시 밖에서 일하시냐고 물을 정도였으니. 그런 상황에서도 이미 9주를 달리고 있던 '완성이.'

우리 가족을 완성시켜 줄 예쁜 딸, 아진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정기 검진이 아닌 일로 병원엘 간 적이 없었던 아이.

낳는 날까지 참 고마웠던 내 마지막 사랑, 완성이.




우진이는 내가 임신을 했을 때도 아진이가 태어났을 때도 큰아이가 흔히 한다는 질투를 하지 않았다.

산후 조리원에 들어가느라 엄마와 처음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너무나 씩씩하게 잘 지내 주었고 아진이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린이집에 갈 때면 아끼는 장난감들을 아진이 앞에 쪼르르 놓아두고 다녀올게 인사하는 아주 듬직한 오빠.

지친 육아에 신경이 곤두서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 낼 때면, 나의 엄마 노릇보다 우진이의 오빠 노릇이 백배 낫구나 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아진이는 또래보다 발달이 빠른 편이었다.

인형 같이 작은 몸에서 나오는 율동과 노래로 우리 부부의 혼을 싹 빼놓는 건 물론 눈치는 어찌나 빠른지 분위기가 냉랭해 오빠가 혼날 것 같을 때면 엄마 있잖아 하며 대변인을 자처하기까지. 그럼 오빠 감싸는 그 모습이 예뻐 그랬구나 하면서 슬쩍 넘어가 준다.


우진이 일곱 살, 아진이 네 살이 된 지금도 둘의 우애를 보고 있자면 내가 낳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참 사랑스럽다. 늦잠이라도 잔 날에 허둥지둥 등원 준비에 넋이 나가 있으면 우진이는 아진이 이를 닦인다. 아진아 이거 해야지 하면서 다독여 엄마를 돕는다. 식사 시간이면 아진이는 꼭 오빠 꺼하며 오빠 물까지 떠다 준다. 그럼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해주는 우진이.


나의 뿌리이자 나의 완성인 내 아이들.


우진아,

아진아!

너희가 있어 엄마는

깊게 머무르고 쉽게 멈추지 않아.


너희들의 엄마로 살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의 뿌리, 나의 완성.






epilogue_ 머무르더라도 우리, 멈추지 말아요.


여행에는 그게 있어요. 돌아오면 역시 또 그 사람으로 살겠지만 나, 떠나기 전과 100퍼센트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저는 여전히 우진이 아진이의 엄마입니다.

아침이면 등원 준비에 정신이 없고, 오후가 되면 하원 픽업에 발을 구릅니다.

그럼에도 지루했던 일상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저 자신을 위한 여행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른의 후반,

요가와 글쓰기라는 여행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일상에 충분히 머무르게 했고, 일탈을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하나씩 붙들고 춤을 추듯 일상과 일탈을 넘나드는 여행.

저는 이제 요가로 단단해진, 그리고 출간으로 새로워질 또 다른 여행길을 걸어 가보려 합니다. 이 여행 끝에 저는 역시 또 저일 테지만 완전히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요.


혹시 지금 아이와 함께라면,

엄마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일상에 충분히 머무르길 바랍니다.

평범한 하루도 진하게 느끼고 밀도 있게 채우시기를.

그리고 어떤 것이든 나를 나답게 하는 일에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기를.


소중한 당신,

소중한 가족

소중한 여행이

늘 사랑으로 빛나길.

당신 안에 있는 이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