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바이블, 3월의 디자이너
INDEX
#01. Prologue, 뜬금없는 라코스테의 역사
#01-1. 라코스테 또한 혁신에서 출발했다.
#01-2. 재도약을 위한 도전
#02. 새 출발을 위한 시발점, 루이스 트로터 lousie trotter
#02-1. whos is she?
#02-2. 왜 그녀였을까?
#03. 루이스 트로터 함께 다시 한번 혁신을 시작한 라코스테
#03-1. 한층 더 진화된 컬렉션
#03-2. 세상과 가까워지기 위한 오픈 마인드
#04. Outro, 마치며
#01-1. 라코스테 또한 혁신에서 출발했다.
'악어'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브랜드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 단연 라코스테 lacoste 일 것이다. 라코스테가 진한 인상을 갖고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인데 우리 세대에게 라코스테란 폴로와 같이 "오래된" 브랜드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라코스테의 키워드를 생각해보면 '테니스', '헤리티지', '피케 셔츠' 등 정형화되고, 오랜 역사를 안고 있는 단어가 많다. 실제로 라코스테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브랜드이며, 폴로와 같이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 온 브랜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라코스테가 헤리티지라는 단어를 안고 출발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라코스테를 해석하기 위해선 라코스테의 뿌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테니스에 뿌리를 둔 프렌치 브랜드 라코스테는 테니스 선수이자 브랜드 창립자인 르네 라코스테 rené lacoste의 훌륭한 스포츠 커리어와 남다른 패션감각에서 다져진 유서 깊은 브랜드다. 당시엔 스포츠 스타의 스타일이 전 세계 패션 트렌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했는데, 이때 르네 라코스테는 패션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주목을 넘어 테니스계와 패션계에 아주 굵직한 업적을 기록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피케 폴로셔츠 pique polo shirt를 착용하고 시합에 임한 사건이었다. 테니스는 엄격한 복장 기준을 요구했는데 라코스테는 이를 경직된 자세를 받아들였고 이 고질적인 관습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고상해 보일진 몰라도 활동하는 데 있어 불편했던 기성 테니스 드레스 코드를 탈피하여 좀 더 편하고 스타일리시한 의상을 제작하여 자신의 별명이었던 '악어' 모양의 문양을 가슴에 새기고 테니스 코트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 의상이 지금 라코스테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피케 폴로셔츠의 전신이며, 이를 기점으로 르네 라코스테는 테니스뿐만 아니라 패션으로도 큰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
이 혁신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라코스테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헤리티지 스포츠 브랜드로 자리할 수 있었다. 스포츠 스타에서 유명 브랜드 창립자가 되는데 악어 자수가 달린 피케 폴로셔츠는 혁혁한 공헌을 세웠고, 이는 또 하나의 메인 스트림을 만들었다. 혁신으로 기록된 이 해프닝은 대중들에게 라코스테 = 폴로 피케 셔츠라는 인식을 공고히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가치는 일장일단인 법. 라코스테는 시그니처 아이템을 통해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웠지만, 그만큼 한 가지 카테고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 결과 라코스테는 늘 탄탄대로를 달릴 순 없었고,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굴곡 있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사실 업 앤 다운은 존재했지만 전체적인 인지도는 하락세에 가까웠고, 결국 라코스테는 트렌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프렌치를 대표하던 그들만의 헤리티지는 점점 구시대적인 산물로 변모하고 있었다.
