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들어가는 전시

by 요고코드

개인전 확정 후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의 오랜 벗 깐죽이와 토리에게. 25년 지기 깐죽이는 연차를 내고 그림 설치를 도와주러 오겠다고 했고, 토리 역시 그녀와 한 몸인 토리투(남편)님과 설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전시를 하니 친구들을 부르는 게 덜 미안했다. 물론 2022년 첫 전시 때도 두 친구는 대구까지 기꺼이 달려와줬지만 말이다. (심지어 토리는 토리투님과 휴가를 맞춰서 함께 내려와서 전시 오프닝 사회를 봐주기도 했다.)


두 번째 개인전에 전시할 그림은 총 21점. 캔버스 사이즈가 꽤 큰 편이어서 남편과 둘이서 탑차로 옮길 때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런데 세 친구와 관장님의 도움으로 그림 옮기는 게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포장 패키지를 정리하는 토리투와 깐죽

관장님이 그림 포장을 벗기라고 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그들. 자신의 일처럼 내 일을 돕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갑자기 희한하게 느껴졌다. 포장 패키지를 모아서 돌돌 말아서 정리하고 계신 관장님까지... 마치 그동안 함께 일을 해온 사람들처럼 합이 잘 맞았다.



우리 나름의 배치

이후 관장님이 그림을 잘 펼쳐 놓으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배치를 하라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각 작품을 어디에 걸지를 미친 듯이 논의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의견은 모두 불일치했다. 나름의 이유를 대며 이 그림을 이 부분에 걸어야 한다고 서로 핏대를 올리기 시작할 때 즈음, 그런 우리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시던 관장님이 이제 할 일이 없으니 쉬라고 하셨다. 엥?? 다시 테이블로 모여서 쉬고 있는데 관장님이 그림을 요리 보고 죠리 보시더니 여기저기로 흩으셨다. 무슨 근거에 의해서 저렇게 배치하시는 걸까? 모두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관장님이 설명을 시작해 주셨다.


"전시에서는 첫인상이 정말 중요해요. 관람객들이 갤러리에 들어왔다가 첫 그림 느낌이 좋지 않으면 바로 돌아서 나가버리기 일쑤예요. 그래서 느낌이 좋은 이 작품들을 입구에 걸어서 호기심을 자극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이 세 점의 시리즈는 모두 색감이 강렬하기 때문에 같이 걸면 지옥문이 열리는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셈이죠. 이렇게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중간중간 부드러운 그림들을 배치해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의식의 흐름대로 그림을 보게 마련이라, 이 앞에 커다란 민화를 배치하고 눈을 돌렸을 때 저 멀리 민화가 눈에 닿도록 연결해 보았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고리와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 그림(아드릐나라4)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홀로 두어도 괜찮아요. 같이 있을 때 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거예요.“



그림 설치중

우리는 모두 학생모드로 변신해서 "아...." 하면서 관장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전문가의 그림을 보는 안목과 배치하는 방식은 아마추어인 우리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관장님은 학구열 높은 우리들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시더니 함께 그림을 걸어보자고 하셨다. 벽에 레이저를 쏴서 높이와 수직 수평을 맞춘 후, 한 점 한 점 설치를 시작했다. 토리투님이 애를 많이 써주셨다.


2시간가량의 설치 시간 동안 친구들이 지겹지는 않을지, 지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고맙게도,


- 깐죽: 니 덕에 오랜만에 문화생활 진하게 한 것 같아! 대견하네, 내 친구! 앞으로도 열심히 그림 그려.

- 토리: 요고야. 첫 번째 전시 때랑 느낌이 달라. 재료도 스타일도 뭔가 더 견고해진 것 같아. 네 내면이 이렇게 확고해졌다는 거겠지? 너무 멋있다!

-토리투: 보통 전시를 보러 가면 한번 쓱 보고 나오는 데 오늘 설치하느라 계속 반복해서 보니 전혀 다른 게 보이네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고마운 친구들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마운 존재들. 두 번째 개인전은 그야말로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였다.



깐죽이의 꽃다발

깐죽이는 꽃다발을 샀지만 들고 오기 무거워서 축하 메시지와 꽃 한송이의 모가지를 꺾어서 가져왔다고 했다. 나름 데코도 한 거라며 생색을 내는데 ㅋㅋㅋㅋㅋ깐죽이 다운 선물에 웃음이 났다.



토리의 작약

설치를 도우러 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작약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꽃바구니를 준비해준 토리와 토리투. 감동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