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본 글은 회사 임원과 부장들이 함께 약 1년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고 동기부여 차원에서 각자의 생각들을 직원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게시판에 나눈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 백만 원이 있고 이 백 만원을 활용해 게임을 시작한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이 게임의 백만 원을 잃을 확률과 백만 원을 딸 확률이 비슷하다고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이 게임에 참여하겠는가? 만약 금액이 백만 원이 아닌, 천만 원으로 올라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게임의 참여를 꺼린다. 특히나,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꺼려한다. 그 이유는 뭘까? 2002년 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런 게임에 기꺼이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동일한 금액이라도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평가하는 성향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라는 사회적 동물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2~2.5배가량 민감하게 반응한다. 분명 잃은 확률과 딸 확률이 반반이라고 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주식이나 코인 거래를 하면서 돈을 번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잃은 것에 대해선 분노와 화가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이 조물주보다 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물주는 수수께끼같은 심리 장치를 우리 머리속에 만심어넣었는지도 모른다. 질투의 신이 사람이 신과 비슷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인간에게 지속적인 고민거리를 만들어 결국 변화에 대한 도전하는 용기를 막는 '두려움'이라는 장치말이다.
시대의 영웅들은 이런 조물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즐겼다. 라이트형제가 그랬고 스티브 잡스가 그랬듯이 우리가 인정하는 영웅들은 변화와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실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두려움에 굴복하기보다는 다양한 도전을 통해 조물주의 수수께끼를 푸는 희열을 느꼈다.
많은 영웅들의 경험을 통해 우린 이미 조물주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단지 행동을 위한 결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도 허상에 불구한 두려움에 굴복하겠는가? 아니면 신에게 보란 듯이 펀치를 날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