#01-2. 재도약을 위한 도전
그렇다고 라코스테가 늘 매너리즘에 갇혀 있었다고 표현한다면 그건 곤란하다. 라코스테는 꾸준히 런웨이 피스와 다양한 컬렉션을 출시해왔으며 새로운 시대와 기준에 발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이름도 없던 프렌치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르메르 christophe lemaire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로 영입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편적인 노력은 브랜드의 긴 수명을 보장해주진 못했다. 영향력 있는 디렉터가 라코스테를 이끌면 즉각적으로 부응했다가도, 그들이 떠난 즉시 끌어올린 위상은 곤두박질치는 일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라코스테는 위기와 기회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결국 빠른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선 이전보다 훨씬 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들에겐 또 다른 충격적이고, 신선한 결단이 필요했다. 마치 르네 라코스테가 테니스계와 패션계에 불러일으켰던 반향처럼 말이다. 마치 초심과 브랜드의 존재가치를 다시 한번 곱씹어야 하는 순간이 온 셈이었다. 고심 끝에 라코스테는 결단을 내렸다. 결단의 핵심은 '신선함, 새로움'이었다. 그렇게 라코스테는 전례 없던 위임, 루이스 트로터 lousie trotter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게 되었다. 라코스테 역사상 첫 영국 출신이자 여성 디렉터인 루이스 트로터는 라코스테를 다시 한번 황금기로 인도해 줄 충분한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었다. 탄탄한 이력으로 빚어진 트로터의 감각적인 패션 DNA는 라코스테의 헤리티지를 새롭게 해석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라코스테의 신선하지만 충격적인 결단이 첫 단추부터 세간의 이목을 이끌기 시작했다.
#02-1. whos is she?
현재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루이스 트로터는 사실 영국 선더랜드 출신의 디자이너다. 뉴캐슬 폴리테크닉 newcastle polytechnic 현 northumbria university에서 마케팅과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영국의 스트리트 브랜드 휘슬 whistles에서 패션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때 트로터는 디자인 작업뿐 아니라 바잉과 디자인 디렉팅에 대한 전반적인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휘슬에서 오랜 기간 이력을 쌓은 그녀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역량을 펼치기 위해 미국 브랜드 갭 gap에 새로운 둥지를 텄다. 이전과 다르게 부사장 vice-president 직책을 도맡으며 디자인 리드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갭을 이끈 이후에도 캘빈 클라인 calvin klein과 타미 힐피거 tommy hilfiger에서도 탄탄한 이력과 경험을 쌓으며 남다른 감각을 닦아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영국 브랜드 조셉 joseph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때부터였다. 그녀의 리더십 아래, 조셉의 독자적인 라인은 더욱 트렌드에 발맞추기 시작했고, 패션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닦아내며 설립자인 조셉 에테구이를 성공하게 만든 고전적인 실루엣과 함께 최근의 트렌드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며 조셉이 새로운 평가를 받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트로터가 합류하기 전, 간결한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정제된 컬렉션을 선보였던 조셉은 몇 시즌 전부터 독자적인 색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컬렉션은 조셉이 지닌 기존의 색에 스포티한 면과 짓궂은 실험을 가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전체적으로 정돈된 느낌이 들다가도 기괴한 디테일이나 예상치 못한 실루엣, 가끔은 맥시멀 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다채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소위 말하는 위트의 정석이 깃든 컬렉션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단조롭고 정제되어 있는 디자인 보단 재미있는 요소들이 잘 녹아든 계획적인 디자인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 기존의 아이덴티티에 자신만의 개성을 잘 녹여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낸다는 그녀의 강점을 열실히 발휘한 셈이었다.
단조로웠던 조셉을 위트 있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인식을 바꿔낸 루이스 트로터는 전 세계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9월 그녀는 펠리페 올리비에라 밥티스타 felipe oliveira baptista의 8년 임기를 이어받아 라코스테의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합류했다. 프렌치의 보수성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중대한 결정이었겠지만 전 세계 외신은 루이스 트로터와 라코스테의 만남을 환영했다. 그녀는 진부함에 빠져든 라코스테를 혁신적이고, 재미있게 바꿔 놓을 적절한 인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02-2. 왜 그녀였을까?
포르투갈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필리페 올리베이라 밥티스타 felipe oliveira baptista는 8년이란 기간 동안 라코스테를 진두지휘해왔다. 물론 그 또한 라코스테의 헤리티지를 지켜 온 훌륭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라코스테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유기적으로 활용하진 못했다. 굳이 비관적으로 표현하면 마치 라코스테가 순탄하게 유지되는 듯한 디자인만을 추구하는 듯했다. 물론 브랜드에 기존하고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 또한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 그치는 디자인은 더 이상 신선함과 새로움을 줄 수 없다는 한계는 명확했다.
