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대하여
여느 때보다 뜨거웠던 지난 초여름, 내가 유지해왔던 관성과 균형을 깨뜨리고 새로운 일상을 되찾기 위해 실천한 것이 다름 아닌 필름이었다. 줄곧 사진을 찍어왔지만 필름만큼은 허영이라 생각했던 편협했던 생각은 억지로나마 접어두고 남대문으로 달려가 뭣도 모른 채 카메라를 구입했다. 하필 구매한 카메라가 목측식이었고, 필름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는 애석한 때였지만.
담대하게 시작한 만큼 내게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오기와 끈기를 부려가며 아날로그에 손과 마음을 익혀갔다. 처음으로 산 카메라보다 조금 더 작동이 용이한 반자동 카메라도 구입해서 다양한 카메라와 필름으로 나의 일상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결과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모든 순간이 다 나의 것이었다. 그래서 무엇하나 특출 나게 애정할 필요도, 버릴 필요도 없이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가는 중이다. 평범한 나날의 조각들이 결국 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만들어가는 법이니깐.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 무엇이 더 좋냐는 질문에는 답할 길이 없지만 그 와중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는 건 이젠 아날로그에도 정을 붙였다는 정도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 이젠 사진 찍는 일을 좀 더 유연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확장뿐인 셈이다.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한다. 그리고 내 나름대론 스스로가 대견하다.
여전히 서툰 점이 많지만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완전 수동 카메라를 한 대 더 구입했다. 이 카메라는 1960년대에 독일에서 만들어졌는데 모든 것이 수동으로 작동한다. 환경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맞추고, 피사체와의 거리를 가늠해야지만 초점과 색감이 온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카메라. 호기롭게 시작한 것에 비해 조작이 많이 어려워 애를 먹는 중이다. 하지만 별로 낙심하진 않았다. 흥미를 잃지도 않았고. 난 늘 그렇듯 화려하고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불꽃보다는 은근한 빛을 품은 적당한 불이 좋다. 그러하듯 이 수동 카메라를 통해 도출할 결과물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을 예정이다.
헤세가 말했던 '알을 깨기 위한 투쟁'에 대해 체감하지 못하던 시절을 지나 필름 카메라를 시작하며 얻게 된 경험과 감각은 여태껏 나를 숙성시켜온 두터운 알에 균열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삶의 계기들이 많았으면, 그렇게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연속된 삶에는 아마 필름 카메라가 계속 함께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