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돌아오는 KTX에서 관장님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내 그림 인생을 쭈욱 되돌아보았다. 인터뷰 때는 미처 생각나지 않았던, 꽃이 좋아져서 그리게 된 계기도 발견하게 되었다. 대단히 있어 보이는 이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까지 나는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1시간 50분을 달리는 동안 얽히고설킨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머릿속으로 대강 정리한 후 집으로 향했다. 이제 머릿속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야만 했다.
그런데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의 저항이 상당했다. 대학원 4학기 때 미술교육연구방법 과제로 자서전적 연구방법을 활용해 내 작업 과정을 소논문으로 작성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그림 인생 전반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찌나 괴로운지 울면서 글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금 직면의 과정에 돌입하니 내 신체는 동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성장의 기회를 잡기로 결심한 이상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Word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그 안에 나의 성장배경과 그림의 변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데 내가 어떤 심정으로 작업을 이어왔는지 떠올라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이제 40대의 언니가 된 나는 20대의 나에게 돌아가서 무어라 말해줄 수 있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지난했던 과정을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겠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겠지? 괜찮다고,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라고 격려해 주겠지?
사흘밤을 꼬박 새우며 태블릿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다가 오른손 가운데 마디에 물이 꽉 차서 1년간 재활치료를 해야 했을 때,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서 참다못해 왼손으로 시작했던 드로잉. 이걸 보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가장 가혹했다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그림이 좋아서 표현하고 싶어서 안달 난 인간인데, 그 마음을 그렇게도 무시했다니... 미술을 반대한 건 아빠였지만, 그 눈치를 보느라 내 감정과 욕망을 철저히 짓밟은 것은 바로 나였다.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자 관장님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피드백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 그림과 작업에 대해 진심으로 호의를 갖고 도와주려고 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차로 자서전과도 다를 바 없는 대서사시(?) 작가노트를 메일로 보내고 관장님과 유선으로 장시간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관장님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다시 메일을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이 과정에 임했다.
이후에도 새로운 작업물과 작업노트, 그에 따른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간 속에서 내가 나로 존재하며 나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배웠다. 그림을 통해 당당하고 부드럽게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과 그림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도 익혀나갔다. 그렇게 2월 20일부터 나는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