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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신 Nov 29. 2021

자아의 몫

삶에 대하여


자신의 언행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생각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광활한 범위가 아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의미를 뜻한다. 대상이 사람이 됐건, 물질이 됐건, 사회가 됐건. 우리는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의 무게를 체감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짧고도 긴 무수한 실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즉 나의 움직임 하나가 다른 대상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의미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자와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결국 타자의 움직임 없이는 지금의 나또한 없다는 다소 불편한 의미에 닿게 된다. 즉, 타자 없는 나는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유는 단순히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고, 홀로 존재의미를 찾을 수 없는 아주 미숙한 존재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운명론으로 받아들이면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가 아닌 타자의 삶까지 고려할 수 있는 포용, 그리고 관계의 소중함, 그리고 겸손. 우리는 그렇게 비로소 나를 더불어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때때론 미숙한 덕에 다른 가치들이 우리의 삶에 녹아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미숙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마치 본인의 성과가 본인만의 노력과 능력으로 쟁취했다는 듯한 뉘앙스. 더불어 그 성과가 부와 권력이 되는 순간 사회 속 절대가치로 발현되어 모든 면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비추어 보이는 착시 등. 세상에 홀로 일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 본인을 끝까지 믿어 준 가족, 동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내가 있었을까. 더 거칠게 예를 들자면 제 아무리 홀로 일궈낸 결과라고 믿고 싶다고 한들 그 실현을 일구어 낼 이 사회와 기반이 없었더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모든 기회와 성과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넘어 자신의 존재가치 또한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고 보는 시선은 다소 위험하다. 나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 타자의 몫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를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인정의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그것이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부르는 본질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결속되어 있는 관계, 결부되어 있는 사회를 고려하지 않는 삶은 끝도 없는 고독과 진배없지 않을까. 여생 동안 고민해도 나조차 나를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불완전함이자 본질적으로 고독한 이유일 것인데 타자와 피부를 부비며 살아가는 사회의 본질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는 건 개인의 삶을 다소 비참하게 전락시키는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결속, 연대에 대해 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고민의 끝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의 무게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것은 물론 겸손과 타자 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건설하는데 큰 도움을 주리라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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