디자이너를 비견하는 일이 온당치 못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트로터는 밥티스타와 다른 결을 가진 디렉터였다. 조셉을 유동적이고 유기적으로 잘 운영해왔던 것처럼 브랜드 기존의 아이덴티티는 잘 보존하되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위트는 때론 투박하게, 때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디자인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어떤 피스를 보면 라코스테의 헤리티지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극대화됐지만, 어떤 피스를 보면 라코스테가 여태껏 숨겨왔던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는 듯했다. 분명 한 브랜드의 한 시즌 쇼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움과 동시에 정돈된 컬렉션을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것이야 말로 라코스테가 결단을 무릅쓰고 그녀를 선택한 진정한 이유였다. 결국 라코스테의 강수가 이상점에 명중한 순간이 펼쳐졌다.
85년이라는 세월을 유지해온 브랜드 이미지를 고유 유산으로서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동시대적인 스타일과 트렌드를 접목하는 것은 트로터의 장기이자 라코스테를 변모시키기 충분한 명분이었다. 그녀는 첫 데뷔 무대를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부합하는 테니스 클럽 드 파리, tennis club de paris에서 진행하였으며, 브랜드의 전신이자 상징인 르네 라코스테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컬렉션을 꾸렸다. 르네 라코스테의 삶과 시대,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한 그의 노력과 헌신에 헌정하며, 그녀만의 우아하면서도 정교한 터치를 가미해 기능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따뜻한 느낌의 시트러스 옐로와 라코스테의 아이코닉한 그린 컬러 등 시티 뉴트럴 컬러와 화이트 컬러를 조합한 체계적이고 감성적인 컬러 팔레트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포근한 촉감과 우수한 보온성의 플란넬, 부클레 소재와 부드러운 클래식 코튼 피케 등 매끄럽고 편안한 소재를 적용해 실용성을 강조했으며, 코트, 아노락, 블레이저, 트렌치코트와 같은 아우터에 탈부착이 가능한 후드나 아카이브 헤링본 트윌 등의 디테일을 더해 도시적인 요소를 담아냈다. 라코스테의 시그니처 아이템 폴로셔츠는 스트라이프 니트 칼라나 해체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선보였으며, 라코스테를 상징하는 악어 로고는 색조 자수, 전면 프린트, 과장된 패치워크 등 마치 팝아트와도 같은 심벌로 재탄생되었다.
트로터의 데뷔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밥티스타의 컬렉션과는 분명하게 다른 결을 갖되, 숨겨져 있던 라코스테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할 수 있는 컬렉션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가장 이 쇼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헤리티지를 새로운 트렌드로 재해석하는 일을 매우 뛰어나게 이행했다는 평이 주를 이루며 트로터의 라코스테의 앞날을 더 기대하게 하는 컬렉션으로 데뷔 쇼는 매듭을 지었다.
#03-1. 한층 더 진화된 컬렉션
트로터의 데뷔 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번째 쇼였던 20S/S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F/W에 선보였던 라코스테의 DNA와 트렌드의 조화를 다시 한번 재현하되 한층 더 성숙해진 컬렉션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한번 라코스테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며 현대적인 스타일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완벽한 실루엣과 다양한 소재의 활용, 감각적인 컬러감으로 성공적인 컬렉션을 꾸려냈다.
데뷔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20 S/S 컬렉션 또한 시몬느 마티유 simonne mathieu 코트에서 진행했다. 이 코트는 프랑스의 유명 테니스 선수였던 시몬느 마티유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새롭게 개설되었으며 쎄흐 도뙤이 가든 식물원에 위치해 온실로 둘러싸여 있어 라코스테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번 컬렉션에서도 트로터는 브랜드 고유의 클래식함과 우아한 스타일에 컨템퍼러리 무드를 더해 스포츠와 헤리티지, 스타일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컬렉션을 완성했다. 봄·여름 시즌에 잘 어울리는 민트, 핑크, 옐로 등 포인트 컬러와 뉴트럴과 파스텔컬러가 조화를 이룬 고급스러운 컬러 팔레트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존 F 케네디 주니어, 르네 라코스테 등 수많은 유명 인사의 라이프 모먼트에 함께했던 라코스테의 아이코닉 아이템인 피케 폴로는 가죽과 니트 소재가 더하거나, 각진 디테일의 오버사이즈 스퀘어 쉐잎으로 디자인되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의 피케 폴로로 재탄생했다.
