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준비를 하며 관장님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내 속에서 상충하는 두 가지 요인이 평생을 갈팡질팡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1.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특별히 아빠
2. 내가 생긴 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고 싶은 욕구
발견했으면 뭘 하나.. 나는 여전히 똑같은데, 자꾸 잠재 기억을 헤집으니 아프기만 했다.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계속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살아야 할까? 점점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나는 이물감을 오랫동안 품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당장 베스트 프렌드이자 최고의 상담가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요고코드: 언니, 개인전 준비가 이렇게나 괴로울 일이야?
- 언니: 엥? 어떤 게 괴로운데?
- 요고코드: 나를 바라보는 게 힘들어. 내 특성이 이상한 것 같아. 그런데 40년을 이렇게 살아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
- 언니: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하하하하 너! 진짜 지극히 정상이야!
- 요고코드: (의아해하며) 뭐?? 무슨 소리야??
- 언니: 내가 책을 보내줄게. 한번 읽어보고 나랑 다시 이야기하자. 그 책 속에 니가 왜 그렇게 스스로를 이상하게 여기고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들어있어.
- 요고코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뭔지는 모르겠다만 기대할게!
이틀 후에 언니가 보낸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영재의 심리학>, <어른이 된 영재들>. 최근 영재교육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언니는 연구를 하면 할수록 우리 자매가 미성취 성인 영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서둘러 책을 펼쳤다. 먼저 <어른이 된 영재들>을 읽었다.
'영재'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지라 '내가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언니는 왜 자꾸 나를 영재라고 표현하는 걸까?' 의아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영재는 단순히 지능만으로 정의할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영재를 사고에 있어서는 선형적이지 않고 다발적이며, 동시에 엄청나게 폭발적인 감성을 가진 다소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움찔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다양한 사례들을 만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게 아니었구나. 간접적으로나마 내 삶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아서 이런 부분을 연구해서 책으로 엮어 준 저자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니가 왜 나를 지극히 정상이라고 표현했는지 알게 되었다. 영재들의 세계에선 내가 정상이라는 뜻이었던 것!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영재를 '얼룩말(Zebra)'에 비유한 부분이었다. Zebra에는 괴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며 영재들을 동물에 빗대어 설명한 부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나의 주된 그림 작업에도 동물을 상징화하여 표현하고 있기에 더 반가웠고, 얼룩말의 독특한 줄무늬가 영재로 칭해지는 특이한 사람들에게 찰떡같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통독 후, 나는 나를 미성취 성인 영재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상충되는 나의 특성부터 마주했다. 1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특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들여다보았다. 경상도 출신의 무뚝뚝한 아빠는 표현에 인색했고, 내가 미술을 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사실상 아빠에게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빠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건 가능치 않다. 이건 포기.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영원불변한 아버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가능하다. 육신의 아빠에서 하늘 아빠로 인정의 대상을 치환하기로 했다. 설정 완료.
2번, 생긴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 사실 1번의 문제가 이것을 방해해 왔다. 내 속에 꿈틀대는 예술가로서의 자유분방함이 아빠 앞에서는 숨겨야 하는 일종의 죄책감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나로 살기 위해 나는 그 어떤 용기도 내지 못했구나...' 속상했다. 지금까지 숨겨왔던 나를 어떻게 자유롭게 풀어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았다. 죄책감 느끼지 않고 마음껏 표현하도록, 그저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 그거였다.
어쩌면 당연하고 가장 기본인 아빠의 인정도 받지 못하고 미술 교육은 꿈도 못 꾸고 살았지만, 4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나만의 그림을 그려온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는 용기 내어 외쳤다. "나는 얼룩말이야! 나는 영재라고! 다만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이야. 이제 내가 나를 도와줄 거야!" (물론 소심한 나는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혼자 외쳤다. 울고 불고 쌩난리부르스와 함께ㅋㅋㅋㅋㅋ)
그렇게 한참 거실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얼룩말을 아드릐나라로 보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비슷한 강도의 두 가지 시리즈 중에서 어떤 것을 메인으로 삼아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었는데 해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나는 정체성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