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나로 가는 아홉 번째 숨
요가 강사로서의 삶도 좋지만 엄마로서의 삶도 소홀할 수 없었다.
남편의 근무는 당직이 많아 한 달의 반은 남편 없이 보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아이들을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아이들을 종일반에 맡기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나 좋자고 시작한 일에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꼴이니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해내고자 했다.
이런 조건이 가능하려면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전제였다. 아이들 하원 시간 전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 때로는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이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 시간에 감사했다.
중요한 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보다는,
멈춰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으니까.
수업을 나간지도 일 년이 넘었다.
적진(나)을 향해 폭탄을 던지던 초강력 아줌마 부대원은 이제 수업 전 내 매트를 챙겨 깔아주시는 회원이 되었다. 또 수강생 수에 따라 수업의 존폐가 좌지우지되는 센터에서는 우리 선생님 수업 없어지면 안 된다며 우르르 일단 등록부터 하고 보는 아줌마 부대도 생겼다.
운동이라는 게 아무리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선생님이라 해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같이 하기 힘든 것인데 우리 아줌마 부대와의 합은 어찌나 잘 맞는지 준비해 가는 수업마다 박수를 보내 주셨다. 요가 매트가 모자라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갖고 오는가 하면, 자리 확보를 위해 요가 룸 앞에 줄줄이 줄을 서 이 전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가 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신나게 수업했다. 좋아하는 일을 박수받으며 할 수 있는 과분한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다음 일 년을 앞둔 시점, 나에게 주어진 이 과분한 역할에 충실하고자 목표를 하나 정했다.
'내가 만난 최고의 요가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우리 선생님 최고라고
우리 선생님 아니면 요가 안 한다고
진하게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선생님.
내게 요가를 배우러 오는 분들과 요가 이상의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대단한 선생님보다는,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요가를 떠올렸을 때 추억이 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진심을 다해 머무르고,
다신 멈추지 않기로.
머무르더라도 우리, 이제 멈추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