특히, 이번 시즌 컬렉션은 두 명의 영국 여성 디자이너와의 협업한 아이템을 함께 접목시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슈즈 디자이너 헬렌 커쿰 helen kirkum 은 지난 시즌 스타일을 새롭게 재해석한 핸드메이드 콜라주 스니커즈를, 주얼리 브랜드 알리기에리 alighieri의 디자이너 로시 마타니 rosh mahtani는 브랜드 심벌을 토테미즘적으로 재해석한 브라스 펜던트와 브레이슬릿을 협업으로 탄생시켰다. 프렌치 헤리티지 브랜드의 첫 영국 여성 디렉터, 그리고 영국 여성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은 단순한 협업이 아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 작업임과 동시에 고리타분한 관습을 초월하는 의미가 깃든 동시대적 발상이자 흐름의 일부로 생각되기도 했다.
#03-2. 세상과 가까워지기 위한 오픈 마인드
최근에는 암울했던 2020년을 뒤로하고 밝은 세상을 꿈꾸자는 메시지로 폴라로이드 polaroid와 함께 협업을 펼치며 기존 기조에 비해 훨씬 더 열린 마음으로 컬렉션을 전개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라코스테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활동성을 잘 표현하였으며, 루이스 트로터가 선보이는 다채로운 색감이 강조되는 컬렉션으로써 많은 대중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었던 컬렉션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최근 가장 뜨거웠던 뉴스는 단연 브루노 마스 bruno mars 와의 협업이었다. 평소 가먼트 사업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어 왔던 브루노 마스와 라코스테가 라이프 스타일 레이블로서 리키 리걸 ricky regal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이전까지 많은 패션 협업을 제안받았던 브루노 마스가 라코스테와의 동행을 결정한 이유에도 루이스 트로터의 의견이 핵심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루이스 트로터는 브루노 마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원조하겠다."라는 의사를 내비치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헤리티지를 중시하는 브랜드에선 굉장히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었을 것이다. 더해 전형적인 백인들의 전유물로 평가되는 테니스를 뿌리에 두고 있는 브랜드가 필리핀계 미국인에게 손을 내민 건 아주 큰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의 계기는 단연 라코스테의 탄생을 지지하고 있는 '혁신'이라는 메시지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여태까지 트로터가 보여준 컬렉션은 다소 위트함이 묻어나는 피스들이 주를 이뤘지만 실질적으로 그녀는 실용성과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옷들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디렉터다. 매 시즌 컬렉션마다 실용적인 부분을 매우 디테일하게 고려하며 이와 동시에 우아함을 자아낼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보는 재미뿐 아니라 입는 재미까지 선사할 수 있는 훌륭한 디자이너란 생각이다.
mnbv의 디자이너 바이블을 집필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한 사람의 변화가 브랜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늘 새롭게 느껴지기만 한다. 트로터와 라코스테도 마찬가지다. 85년의 헤리티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마치 숨겨왔던 매력이었던 것처럼 참신한 발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을 표현한다는 건 매우 높이 평가할 일이란 생각이다. 특히 이러한 변모가 한 사람의 철학과 결단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가히 놀랍다는 사견이다.
라코스테는 루이스 트로터와 함께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항해를 나섰다. 브랜드와 디렉터 입장에선 불가측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 수 있겠지만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브랜드를 지켜보는 팬들의 가슴은 설렐 수밖에 없다. 고유성을 유지하되 새로운 흐름에 발맞추는 일, 싫증이 빠른 시대에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는 일은 늘 반갑울 따름이다. 필자는 그 반가운 기대를 라코스테와 트로터의 행복에 걸어보고자 한다.